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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 대하여
한정현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7월
평점 :
'엄마'란 단어...
어릴 적엔 부르기만 했던 이 단어...
지금은 나의 아이들이 나에게 부르는 이 단어...
어쩌면 단순한 이 두 글자는 묘하게도 생각만으로도, 부를 때마다 눈물이 나는 건 뭘까...?
그렇기에 '엄마'란 단어만 보아도 쉬이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이번에 읽게 된 책이
엄마와 딸, 마침내 함께할 여자들에 대한 소설가 6인의 테마소설
이라는 점이 나를 끌어당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과연 6인의 여성 소설가가 바라본 '엄마'는 어떨지...
"엄마가 가장 유약한 모습이었을 때
지금의 내 나이였다는 것을 생각한다"
『엄마에 대하여』

여섯 편의 소설 속의 엄마의 모습은 각양각색이었지만 하나의 공통점은 있었습니다.
그녀들은 엄마이기 전에 한 '여성'이었고
'딸'이었고
'엄마'가 된 후엔 모성애와 희생을 당연하듯 요구당하게 된
그래서 그들의 모습을 보면 애틋하단 느낌이 들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되묻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나는 어떤지...
첫 문을 열어 준 한정현 작가의 <결혼식 멤버>가 여느 이야기보다 인상적이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한 사람의 메일만 남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사람을 위해 메일 계정을 만든 건 아니지만...
그 사람이 처음 보낸 메일을 봤던 그날부터 별일이었나... 아니 별일이 아니었나...?
자신을 생물학적 어머니라고 밝힌 그녀.
나나가 아주 어릴 때 아버지와 이혼한, 그래서 직업이나 나이는 물론이고 결혼 전 이름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는 '엄마'라는 그녀가 써내려간 메일을 읽으면서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는 나나.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와는...
"나나 씨.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게 결혼이잖아요. 당연히 내 절반을 희생해야죠. 전처럼 내 시간 다 누리겠다는 건 이기적인 거잖아요?" 이렇게 말했다. 나나는 하마터면 그 말에 깊게 고개를 끄덕일 뻔했지만 깊은 마음속에서는 이런 목소리가 치고 올라왔다. 그러면 너는 내가 너를 위해 날마다 밥을 하고 집 안을 치우고 살던 곳을 포기하고 움직인 건 어떻게 생각하는데? 그건 희생이 아니라 당연한 거야? 나나는 이 말을 끝내 꺼내어 하지 못했다. 남자가 곧장 한마디를 더 얹었기 때문이다. "나나 씨는 그리고 평일에 줄곧 혼자 있잖아요, 일하는 것도 아니고 책 읽고 번역하는 게 전부인데 집에서 시간 많지 않아요?" 나나는 잠자코 입술을 말았다. 남자는 나나가 책을 읽고 논문을 쓰고 번역을 하고 집에서 살림을 하는 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나가 그렇게 한동안 말이 없자 남자는 잠시 나나의 기색을 살피더니, 그렇지만 나나가 원한다면 자신은 결혼 후에 도서관에서 책도 빌려 보고 카페에 가서 책도 읽어보겠다고 했다. '다 나나 씨를 생각해서예요.' 남자가 얼마나 이 말을 꺼내고 싶어 하는지 나나는 너무나 알 것 같아서 고개를 돌리고 생각을 멈췄다. 나나는 남자와 여전히 언성을 높이지 않았다. 그래, 좋은 사람이구나. 나나가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가 웃었다. 그러나 나나는 그 웃음을 끝까지 함께할 수 없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나나는 최종적으로 그 집에서 나왔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도 별일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역시나 그랬다. - page 40 ~ 41
그리고는 귀하(엄마)에게 메일을 보냅니다.
언제부터인가 그런 생각들을 했어요. 친엄마라는 건 친한 엄마의 줄임말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거요. 그런 의미에서 귀하는 제게 친엄마일 것 같고요.
...
저는 저 자신과 결혼하기로 했어요. 말로만 한다는 게 아니고 정말, 저와의 결혼식을 하려고 해요. 드레스는 이미 봐둔 숍이 연남동에 있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저의 부탁입니다. 이 부탁을 위해 메일을 썼다 해도 과언은 아닐 거예요.
귀하께서 제 결혼식에 와주세요. 귀하가 '나', 임나나의 결혼식의 멤버가 되어주세요. 어머니로서가 아니라 제가 초대한 귀하로서 와주세요. 펑리수만 보내는 것은 사양이에요. 이유는 간단해요. 나는 이제 나와 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과 조금 더 대화를 나눠보고 싶어요. 그래서 나는 그냥 귀하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우리는 좋은 '결혼식 멤버'가 되지 않을까요? - page 52 ~ 53
엄마와 딸에서 나아가 '여성'으로 살아가는 동행인의 모습으로 발전해나가는 이들의 모습이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역시나 희생하는 '엄마'의 모습이 그려진 소설도 있었습니다.
김이설 작가의 <긴 하루>에서의 유순의 모습은...
인생이란 시련의 파도를 넘어가는 과정이었지만 누군가는 그 파도에 물거품이 돼버리기도 한다. 마치 겨우 참아왔다는 듯이 순식간에 훅 쓰러져버린 석철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석철만 바라볼 수 없었던 유순은 일을 더 해야 했다. 낮에는 설렁탕집에서 밤에는 24시간 감자탕집에서 일을 했다. 혜서의 끼니를 해 먹이는 것 외에 석철은 하루 종일 술에 취해 있곤 했다.
노모가 내온 밥상은 고추장감자찌개에 돼지고기 보쌈 한 접시, 계란 프라이 세 개, 풋내 나는 열무김치로 차려져 있었다. 종일 백반 한 그릇으로 버틴 유순은 허겁지겁 밥공기를 비웠다. 텔레비전에는 흘러간 가요 프로그램이 틀어져 있었다.
"밥 좀 더 줘."
"새끼가 어디서 뭐 하고 사는지도 모르는데 밥이 먹히냐??"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여......' 귀가 어두운 노인네여서 텔레비전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이젠 그 누가 있어 이 외로움 견디며 살까......' 아휴, 정신 사나워. 유순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텔레비전의 소리를 줄이거나 끄지 않았다. 노모도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내민 빈 공기에 다시 밥을 수북이 담아주었다. 유순은 쌈장을 찍은 보쌈을 크게 뜬 밥 위에 얹어 한입에 넣었다. '이 늦은 참회를 너는 아는지......' 노모가 벽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보며 혜서가 밥은 먹고 다니는지 걱정된다며 혼잣말을 했다.
"걔가 애야? 알아서 하겠지."
"어미란 것이......"
그래서 엄만? 애 들쳐 업고 찾ㅇ아간 나를 그렇게 쫓아낸 사람이 누군데? 그래놓고 잘 먹고 잘 사셨어?"
"저 좋자고 나간 딸년인데 내가 뭣 하러."
"나도 마찬가지야."
"그럼 너도 나처럼 살아봐라, 이년아." - page 111 ~ 112
집 나간 딸을 걱정하지만 차마 내색하지 않는 유순.
자신이 먼저 연락을 해도 받지 않는 딸이 못내 서운하지만 자신이 한창 일로 바쁠 때 걸어온 딸의 전화를 못 받아 자책하는 유순.
혜서의 방을 바라보니 문이 닫혀 있었다. 방문을 열면 거기에 혜서가 있을 것만 같았다. 유순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어보았다. 혜서의 방에는 검푸른 어둠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혜서의 목소리를 직접 듣지 못한 것이 불안했다. 괜한 생각이 번져나가기 시작했고, 나쁜 상상이 자꾸 가지를 뻗었다. - page 124
참...
'유순'이라 쓰고 '안쓰럽다'고 읽게 되었습니다.
차현지 작가의 <핑거 세이프티>는 엄마와 딸이 애증의 관계라는 것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가정경제를 책임지면서 동시에 남편과 서로 죽일 듯이 싸우는 그녀.
그리곤 자신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건넸던 그녀.
그런 그녀가 증오보다는 단순한 짜증에 가까운, 짜증이 나지만...
인정하라고.
뭘 인정해.
잘못 같다며.
말했잖아.
같은 게 아니라 잘못이라고. 엄마가 잘못 살아서 이렇게 된 거라고.
이게 다 내 잘못이니?
그럼 이 집에서 잘못한 사람이 누구야?
...... 미안하다. 다 제대로 못 키운 내 탓이다. - page 226
결국 내 모습은...
나는 그녀를 쏙 빼닮았다. - page 228
시대가 흘러도 결국 '엄마'는 '엄마'인가 봅니다.
소설들을 읽고 난 뒤에 가슴이 먹먹한 건...
뭐라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왜 '공감'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알 수 있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무언가 끝없이 이어지고 반복되는 어떤 틈새에서 연결되고 있기에 그녀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거기서 나를 되돌아보는가 봅니다.
만감이 교차했던, 그래서 많은 생각에 잠기게 했던 소설들.
나의 엄마를, 나를, 그리고 나의 아이를 떠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