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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화가 - 한국 문단과 화단, 그 뜨거운 이야기
윤범모 지음 / 다할미디어 / 2021년 5월
평점 :
이제까지 이 조합을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그저 화가면 화가!
시인이면 시인!
하지만 이 둘은 결국 '예술'이라는 이름 하에 표현 방식만 달랐다는걸!
왜 이제서야 깨닫게 된 건지...
역시 아직도 배우고 알아가야 할 것이 많다는 사실에 열심히 책을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이 둘의 조합이 어떤 작품으로 승화될지 기대하며 읽어보았습니다.
'시대의 풍경'이 된
문인들과 화가들의 만남...
일제 강점기 '경성의 르네상스'를 일군
이들의 삶과 우정, 교류와 연대를 통해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한국 근현대사를 살펴본다!
『시인과 화가』

이 책에서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앞서 저자의 이야기에서 엿볼 수 있었습니다.
시는 곧 그림이요, 그림은 곧 시이다. 오랫동안 모셔져 왔던 동북아시아의 주요 사상, 그것은 바로 시화일률이다. 시화를 따로 떼어놓고 어떻게 풍류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진정한 의미의 선비는 시서화를 잘하는 삼절의 경지에 올라야 한다. 시인과 화가의 관계는 바늘과 실의 관계였었다(라고 과거시제로 표현하게 한다). 예전에는 그랬다. 시인과 화가의 관계는 형제지간이었다. 1920 ~ 30년대의 서울은 문학과 미술이 한 가족 되어 동고동락했다. 문학과 미술은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새로운 창작의 세계로 진입하곤 했다. - page 4
그랬습니다.
우리네 조선 선비들은 한지에 글과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이!
시와 그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인지하고 과연 어떤 시인과 화가가 만남을 가졌는지 알아보았습니다.

첫 장을 장식한 화가 '나혜석'과 시인 '최승구'.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선을 넘는 녀석들 마스터-X>를 통해서 만나게 되었던 '최초'의 타이틀을 거머쥔 '나혜석'을 책을 통해 다시 만나게되니 반가움 반, 애잔함 반이었습니다.
파격, 파격.
보수적 고정관념에 대해 끝없이 도전했던 그녀, 나혜석.
그녀의 첫사랑인 최승구.
하지만 최승구의 가슴속에 결핵균이 있어 점점 이들의 사랑은 하나의 꿈으로 바뀌게 되고...
도쿄 도착 5일이었다. 밤중에 문 뚜드리는 소리가 나며 '전보, 전보'한다. 나는 차마 볼 수 없어서 동생더러 뜯어보라 하였다. '동생 오후 6시 서거' 내 앞은 캄캄하였다. 조금 남은 정신으로 이런 답전 두 장을 하였다. '안심하고 가라.' '애도한다. 이것을 관 속에 넣어 주오.' 답전이 또 왔다. '관속에 넣었다.' 간단하고 명백하고 심오하고 철저한 그 말. '오해 없이 영원히 잊어주시오.' 이는 내 초련의 최초요 최종의 말이었다. (나혜석, <영원히 잊어주시오>, 『월간 매신』, 1934. 3. )
영원히 가슴 한구석에 자리 잡았던 최승구.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도 최승구를 그리워하며 쓴 에세이는 참으로 애절하게 다가왔습니다.
"슬퍼. 아아. 슬퍼. 해가 가고 날이 가니 슬픈가. 그 얼굴 그 몸이 재 되고 물 되어 가는 것이 슬픈가. 그 세계와 내 세계의 거리가 멀리 갈수록 그는 점점 냉정해가고 나는 점점 열중해가는 것이 슬프다. 나는 다시 눈을 딱 감고 아랫배에 힘을 잔뜩 주고 앉았다. 때는 밤 한 시. 복받친 기운이 뚝 꺼지며 시름없이 한숨을 짓는다. 내 눈에는 벌써 안개를 지었다. 코에서는 신물이 나올 듯하다. 아, 그는 나를 버리고 갔다. 그가 내게 모든 풍파를 안겨주고 멀리멀리 가버린 때가 이 봄밤이다. 내 몸은 사시나무 떨리듯 떨린다. 아래윗니가 서로 딱딱 닿는다.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생각지 않으려고 눈망울을 일자로 굴려 잠을 청한다. 보름달은 구름에 가려 그 얼굴이 보일 듯 보일 듯할 뿐 아니라 빛까지 가리어 어두컴컴하다 아아! 소월아! 소월아!" (나헤석, <원망스런 봄밤>, 1933)
최승구가 요절하지 않았다면 나혜석은 보다 많은 작품을, 자신의 뜻을 마음껏 펼쳤을까...
나약하고 감상적인 시들이 횡행하던 1910년댕에 저항정신과 현실 인식이라는 차원에서 작품을 쓴 최승구 역시도 계속 작품 활동을 하면서 한국근대문학사에 한 획을 장식하지 않았을까...
이 둘의 아쉽고도 안타까운 만남이 쉬이 잊히지가 않았습니다.
저항시인 '윤동주'와 화가 '한낙연'.
워낙 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는 윤동주 시인은 잘 알지만...
이번에야 알게 된 '한낙연' 화가의 이야기.
사실 윤동주와 한낙연의 접점은 고향 길림성 '용정'이었습니다.
중국 당국에서는 운동주는 '한글로 시를 쓴 조선인'이지만 한낙연은 중국 현대사의 물결과 도앵한 '인민 예술가'이자, '중국 공산당 동북지구 창시자'로 그와 관련 기념에 '공식적 예우'를 더해준다고 하였습니다.
'중국의 피카소'로 불릴만큼 200여 점의 유작을 남긴, 하지만 49세의 나이로 단명한 그.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곳이란 뜻을 가진 타클라마칸 사막에 위치한 키질 석굴을 연구하고 화가였기에 석굴 관련 내용을 비롯하여 서역지역의 풍물을 화면에 담았던 그.
대중적 인지도는 낮을지라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될 '한낙연'.
이번 기회를 통해 기억하겠습니다.
만주의 용정 출신 한낙연, 그리고 윤동주, 이들은 서로 존재감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용정은 이들 역사적 거장을 기리는 조형물로 이색공간을 연출하고 있다. 만주라는 외곽에서 이룩한 쾌거, 만주는 결코 먼 곳에만 존재한다고 불 수 없게 한다. 만주의 용정, 거기에 가면 오늘도 시인 윤동주와 화가 한낙연의 빛나는 숨결을 공유하게 한다. - page 140
'나목'을 닮은 '박수근'과 '박완서'의 이야기.
박완서의 등단 장편 소설인 『나목』은 박수근의 전기는 아니지만 전쟁 시기 열악한 환경 속의 박수근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이 둘은 미8군 PX에서 인간적으로 가까워지기 시작하였다고 하는데 그들이 함께한 계절은 겨울, 바로 나목의 계절이었다고 합니다.
닮은 듯한 이 둘의 모습은 아마 이렇기 때문이었나 봅니다.
전쟁이 할퀴고 간 매우 어려웠던 시절의 박수근, 그 시절의 분위기를 실감 나게 표현해 준 박완서의 등단 작품 『나목』, 오늘도 우리들 곁에서 싱싱하게 살아 꿈틀거리고 있다. 나목은 박수근의 자화상이기도 했지만, 암흑기 우리 고향의 자화상이기도 했다. 시대의 진솔한 상징성은 그만큼 예술적 울림이 크다. 인고의 아낙네와 그 곁에 서 있는 나무, 이파리 하나 허용하지 않은 앙상한 겨울나무들, 궁핍한 시대의 진정성은 예술작품 속에서 살아 증거하고 있다. - page 192
시인과 화가의 만남.
서로 얼굴을 맞대지 않았더라도 그 시대를 함께 살아간 이들이 전하고자 한 바는 예술작품 속에서 닮은 듯이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굳이 이 둘의 조합이 아니더라도 그 시대의 문인과 화가들을 만나게 되면 그들이 전하고자 했던 '시대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시대와 작품, 그리고 사람 이야기.
또 하나의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리고 현재에도 이어지는 '문학과 미술의 즐거운 만남'을 저 역시도 기대하며 관심을 가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