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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의 방 - 법의인류학자가 마주한 죽음 너머의 진실
리옌첸 지음, 정세경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6월
평점 :
절판
1991년 3월 26일.
대구에 살던 5명의 초등학생이 도롱뇽 알을 주우러 간다며 집을 나섰다가 실종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수사인력으로도 아이들의 행방은 묘연했었고 시간은 흘러흘러 2002년 9월 26일.
실종된 지 11년 6개월 만에 유골로 발견되었습니다.
저체온증으로 숨졌다고 발표했지만 부검을 맡은 법의학팀은 명백한 타살로 결론을 내렸었고 안타깝게도 공소시효 만료로 범인은 끝내 잡지 못한 채 사건은 우리의 기억 속에 남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가끔 유골들이 발견되는 사건들을 바라보면 안타까움과 함께 그나마 유골이라도 발견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무엇보다 그 유골들의 존재를 밝혀주는 이들이 있기에 어쩌면 이름 없이 묻힐 뻔한 억울함은 면할 수 있다는 점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죽은 이의 신원, 사소한 습관, 다잉 메시지까지...
뼈에 새겨진 기억을 읽고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다
『뼈의 방』

'뼈의 방'의 의미가 궁금했습니다.
첫 장을 펼쳐보니 그 궁금증은 금방 풀렸습니다.
법의인류학자에게는 '놀이동산'이라고 부를 만큼 특별한 공간이 있다. 이곳을 '뼈의 방'이라고 부른다. 뼈의 방은 기증받은 유골을 모아둔 곳이다. 대부분 신원을 알 수 없거나 가족이 인수하지 않으려 하는 시신, 혹은 단체에서 연구 용도로 기증한 시체다. 뼈의 방에는 유골이 담긴 상자가 수백, 수천 개나 있다. 상자 하나하나가 한 사람을 상징한다고 생각하면 뼈의 방에는 수백, 수천 명이 머무는 셈이다. 덕분에 연구자들은 망자의 삶을 이해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가려진 진실을 읽어낼 수 있게 되었다. 여느 사람에게는 특별할 것 없는 유해일 수도 있겠지만 연구자들에게는 소중한 보물이다. - page 8
여기서 또 하나 의문이 들었습니다.
'법의인류학자'
사실 '법의학자'가 시신을 연구한다고 생각했고 또 대부분의 사건 현장에서도 '법의학자'의 의견이 주로 나온다고 알고 있었기에 '법의인류학자'란 단어는 생소하였습니다.
알고 보니 '법의학자'와 '법의인류학자'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습니다.
법의인류학자의 임무는 뼈를 분석하여 유골의 정확한 신원을 확인하는 것이다. 법의인류학자는 사람들이 흔히 아는 법의학자와 다르다. 법의학자가 주로 시체에서 사망 원인을 찾는다면 법의인류학자는 뼈에서 사망의 종류와 사망 원인을 관찰해낸다. 법의학자들은 연조직이 남아 있는 시체를 다루기 때문에 부패 단계에 들어서거나 백골화된 시체를 접할 일이 거의 없다. 그에 비해 법의인류학자들은 이미 부패가 진행된 시체를 다룬다. 심지어는 미라화된 시체를 접하기도 한다. - page 20
그렇게 해서 책은 법의인류학자의 관점으로 뼈에 새겨진 기억을 읽고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미국의 의사 프리저브드 포터 박사가 자신의 후손들이 인체에 관련된 지식을 가르치는데 써달라고 부탁한 노예 유골을 밝혀낸 이야기였습니다.
뼈를 분석하여 유골의 '포춘'이라는 이름을 알아내고 손발 뼈에 남은 흔적을 통해 그가 압력이 높은 환경에서 오랫동안 일하다가 인대가 손상되거나 찢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
무엇보다 그의 사망 원인이 사고로 인하나 익사라고 기록되어 있었지만 목뼈의 외상으로 그의 죽음의 원인은 특정한 충격으로 넘어져 경추 한 마디가 부러진 것이라는 점도 밝혔습니다.
법의인류학자들이 뼈를 통해 이름이 없었던 유골에게 잊혔던 신원을 되돌려주고 그가 세상을 떠났지만 가족의 품에서 편히 잠들 수 있게 도왔다는 점에서 그들의 업적이 참으로 존경스러웠습니다.
책 속에는 우리의 사건도 있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

우리 모두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함을 또다시 가슴에 새겨보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우리의 몸을 지탱하는 것으로만 여겼던 '뼈'.
알고 보니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습니다.
뼈는 다양한 문화의 종족들에게 느끼고 행동하며 기억을 불러일으키도록 만드는 중요한 상징물이다. 뼈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나름의 영향력을 행사한다. 개인의 유골도 마찬가지다. 뼈는 매우 독특한 매개체로써 한 사람의 일생을 확장한다. 뼈는 늘 우리에게 삶을 생각하게 만드는 존재였다. 종교와 철학에서도 뼈를 통해 죽음 뒤에 무엇이 있을지를 생각해왔다. - page 120 ~ 121
우리 몸의 마지막 퍼즐 한 조각으로 우리의 인생을 일깨우며 삶의 마지막 순간을 알려주는 '뼈'.
이러한 '뼈'와 마주할 때 우리는 한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살아 있는 사람처럼 존엄하게 대우받아 마땅함을 일깨워주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