새 마음으로 - 이슬아의 이웃 어른 인터뷰
이슬아 지음 / 헤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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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슬아' 작가님의 에세이보다 인터뷰집을 좋아합니다.

인터뷰집을 작가님 덕분에 처음 접하게 되었고 그 매력을 알게 되었기에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인터뷰집은 그전의 인터뷰집과는 달랐습니다.

우리의 이웃의 이야기였습니다.

응급실 청소 노동자, 아파트 계단 청소 노동자, 농업인, 인쇄소 기장, 경리, 수선집 사장님과의 대화.

오랫동안 한 가지 일을 해온 어른들로부터 잘 알려지지 않은 직업 현장 이야기는 읽으면서 울컥하기 일쑤였고 마지막에 남겨진 진한 여운은...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한 마음도

빈 마음도 아닌

새 마음으로

오랫동안

일했나

새 마음으로



인숙 씨는 자꾸자꾸 새 마음을 먹으며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새 마음, 새 마음, 하고 속으로 되뇌인다. 약한 게 뭘까. 강한 게 뭘까. 인숙 씨를 보며 나는 처음부터 다시 생각한다. 인숙 씨의 몸과 마음은 내가 언제나 찾아나서는 사랑과 용기로 가득하다. 그에게서 흘러넘쳐 땅으로 씨앗으로 뿌리로 줄기로 이파리로 열매로 신지 언니에게로 나에게로 전해진다.

인숙 씨는 용기투성이다. 나는 인숙 씨처럼 강해지기를 소망하며 살아갈 것이다. - page 105

농업인이자 김신지 작가의 어머니이신 '윤인숙'씨.

표고버섯 한 상자에서 시작된 이야기였지만 인숙 씨의 이야기는 책 제목처럼 저에게도 자꾸만 되뇌게끔 하였습니다.

새 마음으로, 새 마음으로.

응급실 청소 노동자 '이순덕'씨를 바라보며 '삶'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생각해 보곤 하였습니다.

생사를 넘나드는 환자들이 있는 곳.

그곳에서 무려 27년간 청소를 해온 분.

덤덤하게 말씀하셨지만 가슴이 아려오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슬아 세상에, 어떻게 그 힘이 나세요?

이순덕 왜 그러느냐면요. 내가 부모를 일찍 여의고 남의 손에서 커서 그래요. 평생 외롭고 아주 그냥 고달펐잖아요. 사랑도 못 받고요.

어려서부터 생각했어요. 나는 성장해서 돈을 벌면 꼭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을 도와야지 하고요. 마음을 그냥 그렇게 먹었어요. - page 40

순덕 님은 "사는 게 고달팠어요"라고 말한 뒤 "그래서 더 힘든 사람을 생각했어요"라고 덧붙였다. 나는 이 두 문장이 나란히 이어지는 게 기적처럼 느껴진다. - page 48

아파트 청소 노동자이자 이슬아 씨의 외할머니인 '이존자'씨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존자 집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멀자녀. 왕언니 식당 있는 정류장까지 먼 길을 혼자 걸어다니려니까 힘들었지. (존자 씨 눈가에 눈물

이 그렁그렁 고인다) 할아버지가 아프셔서 못 하니까 밭도 혼자 매고... 퇴근하면 밭에 풀이 안 보일 때까지 일하는겨. 그러다

해 질 때 되면 할아버지랑 밥해 먹고. 나중에 할아버지 몸 나으신 다음부터는 같이 일했어. 힘들다고는 생각 안 한 것이, 옛날에

는 하고 싶어도 못 했자녀. 농사 지을 땅도 없고 돈 벌 자리도 마땅치가 않았응께. 지금은 내 몸만 허락하면 일을 할 수가 있자

녀. 그게 행복한겨.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 page 121

배운 게 별로 없었지만 실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존자 씨와 병찬 씨.. 그들의 생애는 서로를 살리며 흘러왔다. 한 고생이 끝나면 다음 고생이 있는 생이었다. 어떻게 자라야겠다고 다짐할 새도 없이 자라버리는 시간이었다.

고단한 생로병사 속에서 태어나고 만난 당신들. 내 엄마를 낳은 당신들. 해가 지면 저녁상을 차리고 이야기를 지어내는 당신들. 계속해서 서로를 살리는 당신들. 말로 다할 수 없는 생명력이 그들에게서 엄마를 거쳐 나에게로 흘러왔다. 그들의 엄마, 그 엄마의 엄마, 그 엄마의 엄마의 엄마로부터 흘러내려온 생명력일 것이다. 어쨌거나 생을 낙관하며, 그리고 생을 감사해하며. - page 155

기쁨 곁에 따르는 공포와, 절망 옆에 깃드는 희망 사이에서 계속되는 사랑을 보여준 그들.

저에게도 만감이 교차했다고 해야 할까...

유독 이분들의 이야기를 읽고 나서는 눈물이 고이는 것인지...

마지막 수선집 사장 '이영애'씨의 이야기도 참 찡했습니다.

대전의 가난한 팔 남매 중 다섯 째였던 그녀.

열아홉 살이던 해에 공장에 처음 들어가 다림질을 하며 힘겹게 살아왔던 그녀.

남편이 바람피우며 가정에 소홀했기에 밖에서 봉제일 하면서 힘겹게 애 셋을 키웠던 그녀.

평생 남편한테서 받아보지 않았던 사랑을 해 주는 '박찬무' 할아버지를 만났지만 또다시 혼자가 된 그녀.

이슬아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있으세요?

이영애 없어. 지금이 제일 좋아. - page 264

그 모든 주조연들 중 아무도 밉지 않다고 주인공인 영애 씨가 말한다. 어깨에 힘을 빼고 수선집 앞을 산책하며 말한다.

수선된 원피스로 갈아입은 나를 영애 씨가 본다. "봄이니까 이렇게 살랑거리고 다니면 되겠네." 하며 내 등을 매만진다. 나는 그런 영애 씨의 조연이라서 기쁘다. 그의 손길이 닿는 곳에 산다는 게 행운처럼 느껴진다.

영애 씨가 고쳐준 옷을 입고 살랑거리며 미래로 간다. - page 273

이웃 어른들에게서 듣게 된 인생 이야기.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그녀가 전한 이 이야기가 책장을 덮어도 남아돌곤 하였습니다.

계절이 바뀌고 해가 지고 해가 뜨고 아침마다 집에 빛과 바람이 든다는 사실에 언제까지나 놀라고 싶다. 새 마음으로, 새 마음으로. - page 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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