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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어가 된 조선 유학자, 윤휴 - 왕과 사대부, 그리고 사관마저 지우려 했던 조선 최초의 자유로운 사상가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4월
평점 :
이 책을 읽게 된 건 '금기어'라는 단어가 주는 짜릿함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그의 이름, '윤휴'.
누구신지......
책을 읽기 전 이 문구.
"성현의 말씀에
남녀와 반상의 차별이
어디 있는가?"
때는 조선시대라는데...
우리가 알기에는 이 시대는 여성이 존중받지 못한 시대였기에, 특히 최근에 읽었던 소설『난설헌』에서 그녀가 울부짖었던 것처럼
"나에게는 세 가지 한이 있다.
여자로 태어난 것, 조선에서 태어난 것,
그리고 남편의 아내가 된 것......"
이 시대에 '평등'을 외쳤다니!
왜 이제서야 그를 만나게 되었을까...
아니 이제라도 만나게 되어서 반가웠습니다.
사문난적으로 몰려 사형당한 당대 최고의 선비, 윤휴
340년의 긴 침묵을 깨고 입을 열다!
『금기어가 된 조선 유학자, 윤휴』

현종 15년(1674) 7월 초하루.
윤후는 이른 새벽에 일어나 목욕재계했다. 정성스레 머리를 감고 몸을 닦았다.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 가묘로 올라갔다. 그의 손에는 여러 날 동안 침식을 잊다시피 하면서 작성한 상소문이 들려 있었다. 윤휴는 상소문의 내용을 가묘에 고했다. 그리고 상소문을 밀봉했다. 이른바 비밀 상소인 밀소였다.
가묘에서 나와 아들 하제를 불렀다.
"이 상소문을 대궐에 나아가 올려라." - page 23
그의 나이 이미 만 57세.
아직 한 번도 벼슬길에 나가지 않은 포의지만 명성만은 천하에 드높았던 그, 윤휴.
비록 벼슬은 없지만 거대 집권당인 서인에 맞설 수 있는 학문적 권위를 갖고 있던 그가 세상을 향해 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큰 의리가 담긴 상소'라는 뜻의「대의소」.
그의 상소를 「대의소」라고 부르는 것엔 이유가 있었다고 합니다.
북벌을 뜻하는 대의로 그는 북벌을 주장하는 상소를, 그것도 때를 기다리자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북벌하자는 상소로 표면적으로 북벌은 서인의 당론이었지만 그건 엄연히 당의 선명성을 과시하는 구호에 불과했기에 그들의 이중성이 드러나는 이 상소를 묻어두는 것으로 마무리를 합니다.
하지만...
글은 가려질 수 있었겠지만 그 뜻은 가려질 수 없기에...
윤휴의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가 펼쳐지게 됩니다.
역시나 위대한 인물들은 어쩜 이리도 다사다난한지...
어린 윤휴가 서울에서 공부하던 광해군 15년(1623) 3월 인조반정이 일어나면서 쿠데타와 같은 시기에 아버지를 잃으면서 역사와 국가에 눈을 뜨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또한 그는 뚜렷한 스승이 없었기에 특정 사고에 갇히지 않을 수 있다는 큰 장점을 가지고 성장하게 됩니다.
열두 살 윤휴는 자신의 아버지 윤효전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상언을 올리는 비범함을 보이지만 역시나 조정은 이를 무시하게 됩니다.
"지금 이후로는 다시는 과거에 응시하지 않을 것이오. 그리고 좋은 때를 만나 벼슬을 하더라도 오늘의 치욕을 잊지 않을 것이오." - page 71
경서의 세계에 침잠한 윤휴.
그의 학문 실력은 소문이 나면서 많은 사대부들이 찾아와 함께 어울려 학문과 시사를 논하고, 복수 설치를 꿈꾸게 됩니다.
훗날 서로 죽이는 비극이 될 줄 모르고...

그의 이름이 금기어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세 가지 있었습니다.
첫째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인 주자의 학설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독보적인 학문 세계를 구축하고자 한 죄.
둘째는 서인 당파의 당론이었던 북벌 불가에 저항하며 조선을 동아시아의 맹주로 만드는 부국강병을 도모한 죄.
셋째는 사대부 계급의 특권을 타파하고 반상과 남녀의 차별을 넘어선 세상을 실현하려 한 죄.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야 함을 외쳤지만 제 한 몸의 영화와 제 집안의 부귀만 힘쓴 송시열과 노론 기득권 세력에 의해 왕의 눈과 귀는 백성이 아닌 그들로 가려져 결국 사형을 당하게 됩니다.

읽고 난 뒤 가슴이 아려왔습니다.
개혁을 꿈꾸었지만, 그래서 모든 백성들이 잘 살아갈 수 있게, 보다 국가의 세력이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하며 목소리를 외쳤지만 그 목소리는 소리 없는 메아리로, 한낱 먼지로 날려보냈던 그 시대가, 그들이 야속하고도 원망스러웠습니다.
만약 그의 외침대로 이루어졌다면 지금의 우리는 좀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이들의 모습은 과거에만 그치지 않고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여전히 자신들의 안위만을 생각하고 뚜렷한 정책으로 개혁보단 안일한 태도를 보이는 그들.
지금의 우리에게도 '윤휴'와 같은 이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는 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