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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길
레이너 윈 지음, 우진하 옮김 / 쌤앤파커스 / 2021년 3월
평점 :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이 책을 읽게 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습니다.
작년 여름부터 시작된 관절마다의 통증을 비롯해 만성피로로 동네 병원을 다니면서 근근이 버텨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도통 차도가 보이질 않아 다른 병원에서 다시 검사를 한 결과...
"대학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셔야겠네요!"
이런 일이 한두 번은 아니었기에 이번에도 대수롭지 않게 대학병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저의 병명은 '류마티스'.
'이 나이에...?
어째서...?'
그런데 그 뒤에 이어진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더 큰 충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병은 워낙 복합적이라 원인을 규명하는 것도 힘들고 완치가 된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아......
뭐 지금은 덤덤히 약을 먹으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그땐 그 사실도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보자마자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모든 것을 잃진 않았지만 그들을 통해 '희망'을 얻기 위해...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은 그때,
내일을 위해, 희망을 위해
우리는 걷고 또 걷기로 했다
『소금길』

그렇게 걷기로 결심했을 때 나는 계단 아래에 숨어 있었다. 그때 난 등에 배낭을 짊어지고 1,000킬로미터를 걷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신중하게 생각하지도 않았고, 내가 과연 그 일을 감당해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거의 100일에 가까운 기간 동안 야영을 하며 지낼 수 있을지 혹은 그렇게 걷고 난 후에는 뭘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거의 생각해보지 않았다. 32년을 함께한 남편에게조차 나와 함께 하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 page 15
열여덟에 처음 만나 32년을 함께한 중년 부부 '레이너'와 '모스'.
이들은 함께 폐허가 된 농장을 다시 일으켜 세웠고 푸성귀를 키우고 암탉을 치며 두 아이를 키웠고 휴가철에 농장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방을 빌려주고 필요한 돈을 버는 여느 평범한 부부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곧 불행이 닥치게 되는데...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고 어울렸던 친구 '쿠퍼'로부터 배신을 당하게 됩니다.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수상쩍은 금융 관련 일을 하게 되었을 때도 그만큼 신뢰했기에 그가 관여하고 있는 회사 중 한 곳에 투자할 기회가 생겼다는 말을 듣자마자 그 회사에 적지 않은 돈을 맡겼지만 그 결과는 막대한 부채만 남기고 도산하게 됩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도산한 회사의 부채에 대해 투자자인 이들에게 책임이 있다며 오히려 쿠퍼는 강경하게 대응을 해 3년 동안의 긴 법정 공방 끝에 이들은 집과 농장을 압수당하게 됩니다.
왜 불행은 또 다른 불행을 데려오는지...
남편 모스는 어깨와 팔을 괴롭히는 끊임없는 통증, 그리고 찾아온 손의 떨림 증상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이 병은 치료제도 없이 진통제로만 버텨야 한다는 희귀병 '피질기저퇴행'이라 진단을 받게 됩니다.
"글쎄요, 보통은 처음 증상이 발견된 이후 6년에서 8년 정도 생존할 수 있는데, 모스 씨의 경우는 처음 문제가 생긴 이후 벌써 6년 정도 시간이 흘렀으니 대단히 느리게 병이 진행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분명 진단에 착오가 있었던 거겠지요. 뭔가 다른 병일 거예요." - page 36
이 일들이 벌어진 건 불과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레이너는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려고 애를 썼지만 유리창에 부딪힌 벌처럼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습니다.
분명히 나는 실제 세상 안에 있었는데 갑자기 모든 것이 다 사라져버리는 듯한 그런 기분이었다. - page 37
그렇다고 이 부부는 주저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서로 배낭 하나씩만 메고 영국 남서부 해안의 절경을 품고 이어지는 내셔널 트레일 코스인 '사우스 웨스트 코스트 패스'로 무작정 걸어보기로 합니다.
이들에게 벗이자 집이 되어준 것은 자연이었고 오히려 사람들이 그들에겐 적으로 다가오곤 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고 생각했던 이 부부.
하지만 그 걸음마다엔 서로에 대한 '사랑'이, 새로운 '희망'이 쌓이면서 비로소 한가득 소중함을 채우게 됩니다.
과연 나라면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특히나 이런 부부의 모습은 저에게도 큰 인상을 심어주었습니다.

'부부'라는 '연'으로 만나 '하나'가 되고 서로의 '인생'이 되었다는 이들의 모습.
이들의 모습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연상케 해 주었기에 괜스레 눈물도 나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나아갈 수 있었던 건 '과거'에 집착하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우리가 과연 잘한 걸까?"
모스가 진통제 네 알을 삼키고는 바위 위에 앉았다. 나는 중국 약재상에서 구한 진통제 연고를 그의 어깨에 발라주었다. 삶은 양배추 냄새를 풍기는 이 약은 효과는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뭔가를 하고 있다는 기분은 들게 해주었다.
"우리가 잘못한 게 뭐가 있겠어. 방이 필요하면 우리가 번 돈으로 방을 얻으면 되고 당신은 다시 공부를 하고. 그리고 나는 또 뭐든 일을 찾을 수 있겠지. 아니면 나도 뭘 다시 배우던가. 그렇지만 이제는 다른 누군가에게 기대어 사는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삶을 다시 살아갈 수 있게 된 거야."
"그래, 나도 알아. 그건 확실하지. 내 말은 이렇게 다시 걷고 있는 게 잘한 선택이냐는 거지."
"우리가 살면서 한 일 중에 제일 잘한 일일 거야."
"그렇다면 좋아. 사실은 그 말을 당신에게서 듣고 싶었지." - page 454 ~ 455
읽고 난 뒤 저도 제 '동반자'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나아갈 길을 함께 할 그 사람이 있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들에겐 '희망'이 있기에 시련을 겪고 좌절을 하더라도 헤쳐나갈 수 있음을 가슴에 새겨두어야겠습니다.
"우리한테 일정이 있었던가?"
"그야 물론이지. 이렇게 걷고 쉬다가 다시 우리 미래를 찾을 수 있을 때까지 걷고 또 걷는 거야."
"그거 정말 좋은 생각이야." - page 110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