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잊어도 좋겠다 - 나태주 인생 이야기
나태주 지음 / &(앤드)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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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시인 '나태주'.

시를 잘 알지 못하는 저에게도 그의 시는 마음에 와닿습니다.

그래서 유일하게 제 책장엔 그의 시집이 있습니다.


이번엔 그가 시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하였습니다.


첫눈 같은 유년 시절,

아름다운 기억의 문이 열린다


시에서 느껴졌던 그 따스함이 그의 유년 시절에서도 느껴질 것 같은 이 느낌적인 느낌을 가지고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한 인생의 봄빛이 적막하여 아름답고,

적막하여 찬연하다


이제는 잊어도 좋겠다



그가 말하였습니다.

'인생은 기억이다'

라고.

그 기억은 꺼내 보는 사람의 처지나 형편, 감정 상태,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변형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립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진정 추억을 쓰고 싶었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남겨진 기억, 그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기억들을.


기억만이 인생이다. 기억만이 참된 인생의 가치요, 재산이다. 그러므로 날마다 최선을 다해 정성껏 자신의 인생을 갈고닦으면서 살아야 한다. 그렇게 자신에게 주문을 걸며 다그치며 살아온 날들이다. 하지만 기억처럼 끈적거리고 성가신 존재도 없다. 기억은 지나치게 몸피가 크고 무겁다. 그것들을 버리고 좀 더 가벼워지고 싶다. 이제 나는 그것들을 모두 환원시켜야 한다. 그런 후 망각의 늪에 주저 없이 내던져야 한다. - page 8


그래서 그는


"나는 한 개의 민들레 홀씨처럼

가벼워지고 싶고 작아지고 싶다."


고 하였지만 그 홀씨는 우리의 가슴속에서 또 하나의 민들레를 피워내고 있었습니다.

참 따스하게도 말입니다.


그의 유년 시절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식민지 체제에서 독립된 나라로 바뀌고 그 소용돌이 속에서 사람들이 갈등하고, 거기에 더하여 생명까지 위협하는 6.25 전쟁이 일어난 격변의 시절.

하지만 포성의 기운을 감지하지 못할 만큼 평화롭게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외할머니' 덕분이었습니다.

 




당신의 친정집이 있는 귁뜸마을 감꽃과도 닮은 그녀, 외할머니.

감꽃이 지고 나서 감알이 열리던 어느 날.

그의 아버지가 아들을 간이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데리고 가겠다고 합니다.

가지 않겠다는 말도 못한 채 떠나게 된 그.


아버지가 무서워 차마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땅만 보며 걸었을 것이다. 조금씩 외갓집과 멀어지는 길. 울고 싶었지만 울지도 못했다. 내내 마음속으로 생각이 나는 건 기껏 우려만 놓고 먹어보지도 못하고 온 외갓집 그 접방살이 부엌의 단지 속 풋감. 그 풋감을 외할머니는 어떻게 하셨을까. 당신이 드셨을까? 버리셨을까?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릿하게 보랏빛 물감으로 물든다. 그것은 마치 가슴속 청동 항아리 바닥에 가라앉은 유리구슬과 같다. 그립고 아쉽고 안타까운 느낌이 거기에 머문다. - page 67


떫고도 아린!

적막하지만 찬란한!

그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외갓집에서 아버지네 집으로 가는 길은 논둑길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이 길을 따라 식구들이 오랫동안 오갔다고 하는데...


지금은 물론 자동차가 다니는 큰길이 뚫려 자동차를 타고 다니도록 되어 있지만 나로서는 그리운 길이 아닐 수 없다. 어린 마음에 그랬다. 외갓집에 가면 막동리 집이 궁금하고 막동리 집에 있으면 외갓집이 그립고. 어쩌면 나는 그 길 위에서 그리움이란 걸 배웠는지 모른다. - page 69


고달프기도 하고 기대에 부풀기도 했던 길.


"어머니, 나 외갓집에 가고 싶어요."


그렇게 토요일 간이학교 공부를 마친 다음 혼자서 외갓집에 갔던 그.

풋감이 떨어질 무렵 갑자기 떠난 뒤 눈이 내리는 겨울철에 다시 온 그곳은 여전히 따뜻했습니다.

어여쁜 손주 얼굴을 바라만 보아도 당신의 마음이 편해지고 흐뭇하셨던 외할머니.

월요일이 되고 다시 학교에 가는 날 아침.

소복하게 쌓인 눈길이 그의 발걸음을 붙잡습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이대로 가다가는 너 학교에 늦겠다. 내 업어서 데려다주마."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 당신의 넓은 등을 내어주시던 외할머니.

그렇게 외할머니만 있으면 마음이 편하고 그 어떤 문제도 어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영주야, 저기 네 학교가 보인다 여기서부터는 혼자서 갈 수 있겠지?"

"그럼요. 나 혼자서 갈 수 있어요."


둑길에 내려 산기슭으로 난 길로 걸어가던 그.

여전히 그 자리에 서 계시던 외할머니.


"어여 가거라."


외할머니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을 때쯤 나의 발길은 학교 앞에 다다랐고 외할머니와 완전히 헤어져 학교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날 학교에서 공부하면서도 내내 외할머니에 대한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외할머니는 나를 업고 왔던 그 길을 혼자서 타박타박 걸어서, 접방살이 그 집으로 돌아가셨을 것이다. - page 122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우리 할머니가 떠올랐기에, 우리가 집으로 돌아갈 때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드시던 모습이 그려졌기에 할머니가 너무나 애틋했습니다.

나의 할머니...


서른여덟 살에 혼자된 외할머니.

구슬프고 힘겨웠을 텐데 그녀는 틈만 나면 고목나무가 있는 언덕 위에 올라 아무 말없이 먼 마을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오직 하나밖에 없는 피붙이 외동딸이 시집가서 사는 막동리 쪽.


도통 말씀이 없으셨다. 다만 멍하니 먼 곳을 바라보고만 계셨다. 그것이 당신에게 하나의 위안이고 낙이었을까. 가끔은 어린 나를 데리고 고목나무 언덕 위로 올라가기도 하셨다. 언제나 하얀 치마저고리 하얀 고무신 차림. 평생 낭자머리를 바꾸지 않고 쪽을 찌고 비녀를 꽂고 사셨다. 외할머니의 일생은 벽 위에 걸어놓은 그림처럼 변함이 없었다. 평생을 그렇게 묵묵히 당신 생애의 강물을 건너가셨을 뿐이다. - page 213


외할머니와의 기억은 글로 남겨지고 시로 피어났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너무 좋았다는 진부한 표현 말고 다르게 표현하고 싶었지만...

그냥 좋았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사라지고 문장만이 세상에 남았으면 좋겠다. 부디 그러기를 바란다. - page 336


분명 문장들은 세상에 남을 것입니다.

그러니 부디 오랫동안 글을 써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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