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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하스 의자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11월
평점 :
이 작품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읽어보지 않았을 뿐...
(왜 안읽어봤을까...?!)
'에쿠니 가오리' 작가만의 특유한 문체를 좋아하기에, 섬세한 감정과는 달리 무덤덤한 문체가 오랫동안 아려오기에 개인적으로 그녀의 작품을 찾아 읽곤 합니다.
좋아하는 작품으론 『냉정과 열정 사이』.
남녀 간의 미묘한 심정을 섬세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정말 두고두고 읽어보는 소설이랄까.
가끔은 실망하는 작품도 있었습니다.
워낙 그녀의 작품 속 주인공이 상처와 결핍을 지니고 있는데 그 치유를 불완전한 사랑-소위 불륜-으로 그려나가는데 아무리 가슴으로 이해해보려 했지만 머리로 이해가 안되었다고 해야할까...
그래도 이번 이 작품은 딱 그녀만이 그려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일 것 같아 그래서 조금은 설레었습니다.
나는 해방된 기분이다.
하지만 그 해방은 자유가 아니라,
작은 죽음 같은 것이다.
『웨하스 의자』

옛날에, 나는 어린아이였고, 어린아이들이 모두 그렇듯 절망에 빠져 있었다. 절망은 영원한 상태로, 그저 거기에 있었다. 애당초, 처음부터.
그래서 지금도 우리는 친하다.
오, 반가워.
절망은 때로 옛 친구를 찾듯 나를 만나러 온다. 잘 지냈어? - page 11
이 소설의 첫 문장.
소설의 마지막을 읽고 나서 다시 되돌아와서 읽게 된 문장.
쓸쓸하고도 잔잔한 여운이 남았기에 자꾸만 곱씹게 되었습니다.
화가이자 스카프, 우산 디자이너인 그녀.
중년에 접어든 애인은 있지만 결혼은 하지 않은 중년의 독신 여인입니다.
"언니는, 정말 어린애 같다니까."
동생은 멋대로 그런 말을 한다.
"언니, 참 별나다."
그리고 이런 말도.
"언니, 고독하네." - page 21
어른이지만 여전히 어린아이 같은 그녀.
그녀에게 '행복'은 마치 '웨하스 의자'와도 같았습니다.

그녀는 애인과의 사랑 안에서만 숨 쉴 수 있는, 사랑 속에서만 행복을 느끼곤 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애인은 두 딸이 있는 유부남이었습니다.
그도 그녀를 사랑하지만...
"사랑해."
애인은 나의 눈을 가만히 쳐다보고는,
"나도 사랑해."
하고 말했다. 똑바로, 성실하게.
나는 매일 조금씩 망가져 간다. - page 144 ~ 145
어차피 이 둘의 사랑은 현실적으로 지속될 수 없음을 알기에...
이들의 사랑 역시도 '웨하스 의자'처럼 눈앞에 있지만 앉을 수 없는, 그래서 조금씩 부서지다 결국 부식되어 버리고 마는 것처럼 그녀도 조금씩 망가져 갔습니다.
"우리는 같이 그걸 기다리는 거야."
애인이 말했다.
"아마 1초의 오차도 없을걸. 다른 장소에 있어도, 당신에게 그것이 오면, 내게도 올 거야."
나는 어이가 없어 고개를 저었다.
"믿어?"
"안 믿어."
바로 대답했지만, 늦었다. 나는 이미 믿고 있었다.
"당신, 꽤나 절망한 모양이네."
사랑을 담아, 나는 말했다. - page 240
어쩌면 파렴치한 '불륜' 역시도 '사랑'의 한 갈래였고 이 사랑의 끝에 그려진 '절망'의 모습을 그녀만의 문체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들을 통해 '슬픔'을 엿볼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슬픔.
나는 슬픔에 대해 생각한다. 슬픔에 대해 명확하게 생각하고 밝히려 하면 할수록, 그것은 진귀한 식물이나 무엇인 것처럼 여겨지고, 전혀 슬프지 않은 기분이 든다. 다만 눈앞에 엄연히 있을뿐. 나는 이 집에서 진귀한 식물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환경이 그런대로 좋은지, 그것은 놀랍도록 쑥쑥 자라고 있다. 그것 앞에서 나는 감정적이 될 수 없다. 슬픔은 나와 따로 떨어져 있어서, 나는 나의 슬픔을 남의 일처럼 바라본다. - page 130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 관계가 한편으론 이해할 수 있다면...
난 부도덕한 사람인 걸까...?
읽고 난 뒤 뭔가 표현하지 못할 감정에 휩싸여 쉬이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사랑'과 '절망' 그 아슬아슬함 속에서 '웨하스 의자'를 떠올려봅니다.
길쭉한 네모 반듯한 모양.
조금만 손을 데어도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부서지게 되면 다시 새 웨하스로 보다 두껍게 만들 웨하스 의자를 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