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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기쁨 - 길바닥을 떠나 철학의 숲에 도착하기까지
토머스 채터턴 윌리엄스 지음, 김고명 옮김 / 다산북스 / 2022년 2월
평점 :
뭔가 '배움'의 의미를 되찾고 싶어서였을까...
어느덧 3월인데 야심 찼던 계획들은 또다시 물거품이 되기 전에 마음을 다 잡고 싶어서였을까...
이 모든 건 핑계일지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이 책이 궁금하였습니다.
나의 아버지, 1만 권의 책, 그리고 길바닥에서의 탈출에 관하여
"막다른 벽을 마주할 때마다
답은 항상 아버지의 서재에 있었다."
그의 배움의 연대기를 통해 저도 성장을 하고 싶었습니다.
진흙탕 한가운데 외딴섬처럼 떠 있던 아버지의 서재,
그곳은 '진짜' 세계로 향하는 길목이었다
『배움의 기쁨』

어머니 백인이고 아버지는 흑인인 부모님으로부터 혼혈이지만 '흑인'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터득해야 했던 '토머스 윌리엄스'.
어릴 적 그는 모종의 '흑인다움'을 표출하는 법을 배우면서 추악하고 무도한 것이지만 야생의 공간에서 살아남고자 발버둥을 치고 있었습니다.
특히나 1980 ~ 90년대에 걸쳐 거친 힙합 문화가 군림하던 시대였기에 갱스터랩을 들으며 지식과 호기심을 금기시하고 힙합만을 유일한 진리로 떠받들던 또래 흑인 사이에서 몸짓과 말투로 깡패를 흉내내는 것이 삶의 필수 요소였습니다.
힙합이 지배하는 문화 속 거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어쩌면 한없이 삐뚤어질 수 있었겠지만 지금의 그가 있게 된 건 특별한 '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클래런스 리언 윌리엄스'.
아버지는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왔었습니다.
흑인이 교육을 받으려면 죽을 각오를 하라는 말이 오가던 시대에 손전등 불빛에 의지하여 책을 읽고 끝내 사회학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아버지.
무엇보다 이 아버지가 존경스러웠던 점은 아들에게 권위적이지 않게 인내심 있게 기다려주며 직접적인 지시를 내리기보다는 스스로 생각해서 답을 찾아가게 하는 조언을 들려주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던 그는 밖에서는 또래들과 거칠게 행동했다면 집에서는 아버지 앞에 앉아 얌전히 공부하는 이중생활을 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열여덟 살 때는 진짜처럼 보이는 동시에 아버지를 만족시키는, 절묘한 균형을 유지하는 경지에 이르게 되고 배움의 희열을 느끼는 철학도로 거듭나게 됩니다.
사실 그에게 '책'이란 슈퍼맨에게 크립토나이트와도 같았습니다.
심한 발진과 두드러기를 일으키는 무시무시한 알레르기원이었는데 책의 세계로 인도하게 된 건 어떤 숭고한 깨달음이나 정신적인 갈증이 아닌 순전히 또래의 압력이었습니다.
모순적이게도 그것이 고등학교 때 책으로부터 멀어지게 한 힘이었지만 순전히 자신의 의지로 책을 읽기 시작하고 그때서야 어릴 적 아버지가 자신에게 건넨 말을 이해하게 됩니다.
"책만 있으면 주변에 아무도 없어도 괜찮아. 나는 너와 너희 어머니와 네 형을 빼면 여기 이 책들이 유일한 친구다. 아들아, 책과 대화하면 천재들과 대화할 수 있어." - page 195
무엇보다 저 역시도 찡했던 건 책을 열심히도 읽으셨던 아버지가 정작 책의 즐거움보단 처절한 몸부림이었다는 사실이...
"나는 소설을 읽을 때도 무조건 펜을 쥐고 밑줄을 그어 가면서 읽었다, 아들아. 밑줄 긋는 걸 좋아해서 그런 게 아냐. 뭐라도 지식을 건져서, 뭐라도 실용적인 지식을 건져서 내 인생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강박 같은 거였지. 모르는 게 너무 많은데 나한테 뭐라도 가르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거든. 그래서 나한테 필요한 지식은 모두 책 속에 있을 테니까 책만 열심히 읽으면 다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래, 책이란 걸 그냥 예술 작품으로 취급할 수가 없었지."
나중에 다시 그 말을 생각하자 원래는 재미있어야 할 경기에 죽기 살기로 임하면서 즐거움은 남의 이야기로 미뤄두었던 세인트앤서니의 선수들이 불현듯 떠올랐다.(그것이 진짜든 허상이든 간에) 거기에 걸린 것이 워낙 크다 보니 다른 아이들에겐 신나서 하는 운동이 그들에겐 일종의 노동이 되어 있었다. 그때 알았다. 내가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파피가 내 나이 때 똑같은 책을 즐겁게 읽지 못했기 때문임을. 그러자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저 시대를 잘 타고났을 뿐이란 뜻이었으니까. 그래서 파피에게 독서에 대하나 칭찬을 받았을 때 느꼈던 뿌듯함이 돌연 부끄러움으로 바뀌었다. 아버지에게 갚아야 할 큰 빚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page 225 ~ 226
그리고 아버지가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모습.
왼손잡이로 태어나 고되게 훈련해서 오른손으로 글씨 쓰는 법을 터득했고 체스도...
하루도 체스를 두지 않는 날이 없었다. 파피는 항상 흑을 잡았다. 백이 먼저 움직이는 체스에서 흑은 항상 한 수 뒤에서 방어해야 하는 처지로, 테니스로 치면 서브를 받는 쪽인 리시버에 해당한다. 체스도 테니스처럼 고수끼리의 승부에서는 리시버, 그러니까 후순위 선수에겐 승산이 별로 없다고 본다 .그래서 흑이 승리하거나 비기면 테니스에서 리시버가 승리한 것과 같은 이변으로 여겨진다.
"왜 항상 흑으로 하세요? 먼저 하고 싶지 않으세요?"
내가 물을 때마다 파피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나는 흑이 좋다, 아들아. 흑이 인생의 현실을 더 잘 보여주거든. 후순위는 아주 불리해. 그래서 더 영리하게 경기해야 하지. 머리를 써야 한단 말이야." - page 114 ~ 115
자신이 처한 열악한 환경을 탓하기 전 자신을 발전시키며 사회적 제약에서 벗어나 '한 명의 나'로 우뚝설 수 있다는 것을.
저도 아버지로부터 한 수 배웠습니다.
배움의 기쁨.
그 기쁨의 중심에 있던 가족의 사랑이, 믿음이, 그리고 책이 있었음을 다시금 되짚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