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로를 걷는 신라공주 - 신라공주와 페르시아왕자의 약속
이상훈 지음 / 파람북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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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입는 남자』와 『김의 나라』의 작가 '이상훈'.

너무나도 감명 깊게 읽었었습니다.

 

역사소설은 역사적 팩트에 근거해서, 기록이 누락된 부분을 상상력으로 메꾸거나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는 작업이다. - page 4

 

그였기에 가능했던 '역사적 가정'의 공백을 메우는 일은 독자에게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에 보다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곤 하였습니다.

 

이번 소설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우리 역사 속에 숨겨진 페르시아,

이란 역사 속에 숨겨진 신라를 펼친다!

 

신라와 페르시아, 이란과 한국의 인연이 있었다는 사실부터 저에겐 흥미로웠습니다.

이 범상치 않은 인연, 과연 어떤 사연이 담겨있을지...

 

사마르칸트 벽화 속의 신라인과 신라 왕릉의 페르시아 전사,

실크로드 서쪽과 동쪽의 끝, 신라와 페르시아의 숨겨진 역사

 

테헤란로를 걷는 신라공주

 

 

바닷가가 가까운 경주의 시골 마을이 고향인 희석.

이국적인 외모 때문인지, 그들의 조상이 페르시아에서 왔다는 이야기가 신라 때부터 대를 이어가면서 구전으로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할아버지는 희석이 어릴 때부터 늘 이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우리의 조상은 페르시아 제국에서 건너온 왕자의 후손들이야. 페르시아왕자가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 떠나갈 때, 여자와 어린애들은 여기에 남아서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이거다." - page 17

 

그저 한 귀로 듣고 흘렸지만, 그것이 인연이 되었는지 이란에서 소년 시절을 보내게 된 희석에게 할아버지는 희석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란이 우리 조상이라고 하는 페르시아 제국의 땅이다. 네가 그곳에 가면 신라에 왔다는 그 나라 왕자의 기록을 꼭 한번 찾아보거라." - page 17

 

이란 사람들은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형제의 나라라고 하면서 가족처럼 다정하게 품어주곤 하였습니다.

그들이 왜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하는지 한 번은 학교 선생님께 물어보았습니다.

 

"선생님, 왜 이란에서는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하나요?"

시를 사랑하는 이란 선생님은 미소로 희석에게 답했다.

"옛날에 우리 페르시아왕자님이 나라를 잃은 상황에서 피난을 가셨어. 다른 나라들은 모두 외면했는데 신라의 대왕은 우리 왕자님을 형제처럼 따뜻하게 맞아주셨단다. 그리고 그 페르시아왕자님은 신라의 공주님과 아름다운 사랑을 이루시고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우리 페르시아의 영웅이 된 거야. 지금 이야기는 역사책에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구전으로 입에서 입으로 천 년 이상을 이어져 오고 있지. 그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래동화가 되어서 이란 사람들은 신라의 나라,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여기는 거야." - page 18

 

그는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뿌리를 꼭 찾고 싶어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으로 하면서 틈틈이 페르시아 제국과 신라의 자료를 파헤치곤 하였습니다.

그후 그는 방송국 다큐멘터리 피디가 되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그 미스터리를, 자신의 뿌리를 파헤치고 싶어했습니다.

 

"무슨 사건이라도 터졌어?"

"오늘 아침에 이란에 한국선박이 억류되었다는 뉴스가 떴어!" - page 20

 

정말 그와 인연이 되려고 했을까...

아무도 시사 특집을 맡고 싶어 하지 않기에 그는 자원해서 이번 이란과 한국과의 사건과 관련지어 자신이 꼭 만들고 싶었던 페르시아와 신라의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어릴 때 경험했던 이란과는 너무나도 변해버린 지금의 이란 모습은 낯설기만 한 희석.

어째서 이렇게 된 것일까......

이 의문점을 해결하기 위해 대학 다닐 때 밤새 술을 마시면서 페르시아의 역사에 관해 토론한 적이 있는, 페르시아와 중동의 역사 전공으로 그 지역을 발로 뛰어다니며 박사 논문을 써서 실력을 인정받은 박 선배(박현철)로부터 어릴 때 구전으로 전하던 페르시아왕자와 신라공주의 이야기가 담긴 책 《쿠쉬나메》를 발견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신라공주와 페르시아왕자의 로맨스가, 신라와 페르시아의 숨겨진 역사가 밝혀지게 되는데...

 

읽으면서 '역사'에 대해 되짚어볼 수 있었습니다.

 

"페르시아의 높은 문화에 감동받은 사람은 역사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헤로도토스였다. 그는 페르시아 황제의 배려로 페르시아에서 머물면서 페르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으로 남겼다. 헤로도토스가 아니었으면 페르시아는 역사에 사라지고 유물만 남았을 것이다."

"그러면 유럽의 역사학자들도 페르시아의 문화가 그 당시 최고였다는 것을 인정하는 건가요?"

"일부 양심적인 학자들은 헤로도토스가 기록한 내용을 인정하지만, 중세 유럽에 들어오면서 기독교 문화가 지배하면서 이슬람 문화에 대한 배격으로 이슬람화가 된 페르시아를 일부러 깎아내렸다. 지금도 유럽의 학자들이 페르시아의 높은 문화를 알고 있지만, 기독교적인 시각에서 현재의 이슬람이 된 페르시아를 애써 무시하는 거야."

희석은 혼자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역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네요." - page 109 ~ 110

 

무엇보다 우리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우리의 것을 지켜야 하는 이유를 일러주는 대목이 있었는데...

 

"중국과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타지키스탄 국경 부근에 법현과 현장 그리고 혜초의 비석이 세워져 있어. 세 스님이 지나간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인 경행처비가 나란히 서 있지. 그 비석은 중국이 세웠는데, 그 비석에 혜초를 당나라 승려로 표기하고 있어. 혜초의 비석에는 '대당화상혜초경행처'라고 새겨져 있다. '당나라 스님 혜초가 지나간 곳'이라는 뜻이야. 동북공정에 이어 김치와 한복까지 자기들 것이라고 우기는 중국이야. 혜초까지 빼앗겨서는 안 돼. 우리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해." - page 275 ~ 276

 

혜초의 글들이 둔황 석굴에서 발견되지 않았더라면 혜초는 역사에서 묻히고 말았을 것이다. 역사란 그런 것이다. 우리 모두의 삶이 역사가 되지만 기록이 없으면 그 삶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우리의 삶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사라지면 우리의 아름다운 삶도 사라진다. 거창한 역사적 기록이 아니더라도 혜초처럼 여행의 기록에 자신의 삶을 남기면 후세에 그것이 역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삶은 짧지만, 기록은 영원한 것이다. 우리가 죽더라도 기록은 영원하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살다가 갔지만 아름다운 기록을 남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삶은 기록ㅇ이다. 기록은 역사다. 혜초는 그렇게 우리의 역사가 되었다. - page 276 ~ 277

 

지금도 왜곡되어 있는 역사를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몫임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굳은 다짐을 해 봅니다.

 

페르시아 아비틴 왕자와 신라 프라랑 공주의 인연은 훗날 '테헤란로'로 그 의미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신라와 페르시아를 이어주는 연결고리이자 과거와 현대를 만나게 하는 통로.

그래서 이야기가 끝나면서도 여운이 남곤 하였습니다.

 

테헤란로에서 쏟아져 나오는 젊은이들의 활기찬 모습을 보면서, 희석은 아비틴이 보였고, 프라랑이 보였고, 페리둔이 보였다. 테헤란로에서 아비틴 왕자와 프라랑 공주가 나란히 걸으며 희석에게 미소를 보낸다. 희석의 긴 여정은 그 미소 속에 스며든다. - page 386

 

소설의 뒷 장엔 <신라와 페르시아의 인연, 그 흔적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 첫 시작이었던 페르시아 제국 실크로드의 중심인 사마르칸트에서 아비틴과 신라의 사신과의 만남이 그려진 벽화.

그리고...

 

이야기를 읽고난 뒤에 남겨진 흔적들을 바라보니 가슴이 뭉클하는 것이...

애처롭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역사이지만 막상 그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에,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

마냥 소설이라고 하기엔 깊은 울림을 선사하였기에 쉬이 책장을 덮을 수 없었던 이 소설.

그래서 '이상훈' 작가님의 이야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아닐까란 생각도 듭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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