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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앤 크라프트, 풍요실버타운의 사랑 - 여섯 가지 사랑 테라피 공식 ㅣ 한국추리문학선 10
김재희 지음 / 책과나무 / 2021년 7월
평점 :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분인 '김재희' 작가.
『경성 탐정 이상』시리즈와 『서점 탐정 유동인』 으로 그녀의 작품을 기다리던 중.
단편 소설집으로 만나기엔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 책이 기대되었습니다.
짧은 호흡으로 이루어진 단편 속에서는 어떤 매력이 넘칠지...
소설은 스토리다!
어디서도 못 들어 본 신박한 이야기들!
『러브 앤 크라프트, 풍요실버타운의 사랑』

여섯 가지의 달콤 쌉싸름한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모든 이야기 속 '여자'들의 모습이 각자의 다른 매력으로 다가오지만 그 끝은 왜 그리도 진한 여운으로 남는 건지...
시공간을 초월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로마 황제의 아내이자 매춘부인 '메살리나 발레리아'에서부터 조선의 불세출의 화가 '최북', 그리고 풍요실버타운의 할머니들까지.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어서 읽는 재미가 쏠쏠하였습니다.
첫 문을 열었던 <타임슬립러브_민트초코크런치의 달콤 쌉싸름한 터질듯한 맛>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순수한 사랑'을 위해 타임슬립까지 하는 그녀.
자신의 지난 인생을 속이면서까지 찾고 싶었던 '진실한 사랑'.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딱 떠올랐습니다.
"부드러워, 진짜로."
둘은 꽉 끌어안고 그대로 잠시 있었다. 주연의 입가에 충만한 미소가 걸렸다.
이 느낌을 언제 다시 느껴 볼 수 있을까 싶은 행복감이 들었다. 20여 년 전 결혼 초기에는 느꼈을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솔직히 남편에게 불만은 없었다. 생활비는 풍족했다. 양가에도 실수하거나 걱정을 끼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친정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멀리 계시는 시아버님만 간간이 연락이 오가고 있다. 아들도 대학교를 다니다 군대에 가 잘 지내고 있다.
그런데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허전함..
지금 여기 천안의 원룸에서 35세의 여자가 되어 남친을 사귀면서 행복을 느끼는 것은 단순히 시간을 역행해 연애하는 감정이기 때문일까.
잊었던 사랑의 욕구. 그건 주연을 리셋하게 해 주었다. - page 98
"여행 갔다 왔어요. 인생을 거슬러 올라가는 타임슬립 여행이요."
"그건 젊은 남자 만나는 걸로 충분하지 않았어요?"
"아뇨. 해원 씨는 날 한 번도 진지하게 대하지 않았잖아. 그냥 스쳐 가는 여자처럼 대했잖아."
남자는 일어섰다. 그리고 카운터로 돌아가 냉장고를 정리하려 몸을 돌려서 구부려 일했다.
주연은 커피를 다 마시고 컵을 그대로 두고서 일어서 나갔다. 이제는 이 백화점에 오는 걸 힘들어할지도 모른다.
이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인생을.
'어디서 어떻게 시작할까.' - page 112
정말 진한 마카롱의 맛을 느낄 수 있었던 <대쾌_꿈결 진분홍 마카롱의 달고 진득한 맛>.
이 이야기는 신육복이 정조의 밀명으로 일본에 건너가 풍속화가로 일한다는 《색, 샤라쿠》장편소설을 쓰면서 연구한 최북의 일대기를 단편소설로 구성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특히나 최북이란 자가 여자를 얻기 위해 자신의 눈마저도 잃는 희생을 범하면서도 결국 이루지 못했다는 점이...
그 죽음마저도 비참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이 안타까워 더 진득하게 입가에 오랫동안 남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나코는 백 마리째의 개구리 등에 침을 꽂아서 벽에 붙여 놓았다. 개구리 등에 새겨진 칠칠이란 글자가 또렷이 보였다. 그러나 나나코가 방금 붙여 놓은 개구리는 침의 끝이 뭉툭해서인지 툭 소리를 내고 벽에서 굴러떨어져 내렸다. 그와 동시에 나나코의 눈에서 굵은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한 번도 운 적 없는 나나코였다. 부모님을 잃고 나서는 울기를 거부했다. 눈물 흘리면 신세가 더 처량해질 것 같은 불안감에 슬픈 일이 생겨도 항상 미소를 잃지 않았다. 하지만 힘없이 벽에서 떨어져 내리는 백 번째의 개구리를 보고서는 눈물 한 방울이 금세 흘러나왔다.
나나코의 입에서 작은 하이쿠 단가 소리가 흘러나왔다.
- 나와 겨루고 있네. 내가 최후를 지켜보게 될 개구리. - page 250
유카타 한 장밖에 안 걸친 파리한 그녀의 몸은 금방 쓰러질 듯 잠시나마 위태위태해 보였다. 하지만 이내 나나코의 발걸음에는 힘이 들어가고, 얼굴 표정에는 온화한 미소가 깔리면서 보무도 당당히 혼욕탕을 향해 걸어갔다. 그녀는 흡사 가부키 극에 나오는 위대한 장군처럼 어깨와 가슴을 펴고서 온천탕 문을 열어젖혔다.
탕에 들어선 나나코는 자그마한 목소리를 웃음 가득 담아서 보냈다.
"나나코라고 합니다. 오바상의 명으로 손님을 뫼시러 왔습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들어가도 되겠는지요." - page 250 ~ 251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를 장식했던 <풍요실버타운의 사랑_애쉬브라운 더블샷 에스프레소의 풍부한 맛>.
사랑하는 남자를 보기 위해 포르쉐 오픈카를 훔쳐 나가는 가영 언니, 나숙 씨, 다정 할머니의 일탈.
그녀들의 유쾌하고도 화끈한 일탈 뒤 저 멀리 수평선에 내리는 노을을 바라보며 서로 다짐을 하지만...

김 국장이 나가고 다시 가습기 소리만이 쌕쌕 나는 조용한 병실.
가영 언니와 나숙 씨의 눈꺼풀이 움직이면서, 간호사가 폰으로 음악을 조용히 튼다. 박재범의 <YACHT>가 흘러나온다.
입술이 조금 아주 조금 달싹이는 가영 언니. 그리고 나숙 씨는 눈을 살그머니 끔벅끔벅한다.
가습기에서 하얀 분무가 공기 중으로 퍼진다. - page 280
소설로 끝날 이야기가 아니기에...
현실에서의 우리의 모습이 될 수도 있기에...
이 마지막 이야기의 할머니들의 모습이 아련하게도 남곤 하였습니다.
역시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재미만큼 여운도 남았던 이들의 다채롭고 아찔한 사랑 이야기.
읽으면서 '나라면...?' 이런 질문도 던지게 되었습니다.
아마 그들처럼 행동했을까...?!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그녀들을 한 명 한 명 붉은빛에 비춰봅니다.
아름다웠던 그대 모습을
이젠 볼 순 없겠지만
후횐 없어 그저 바라볼 수 있게 붉게 타주오
해가 뜨고 해가 지네
노을 빛에 슬퍼지네
달이 뜨고 달이 지네
세월 속에 나 또한 무뎌지네(Oh)
해가 뜨고 해가 지네
노을 빛에 슬퍼지네
달이 뜨고 달이 지네
그대 기억 또한 무뎌지네
- BIGBANG의 <붉은 노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