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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도깨비, 홍제 - 인간의 죽음을 동경한
양수련 지음 / 북오션 / 2022년 3월
평점 :
'도깨비'
이 단어에 그만 심쿵!! 했습니다.
그러다 이 문구를 보자마자 또 한 번 심쿵!! 했습니다.
"내가 찾아야 할 감동이
너라면 얼마나 좋을까?"
가슴 한구석이 저릿한 이 느낌.
그가 찾는 감동이 어떨지 기대를 하며 책을 펼쳐들었습니다.
감동을 찾아다니는 불멸의 존재,
인간 세상에서 그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의 도깨비, 홍제』

도깨비들의 수령인 '홍제'는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했습니다.
인간의 어리석은 행동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며 비아냥거리기를 즐기던 그.
"인간은 우스갯소리로 주고받는 이런 술자리 대화꺼리로나 어울리는 딱 그런 존재라고, 안 그런가?" - page 6
도깨비들의 잔치에 불려온 무녀 '비령'은 안하무인인 도깨비의 수령 홍제의 콧대를 꺾어놓을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할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노여움을 섣불리 드러내지 않으며 설욕의 기회를 기다리던 중...
잔치에 끌려온 지 육일만의 일이었습니다.
"홍제님과 귀설님 중 누가 더 재밌는 얘기를 들려주는가, 하는 겁니다. 재미없는 얘기를 하는 쪽이 물론 지게 되는 것이지요."
"응당, 인간에 얽힌 얘기여야겠지?" - page 15
'인간의 내기'를 제안한 무녀.
내심 구미가 당겨진 홍제는 못 이기는 척 내기에 응하게 되고...
"귀설이가 이긴 거야. 자식을 얻은 도깨비가 있다는 말을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했네. 우리 중 누가 자식을 얻을 수 있지? 수령인 홍제 자네라고 해도 그것은 어림없는 일이야. 이번 내기는 확실하게 자네가 졌네." - page 23
내기에서 진 홍제.
한 권의 책이 되어 청소부의 허리춤에 매달려 인간의 세상에 버려지게 됩니다.
"이야기 중의 이야기는 하나면 충분하지요. 하지만 귀설의 것을 능가하는 얘기를 홍제님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나 이곳으로 가져오게 될지는 그 누구도 모르는 일이랍니다."
비령은 나긋나긋 생글생글했다.
"열흘? 아니 한 달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
누군가 말했다.
"어찌 알겠습니까? 한 달이 될지, 일백년이 걸릴지 아니면 그 이상이 될지. 그것은 이야기를 구해 올 홍제님 능력의 문제라고 생각이 됩니다만." - page 24
인간의 감동적 이야기를 찾아 다시 도깨비 섬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그의 복귀는 수천 년째 미뤄지고 있었습니다.
도깨비 홍제로 부귀영화를 쥐게 된 '정기문'.
정기문은 이에 그치지 않고 영생의 삶을 탐하게 되고 불멸의 도깨비 홍제는 무한의 생에 염증을 느끼며 오히려 인간의 죽음을 동경하게 됩니다.
홍제의 마지막은 어떻게 될지...
인간의 내기는 완성할 수 있을지...

부귀영화를 쥐고도 끝도 없는 탐욕을 보이는 인간의 모습.
괴물은 홍제가 아닌 바로 우리였습니다.
홍제가 기문에게 전했던, 아니 우리에게 전한 이 말이 오랫동안 남았습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가 봐온 인간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 같아. 멈출 줄도, 머무를 줄도 모르거든. 바다 밑을 헤집고, 우주를 항해하고, 인간의 육체와 두뇌를 대신할 것들을 만들어내면서 그것을 발전이라고 믿지. 지구의 다른 생명체들한테도 과연 그럴까? 인간의 이기적인 그 발전이란 것이 내게 고독하네만. 내 심장이 뜨겁게 달아오르질 않아. 김빠진 콜라 같아." - page 183
생의 불멸과 소멸에 관한 사색.
생의 유한함이 얼마나 고귀한지를, 하나의 죽음이 수많은 생명을 위해 남긴 것들이 얼마나 감동적인지를 일러주었던 홍제를 만나게 되어 다행이었다고 할까...
흐드러진 벚꽃 속에 아련히 홍제의 이야기가 향으로 남아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