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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저쪽 밤의 이쪽 - 작가를 따라 작품 현장을 걷다
함정임 지음 / 열림원 / 2022년 2월
평점 :
봄바람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설레는 마음...
과는 달리 현실은 갑갑하기만 했습니다.
하아...
그러다 이 책의 소개글이 제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소설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고, 여행을 떠나지 않고는 살 수 없다. 프루스트를 생각하며 파리로 향하는, '여기가 아닌 그 어딘가'를 꿈꾸며 작가와 작품을 쫓는 마음이 자신에게는 일종의 불치병이나 다름없다고 함정임은 이야기한다.
너무 낭만적이지 않은가!
작가와 작품이 살아 숨 쉬는 곳으로 향해 그 영원을 느낀다는 것이!
그렇기에 저 또한 그녀에게 홀린 듯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일종의 병이라고밖에 내 마음을 설명할 수 없겠다
나는 밤낮없이 그들을 기웃거렸고, 그곳의 기미를 살폈다
헤밍웨이, 모파상부터 오사무와 도스토옙스키까지
작가를 따라 그곳으로 갔고,
홀린 듯 걸었다
『태양의 저쪽 밤의 이쪽』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의 콩브레의 모습을 보며 현재의 시간에서 맞닥뜨리는 대상들은 모두 과거의 크고 작은 공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순간(시간)과 공간은 하나의 장면으로, 나아가 하나의 이야기로 창조된다는 것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이 대목, 아니 이 소설을 구상하고 쓰기 시작한 시기는 1910년 전후다. 백여 년 후, 내가 이 마을을 찾아 목도했던 풍경과 분위기는 놀랍게도 당시 프루스트가 기억을 더듬어 재현한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나에게 놀라움을 던져준 것은 백 년이라는 시간 차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프랑스 시골 소읍의 속성도 속성이지만, 그것을 세밀하게 묘사해놓은 작가의 정밀한 관찰력이다. 마치 펜 끝에 카메라를 장착한 듯, 의식의 촉수에서 그 카메라를 작동하듯, 단어와 단어가 지나가며 만들어내는 문장과 단락에서 장면과 세상이 마법처럼 창출된다. 집과 거리, 마을과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거기 그렇게 있어왔으면서도 작가의 시선을 기다리기라도 했듯 어둠 속에서 깨어나 "마술 환등기"처럼 우리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는 것이다. - page 68
한강과 박솔뫼의 광주로 떠나기도 하였습니다.
한강의 『흰』은 '흰'에 바치는 비가의 흐름으로 작가가 목록으로서의 서사, 목록을 통한 애도 서사를,
박솔뫼의 『머리부터 천천히』는 여름, 소설, 무덤, 바다 같은 보통명사와 속리산, 카프카, 부산 같은 고유명사, 그리고 병준과 이덕자 같은 익명에 가까운 인물을 호출해 뒤섞음으로써 다성적이고 다형적인 이야기의 카니발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바.
이들은 그 어떤 페이지에서도, 자기 안에 갇혀 있던 오래된 슬픔, 또는 자기 안팎에 떠도는 이름들을 제대로 호명해줌으로써, 신비로운 치유의 힘을 선사한다. 치유란 가벼워지는 것, 곧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 page 307
혼의 울음, 또는 울림.
자기 자신, 또는 누군가를 위한 추모와 애도.
소설과 세상이 혼합되어 포용하며 치유되어감을 새삼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아폴리네르와 로랑생, 헤밍웨이, 모디아노와 프루스트, 보들레르와 벤야민의 파리부터 랭보의 샤를빌메지에르와 국경지대, 플로베르와 모파상의 노르망디와 영불해협, 키냐르의 브르타뉴와 카뮈의 루르마랭.
호머의 트로이와 에게해, 파묵의 이스탄불과 아나톨리아 고원, 토마스 만의 베네치아와 아드리아해, 도스토옙스키의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발트해, 바르트의 바욘과 피레네 대서양, 그리고 피츠제럴드의 롱아일랜드와 남프랑스 지중해, 제발트의 유럽, 다자이 오사무의 후지산과 가와구치 호수, 그리고 김채원의 쪽배가 있는 바다, 저자의 바닷가 서재까지.
작가와 작품을 쫓아 태양의 저쪽에서, 때론 밤의 이쪽으로의 여행.
돌아오는 발걸음엔 아쉬움과 미련이...

미지의 세계를 향한 사랑을 기억이든 여행이든 소설이든 그 무엇으로도 떠나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