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 - 탐정이 된 의사, 역사 속 천재들을 진찰하다
이지환 지음 / 부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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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의사, 천재들.

제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들이었습니다.

의학, 역사, 추리를 한데 아우른 이 책.

참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나는 역사 속 위인들을 진찰하는 의사입니다"

의학과 추리의 눈으로 바라본 뜻밖의 인물사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



의학은 한 편의 추리다. 의사는 통증이라는 사건을 안긴 가해자 질병을 탐정처럼 수색해 나간다. 이 작업은 상당히 흥미진진해서, 끔찍한 학업에 지쳐 앓는 소리를 하던 의대생도 희귀 환자 증례 시간에는 눈을 반짝인다. - page 6

의사가 질병을 진단해 내는 과정은 명탐정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고 범인을 밝혀내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셜록 홈스를 탄생시킨 작가 아서 코넌 도일은 의사였고 셜록 홈스의 모델이 의사라 하니 뭔가 맞아떨어지는 모습에 살짝 소름이?!

여튼 정형외과 전문의인 저자가 스스로 탐정이 되어 환자로는 우리에게 익숙한 10명의 역사적 인물을 선정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이들의 질병을 추적하는데 그 과정이 마치 한 편의 추리 소설처럼 펼쳐졌습니다.

당시 시대상과 의학 수준, 발병 과정, 외관상 병증을 파악할 수 있는 각종 역사 문헌과 기록, 사진 자료와 초상화, 국내외 의학 논문을 참고하여 질병의 미스터리와 매혹적인 이야기로 우리에게 지적 탐구의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저 역시도 최고의 성군이자 언어학자 '세종대왕'이 '고기를 좋아하고 운동을 싫어해서 결국 비만해진 왕'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관심을 두지 않은 분야가 없고, 완벽주의자이며, 전국을 돌며 친히 강무에 참여한 세종이, 문자까지 만들어 낸 한반도 역사상 최고의 천재 세종이 왜 운동을 하지 않았을까?

저자는 세종을 괴롭힌 병, 범인을 추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눈병 12번, 허리 통증 6번, 방광염 증상 5번, 무릎 통증 3번, 심한 갈증 2번, 체중 감소 1번.

나이대별로 분석하면 무릎과 허리 통증은 20대 초반에 발생했고 30대에 심해졌으며 눈 통증은 40대부터 악화되었던 그.

허리와 눈 증상을 동시에 발생시키는 질병은 단 하나.

척추에 염증이 생겨 허리뼈가 대나무처럼 굳고 합병증으로 포도막염을 일으키는 '강직성 척추염'이 그를 주저앉히고 말았던 것이었습니다.

아픈 등을 곧추세우고 침침한 눈을 비비며 책을 읽었을 세종을 생각하니 정말이지 최고의 성군이었음을 다시금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인상적이었던 건 레게의 대부 '밥 말리'의 이야기였습니다.

흑인 노예 후손인 어머니와 영국 귀족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의 이름은 로버트 네스타 말리였습니다.

(훗날 '희망을 노래한 밥 말리'로 불리게 됩니다.)

빈부 격차, 인종 차별, 정치와 이념 갈등 등 혼란했던 1960년대 자메이카의 빈민촌에서 자란 그는 '웨일러스'라는 밴드를 만들고 그가 노래한 평화와 희망의 메시지는 전 세계로 퍼져 나가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는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한 줄기 빛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1976년 12월 자선 공연을 앞두고 저격 사건이 벌어지고 다행히 가슴과 팔에 총탄이 스치는 부상만 입게 됩니다.

누가 말리를 쐈는가?

총격범은 도망갔고 증거도 없어 누가 왜 그를 쏘았는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제가 백인도 흑인도 아니듯, 저는 민중당도 노동당도 지지하지 않아요. 제 유일한 정부는 라스타파리입니다. 가난한 이의 종교죠." - page 271

사실 밥 말리는 피부색 차별이 싫었습니다.

붉은 피는 흑인이 흘렸고 창백한 백인은 박쥐처럼 이득을 챙기는 부조리에 위대한 흑인 지도자가 탄생해 흑인을 이끌고 새로운 땅에서 새롭게 시작해야 없어질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흑인 메시아가 고통받는 동포를 구원하리라는 믿음을 가진 종교 '라스타파리'에 귀의하게 되는데 이것이 훗날 그를 죽음으로 인도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대단한 축구광이었던 말리는 짬이 날 때마다 축구를 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어느 날 엄지발가락을 다치게 됩니다.

이 부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그는 멍든 발가락을 싸매고 공연을 했지만 당최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발톱이 빠지고 곪더니 이내 걷기도 힘들어지게 됩니다.

알고 보니 이는 손이나 발과 같은 신체 말단에 까만 점 모양 병변이 생기는 피부암 '말단흑색점흑색종'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진행된 말단흑색점흑색종은 엄지발가락 전부와 발 일부를 제거해야 하지만 신체를 훼손하면 안 된다는 라스타파리 교리로 인해 결국 그는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자신이 암으로 고통을 받던 중 "자메이카를 위해 노래를 불러 줘. 화합의 콘서트를 열자."는 클라우디 마솝의 말에 응했고 민중당 총수 마이클 맨리와 노동당 총수 에드워드 시가를 무대 위로 불러 악수를 시키며

"우리는 화합해야 해요. 그것이 국민의 뜻이죠. 당신들은 그걸 지켜야합니다."

라고 외친 그의 모습.

1978년 에티오피아에서 열린 아프리카 해방 집회에서 아프리카 대부분의 나라가 형식적으로 독립했을 뿐 여전히 백인 정치인의 대리 통치하에 굴러가는 사실을 알고는 노래 <짐바브웨>를 발표하고 1980년 4월, 짐바브웨가 진정한 독립을 성취하게 한 원동력을 제공했던 그.

그런 그를 잊지 않고 초대한 짐바브웨이에 장거리 여행으로 병이 악화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그러니 더욱 가야 해. 내 생에 이런 기쁜 날이 몇 번이나 있겠어!"

짐바브웨에 희망을 노래한 그의 모습이 참 아련히 남았습니다.

이 책의 마지막에 저자는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우리는 초등학교 졸업, 대학교 입학, 결혼, 출산과 같은 굵직한 이벤트가 모여 삶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큰 사건을 와닿게 하는 것은 사소함이 아닐까. 삶이란 뭉뚝한 사건의 분탕질 속에 부지런히 적응한 사소함일지 모른다.

'삶도 사소함에 깃든다.'

이 책은 천재들의 사소함에 주목했고, 사소함을 관찰해 병을 진단해 냈다. 왜 세종은 운동을 기피했으며 말리는 죽을 때까지 암을 방치했는지, 모두 사소함에 주목한 질문들이다. 우리는 손톱 같은 사소함을 관찰했기에 그들의 숨겨진 삶을 엿볼 수 있었다. 진단은 사소함에 주목하는 시선이다. 이 시선에는 원인을 밝히겠다는 철저함과 환자를 대하는 따뜻함이 함께한다. - page 284

무심코 지나칠 수 있었을 그 '사소함'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저자를 통해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들을 만날 기회가 되어서 보다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위인의 감춰진 삶을 만나게 되고 새로운 모습을 바라보게 되면서 참으로 아련하고도 따스함이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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