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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가게 이야기 - 마트와 편의점에는 없는, 우리의 추억과 마을의 이야기가 모여 있는 곳
박혜진.심우장 지음 / 책과함께 / 2021년 4월
평점 :
개인적으로 챙겨보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어쩌다 사장>
'어쩌다' 그들이 시골 가게를 덜컥 맡게 되어 시골슈퍼 영업하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곳에 오는 이들은 주로 어르신들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시골이라 그럴 수도 있지만 오랜 세월을 한 동네에서 지내셨던 분들.
이들의 생필품을 구할 수 있는 곳이자 서로의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었던 곳은 다름 아닌 '동네슈퍼'였습니다.
그래서 <어쩌다 사장>에서도 슈퍼이지만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밥도 먹고 술도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 어느새 제 입가에도 미소가 번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나마 저도 어린 시절 동네슈퍼가 있었기에 친구들이랑 엄마가 준 용돈으로 과자도 사 먹고 슈퍼 앞에 있는 뽑기도 뽑으며 미니 오락기에 열정을 불태우곤 하였지만...
지금은 동네에 '슈퍼'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편의점'이, '대형마트'가 존재하게 되면서 내 아이는 자연스레 '동네슈퍼'란 개념을 모르게 되었습니다.
참 씁쓸하지만...
아무튼 아이들에겐 없지만 저에겐 소중한 추억이자 로망인 '동네슈퍼', '구멍가게'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는 반가운 마음에 읽게 된 이 책.
오십여 곳의 구멍가게가 전하는 우리네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봅니다.
마트와 편의점에는 없는,
우리의 추억과 마을의 이야기가 모여 있는 곳
『구멍가게 이야기』

그가 답사한 지역은 '전라남도'로 한정했습니다.
그 이유는 구멍가게가 쇠로에 접어든 지 오래라지만 상대적으로 변화의 속도가 느린 농촌에는 아직 마을공동체가 살아 있어서 오래된 가게가 남아 있을 가능성도 크다고 판단했기에 2011년 11월부터 2014년 6월까지 전남 지역 스물두 개 시군에 위치한 구멍가게를 방문하고 인터뷰를 하였다고 했습니다.

'구멍가게'라 하면 우리는 우리 일상의 일부로 기억하며 도타운 정을 느낄 수 있고 따뜻한 행복이 서려 있는 곳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왜 그런 걸까...?
구멍가게에는 순수하고 따뜻했던 시절의 기억이 집약되어 있어서, 때로 삭막하고 때로 넘치게 리얼한 어른의 세계에서 그곳에서의 추억은 한 편의 동화 같은 위안이 되곤 한다. 구멍가게에서 그려지던 일상의 풍경을 떠올리면 별다른 걱정 없이 해맑았던 그때가 환기되어 나도 모르게 치유를 받고 있는 느낌이 드니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구멍가게 자체보다 그 공간에서 펼쳐졌던 동네 아저씨들의 저녁 술자리, 젊은 우리 엄마의 장보기, 어린 내 친구들의 군것질 같은 소소한 삶의 정서를 그리워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구멍가게에 대한 아련한 기억은 잃어버린 골목, 그와 더불어 사라지는 평범한 일상에 대한 그리움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 page 15
구멍가게는 단순한 '가게'가 아니었습니다.
특히나 농촌마을에서 구멍가게를 운영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마지막 선택이었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가지고 있는 땅도 재산도 없어 어떻게든 아이들을 키우며 먹고 살 길이 필요했던 그 절실함 끝에 연이 닿은 것이 구멍가게였던 구례 <죽마리 구판장> 이야기는 한 여인의 고된 삶이 녹아있기에 안타까움이 느껴졌습니다.
처음 가게를 인수하고 아주머니는 깊은 절망감에 빠졌었다. 얌전히 집안 살림만 해오던 아주머니가 장사에 대해 알 턱이 없었다. 술 한 병에 얼마인지, 술 먹는 손님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 급한 마음에 무턱대고 가게를 시작한 탓도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술을 먹다가 큰소리만 내도 손발이 부들부들 떨리고 겁이 나서 혼자 울기도 많이 했단다. 그럴 때는 장사가 되든 말든 그만 먹고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다. 간이 졸아들 정도로 무섭고 긴장돼서 애당초 가게에 발을 들여놓은 것을 후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 page 381
아이들을 가르치고 생계를 꾸리기 위해 더럽고 치사해도 술을 취급해야 했던 그녀의 심정.
이런 가게에서 술 팔아가지고 돈 버는 거는 진짜 귀신도 맘대로 못 쓸 거예요. - page 383
술을 파는 게 아니라 감정을 팔아 인내를 사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이 오랫동안 가슴에 남았었습니다.
누군가에겐 삶의 절박함이 묻어 있는 곳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고단한 하루를 짜릿한 소주 한잔에 털어낼 수 있는, 적은 돈으로 맘 편히 풀어낼 수 있는 곳이기에 가게는 우리네 '애환'이라 부를 수도 있었습니다.
애써 말하지 않아도 동네가게가 베풀어주는 넉넉함과 편안함.

지금도 하나둘 사라지고 있는 구멍가게.
소통의 공간이었던 가게의 사라짐에 대해 여수 소라면 <담배집>에서의 아저씨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이 옆에 마을은 마을이 작으니까 이런 구멍가게가 없어져 버렸어요. 옛날에는 거기서 만나갖고 이 얘기 저 얘기 하며 정담도 나누고 덕담도 나누고 하는데 지금은 그런 게 없어져갖고 갑갑해. 자기 마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왜냐면 정보가 없으니까. 대화가 없고 그러니까. 나도 지금 옆 마을 이장이 아들 결혼시켰다는데 그걸 몰라가지고. 이런 데 오면 그런 이야길 다 들을 것인데 나중에 들은 거야. - page 162
가게가 없어지고 나니 만날 기회가 사리지고, 만남이 단절되니 대화도 끊어져 마을 소식에도 어둡게 되었다는 그의 이야기.
사람들 간의 만남이, 소통의 공간이었던 '가게'의 부재는 결국 '사람 간의 정' 역시도 사라지게 만들었습니다.
손바닥만 한 가게에서만 느낄 수 있는 사람 냄새, 삶의 애환, 정.
요즘의 '레트로'와 '아날로그'의 등장처럼 우리의 마음을 달래줄 '구멍가게'가 그리운 건 이 때문은 아닐까란 생각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