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곤도 노리코'.
안내받은 회의실의 차가운 파이프 의자에 앉아 옷매무새를 가다듬었습니다.
긴장한 듯한 곤도.
문을 열고 들어온 건 노리코보다 꽤 연상으로 보이는 여자가 쌀쌀맞게 그녀에게 묻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시죠?"
불쾌감이 배어 있는 여자 목소리.
그런 여자에게 노리코는 말합니다.
"'미래 학교' 터에서 발견된 시체가 자신의 손녀일지도 모른다고 말씀하시는 의뢰인의 요청을 받고 이번에 제가 대리인으로서 찾아뵈었습니다. 의뢰인의 이름은......"
"우리와는 관계없는 일입니다."
정말 그럴까...
일본 시즈오카의 한적한 시골에 자리 잡은 대안교육시설 '미래 학교'.
그곳에 살고 있는 '미카'는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이곳에서 만난 어른들 모두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미래는 여기에만 있으니까."
그리고 미래 학교의 여름방학 캠프에 참가한 초등학교 4학년인 '노리코'.
이 둘은 1주일 동안 합숙을 하며 우정을 나누게 되고 노리코는 4학년부터 6학년 때까지 참여하게 되지만 6학년 여름 마지막 합숙에서는 미카를 만나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된 노리코가 아무 생각 없이 켜둔 텔레비전에서 들려온 어떤 단어에 반응하게 됩니다.
'단체 시설 부지에서 여아의 백골 시체 발견'.
어딘가의 종교 단체에서 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멍하니 텔레비전 화면을 바라보는데 미래 학교라고 적힌 라벨을 두른 페트병이 보입니다.
그리고 이어진 공중 촬영 화면 속 숲속의 파란 지붕.
그 색을 본 순간, 소름이 돋기 시작한 노리코.
생각이 폭주한다.
노리코는 혼란스러웠다. 솔직히 말하자면 기분 나쁜 흥분이었다. 뉴스의 현장 영상에 이끌려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오르려 하고 있다. 아니, 그 기억을 되살리고 싶다고 자신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분명 자신이 배움터를 떠난 후 몇 년이고 지난 뒤에 무슨 일인가가 일어난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생수 사건이 벌어진 전후, 노리코가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이후에 말이다. 그렇게 믿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고 만다. 시체는 훨씬 전부터 있었던 것이 아닐까. - page 168 ~ 169
변호사로 일하며 미래 학교 터에서 발견된 백골 사체와 관련된 의뢰를 맡게 된 노리코는 어쩌면 그 사체가 미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30년 전 여름에 있었던 '그 사건'의 진상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과연 '생각하는 힘과 자립심을 가진 아이들을 키워내는 곳'이라는 미래 학교의 민낯은...?
사체는 누구인 것일까?
그 여름, 그곳으로부터의 진실을 좇게 되었습니다.
하아...
결코 가볍지 않았던 이 소설.
소설 속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도 만났었기에 읽는 내내 가슴 한켠이 아렸습니다.
특히나 이 문장은 저에게 선사한 바가 컸습니다.
"배움터 터에서 시체가 나온 후, 그게 자신이 알고 있던 아이가 아니면 좋겠다고, 자신의 딸이라거나 손녀라거나, 가족이나 관계자가 아니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 사실은 다들 본심으로는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거든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긴 채, 자신이 아는 상냥한 친구나 귀여운 손녀인 채 시간과 기억이 멈춰버리면 행복하겠다고. 걱정된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슬픔이나 한때의 추억에 매달리고 싶어할 뿐이죠." - page 418
호박에 갇힌 곤충 화석처럼 시간을 멈추고 추억을 결정화하고 있던 것을 깨기까지...
그리고 내던져진 이 질문.
나는 '부모'로서의 자신을 과연 믿을 수 있나?
서로에게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되짚어볼 수 있었던 이 소설.
마치 한여름의 강렬한 햇살처럼 내 피부에 와닿아 태운 뒤 여름이 가고 가을 어디쯤에 희미해진 느낌이었던 이 소설.
책장을 덮고 만감이 교차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