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 - 폴란드에서 온 건반 위의 시인 ㅣ 클래식 클라우드 28
김주영 지음 / arte(아르테)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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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읽게 되는 시리즈 중 하나인 <클래식 클라우드>.

이번에 만나게 된 거장은 바로 '쇼팽'이었습니다.

 

프란츠 리스트, 로베르트 슈만, 펠릭스 멘델스존, 엑토르 베를리오즈 등과 함께 19세기 낭만 시대를 풍미했던 그.

그중에서도 피아노의 잠재력과 가치를 비약적으로 끌어올린 '쇼팽'이야말로 가장 널리 사랑받고 있는 작곡가라고 합니다.

그의 작품을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은 <즉흥 환상곡>입니다.

임신했을 때 태교음악으로 클래식을 찾아듣다가 피아노 선율에 빠져들었던...

감미롭고도 매력적이 이 곡은 가끔 찾아듣곤 합니다.

 

사실 쇼팽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그에 대해 알아가고자 합니다.

 

"쇼팽의 이름은 결코 퇴색하는 일 없이

그가 남긴 피아노 작품들의 예술적 가치와 함께 빛난다."

 

『쇼팽』

 

 

쇼팽의 피아노 곡들은 정말 언제 어디서 들어도 아름답고 감동적입니다.

과연 그는 어떤 사람이었기에 이런 작품들을 쓸 수 있었을까...?

피아노 음악의 역사를 새로 쓴 쇼팽의 길을 따라가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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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샤바에서 서쪽으로 약 46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젤라조바볼라에서 프랑스 출신의 아버지와 폴란드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둘째이자 외아들로 그가 태어납니다.

태어난 지 7개월이 되었을 때 그의 가족은 바르샤바로 이사를 하게 되고 여기서 그는 두 스승을 만나게 됩니다.

첫 번째 스승은 소년에게 피아노 음악과 그 표현의 첫발을 내딛게 해 준 '지브니'.

두 번째 스승은 대위법을 중심으로 작곡법의 기초를 확립시킴으로써 프로 음악가로서의 진취성을 길러준 '요제프 엘스너'.

이 두 스승으로부터 천재 '쇼팽'은 '방임'이라는 교육 방식으로 작곡가로써 성장하게 됩니다.

 

지브니는 소년이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않고 멋대로 건반을 두드려도 약간의 주의만 주었을 뿐이고, 엘스너는 화성법의 기본 원리를 벗어난 진행을 작품 속에 써 놓은 것을 보아도 허용했다. 일부 비판적인 의견이 쇼팽에 대한 우려를 표시해도 엘스너의 뜻은 확고했다. "그를 그대로 내버려 두시오.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연주합니다. 지금까지의 흔한 방법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 page 35

 

이 스승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가 자신만의 창법으로 연주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고전적 음악가로, 특히나 어린 시절 그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던 폴란드 시골 사람들의 춤과 노랫가락으로 훗날 그는 그만의 작품으로 탄생하게 됩니다.

 

그의 음악에 영향을 준 건 아무래도 조국 '폴란드'의 상황이었습니다.

10세기에 세워진 폴란드는 17세기 유럽의 강대국으로 군림하다가 18세기 들어 급격히 쇠퇴하면서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에 의해 세 차례나 영토 분할을 당하다 모조리 빼앗긴 수모를 겪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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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탄생한 안타까움과 자책감, 그 모든 격정을 담은 <에튀드 c단조, Op. 10-12 '혁명'>이란 곡.

그 상황을 알고 찾아들어보니 너무나 가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뜨거움으로 일렁이는 파도와 같은 왼손의 움직임 위로 응축된 힘이 느껴지는 비극적인 멜로디가 오른손으로 수놓아진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16분음표의 빠른 움직임을 나타내야 하는 왼손을 위한 연습곡의 성격을 띠지만, 음악으로 울부짖는 것밖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작곡가의 고통이 들을 때마다 사무치게 다가온다. - page 71

 

그에게 '조국'의 의미는...

 

어쩌면 그가 그리워하고 돌아가고자 했던 조국은 하나의 핏줄로 이루어진 나라가 아니라 자신이 나고 자란 땅과 그 하늘이었을 것이다. 운명의 잔인함이 그가 고향을 떠나는 순간 전쟁과 혁명의 모습으로 나타나 그의 마음에 아물기 힘든 발톱 자국을 남겼지만,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폴란드어와 생활 방식을 고집했던 것은 조국에 대한 사랑보다 아름다웠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추억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 page 74

 

그래서 그는 민속 춤곡인 '마주르카'와 '폴로네즈'를 많이 작곡하게 됩니다.

 

시공간적으로 참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쇼팽의 연주를 들은 파리 살롱의 지인들과, 유자왕의 연주를 듣는 바르샤바의 청중이 공유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분명 고향을 그리워하는 작곡가의 영혼이었을 것이다. 어릴 적 추억을 한순간도 잊어 본 적 없는 쇼팽이 늘 돌아가고자 했던 음악적 고향은 바로 마주르카 리듬이었다.

...

"내 피아노는 오직 마주르카만을 들어 왔습니다." - page 190

 

끝내 그는 고국에 가지 못하고 그의 심장만이 바르샤바에 묻히게 된 것이 애잔하게 다가왔습니다.

 

쇼팽의 인생에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바로 '상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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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터놓고 싶었던 쇼팽에게 마치 엄마처럼 감싸 안아준 그녀.

결국 둘은 마요르카섬에서 뜨거운 사랑을 나눈 만큼 주옥같은 명곡도 남기게 되지만 끊임없는 잔기침이 쇼팽의 육신을 쇠약하게 만들고 결국 이 둘은 헤어지게 됩니다.

쇼팽은 상드와 함께한 세월을 '9년 동안의 정리된 생애'라고, 상드는 '9년 동안 쌓아 온 우리만의 우정'이라 표현했다고 합니다.

유명한 예술가 커플이자 서로를 존중했던 이들.

비록 저 그림이 둘로 나누어져 팔려 나갔지만 우리에게 쇼팽이 고이 보관한 편지가, 그의 작품이 이를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겉으로만 그런 것이겠지만 쇼팽의 자세와 감정은 흔들리지 않았고 내내 평온했다. 상드가 마지막 편지를 쓰기 닷새 전 쇼팽의 어조는 차분하고 한결같았으며, 기나긴 연애의 끝을 맞이한 남자의 마음은 어디에도 드러나 있지 않았다.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 줄 거예요. 난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언제나처럼." - page 232

 

 

쇼팽을 향해 마지막으로 저자는 이런 이야기를 전하였습니다.

 

천재의 죽음을 슬퍼하는 천사의 조각상 앞에서 다른 이들처럼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눈을 감아 본다. 그의 삶은 끊임없이 이어진 '갈망'의 연속이었다. 아무리 채워도 끝이 없었던 음악에 대한 열정,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아픔, 돌아갈 수 없었던 폴란드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쇼팽이 떨쳐 내지 못한 갈망의 실체였으며, 육체의 한계로 인해 미완성으로 끝나 버린 그의 짧은 생 때문에 그의 갈망은 답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불운하고 아팠던 천재가 남긴 작품들이 지닌 영원한 생명력은 안식을 찾지 못한 채 마무리된 그의 방황이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오늘도 수많은 이들의 손끝에서 쇼팽은 다시 살아나 시가 되고 그림이 되고 이야기가 되며,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기적이란 어떤 것인지 체험하게 만들어 준다. 지금 쇼팽은 행복할까? 그럴 것이라 믿는다. - page 274 ~ 275

 

내가 그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란 생각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그의 갈망이 조금이나마 채워질 수 있게 그의 음악에 좀더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닐까란 짧은 생각도 해 봅니다.

 

오늘은 왠지 그의 작품 중 하나인 <마주르카>를 들으며 그의 이야기를 곱씹어 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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