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할 수 없는 아픔에 대하여 - 간절히 살리고 싶었던 어느 의사의 고백 포기할 수 없는 아픔에 대하여 1
김현지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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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의사선생님 이름만으로도 숙연해지면서 존경심이 듭니다.

'이국종' 교수님.

'골든아워' 60분에 삶과 죽음을 가르는 사선의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의사의 '노력'과 '수고'를, 그 무엇보다 '의사'란 직업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골든아워』에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 그것이 우리의 일이다."

 

이번에 읽게 된 책도 진정 한 의사의 고백이 담겨있었습니다.

안타깝고 처절한 환자들의 사연과 저자의 분투를 통해 우리 모두가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의 민낯을...

그럼에도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그들의 노력을...

그렇기에 안 읽을 수 없었습니다.

 

끝내 놓칠 수밖에 없었던 목숨들과

병원 밖 처절한 세상에 던지는 어느 의사의 질문

 

포기할 수 없는 아픔에 대하여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녀가 맞닥뜨려야 했던 수많은 죽음들.

대학병원 중환자실, 암 병동, 응급실, 요양병원에서의 환자와 의사의 이야기는 우리 주변의 이야기이기에 쉽사리 넘어갈 수 없이 눈물이 흘렀고 가슴이 아렸으며 때론 화도 났습니다.

 

의사라고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없듯이 이미 여러 치료 방법으로도 불가하여 의료진이 혈관을 통해 공급하는 수액과 영양제만으로 아슬아슬하게 생명을 유지하던 유방암 환자분의 입에서 나온 이 말은 저에게도 먹먹하게 하였습니다.

 

"나 좀 죽여줘, 선생님."

...

"어차피 곧 죽을 거잖아. 뭘 먹지도 못하는데 배는 잔뜩 불러서 갑갑하기만 하고. 선생님, 나 이제 그만 살아도 될 것 같아. 가족들이랑 인사도 다 했으니까 조용히 보내줘." - page 63

 

이 환자를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그녀.

아무리 현대 의학이 발전한다 해도 죽음을 앞둔 환자의 외로움이나 두려움, 존엄성을 잃는다는 자괴감을 줄여주지 못하기에 죽음을 바라보고 있는 환자에게 의사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의료 행위, '안락사'에 대한 이야기는 쉬이 넘길 수 없는, 이제는 우리가 직면해야 할 점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 봅니다.

 

언제 죽을 수 있나요. 이제 그만 편안해지고 싶어요. 혹은 편안하게 해주고 싶어요.

그럴 때면 나도 환자와 보호자를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나라도 저 상황이라면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미 삶에 대한 미련은 없고, 주변 정리도 끝났다. 그럼에도 매일 아침 해는 떠오르고 눈을 뜬다. 자력으로는 내 한 몸 가누기도 어렵다. 또다시 꼼짝없이 병실에 누워 괴로워하는 하루를 보내고 겨우겨우 잠이 든다. 그리고 다음 날 해가 뜨면 이 지지부진한 하루가 반복된다.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불행히도 나는 환자를 편안하게 죽일 수 있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환자를 죽일 수단에도 합법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환자를 위해 무언가를 해줄 능력이 충분한데도 그걸 해줄 수 없다는 것은 의사에게 또 다른 절망감을 안긴다. - page 70 ~ 71

 

그리고 이번에 그녀의 이야기로부터 알게 된 사실도 있었습니다.

사실 저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지만 '소아 중환자실'이 설치된 곳이 전국에 있는 42개의 상급종합병원 중 단 11곳뿐이며, 그나마도 5곳은 서울이라는 것을 알고는 너무 놀라웠습니다.

아니, 왜?!

나라에서는 저출산이라면서 아이를 낳으라고 재촉하더니!

왜!

어째서!

 

 

뿐만 아니라 요양병원에서도 콧줄을 갖고 있는 환자는 '돌보기 어려운 환자', 즉 '의료고도군'으로 분류되지만 콧줄을 갖고 있지 않는 환자는 그 밑의 단계인 '인지장애군' 혹은 '신체기능저하군'으로 분류되어 환자 한 명당 병원이 받는 수가가 낮아져 의학적 이유가 아닌 돈이라는 경제적 이유로 의료 행위를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나니 누구에게 손가락질을 해야 하는 것인지...

의사가 오로지 환자만을 위해, 의학적인 이유만으로 의료 행위를 할 수 있는 사회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불량 판결문』에서도 그러했듯이 노동자들의 산재 사망 사건에 대해 그녀 역시도 목소리를 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그저 하릴없이 떠나보냈을 환자를, 지금은 예전보다는 많이 살린다. 그러나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결국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불과하지 않은가. 사고 현장으로부터 아무리 신속하게 환자를 이송해도, 아무리 빠르게 진단하고 치료해도, 이 사람을 살려놓으면 저 사람이 다치고 저 사람을 살려놓으면 또 이 사람이 다친다. 적어도 지금의 현실에서는 그렇다. 사람이 더 건강해지기 위해서, 더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은 안전한 사회 그 자체이다. 사고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시스템이나 응급 환자 이송보다 그것이 더 우선되어야 한다. 수많은 보건의료인에게, 그리고 국민들에게 그 어떤 근사한 병원이나 유능한 의사보다도 훨씬 더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 page 187 ~ 188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국회로 발걸음을 옮겨보지만...

 

"김 선생, 우리가 이렇게 노력한다고 세상이 정말 바뀔까요."

국정감사가 한창이던 어느 날이었다. 늦은 밤 회의를 마치고 함께 지하철을 타러 가던 길에 모시던 의원님이 내게 조용히 물었다. 감정을 도통 내비치지 않는 뿌리 깊은 나무 같은 분이었는데, 그날의 질문에는 유독 피로감이 짙게 배어 있었다.

"......바뀌어야죠, 바뀔 겁니다." - page 14

 

하루아침에 정책이 변하지 않지만 의료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함으로써 보다 제대로 된 보건의료 정책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그녀의 노력에 이제는 우리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디 살아있는 동안 모두가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녀의 앞으로의 행보에 저도 힘을 실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당신이 있기에 제가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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