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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여행한 식물들
카티아 아스타피에프 지음, 권지현 옮김 / 돌배나무 / 2021년 3월
평점 :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커피 한 잔을 하고 간단히 과일들을 먹었습니다.
커피, 딸기, 바나나...
뜬금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일상 곳곳에서 마주하게 되는 식물들은 어디서 어떻게 왔을까...?'
이 궁금증을 해결할 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금 당신이 손에 쥔 이 책은 완전히 새로운 차원을
열었다! 《세계를 여행한 식물들》은 식물학 최초로
가상현실, 록 공연장, 비디오 게임의 언어를 도입했다."
- 프랑시스 알레
흥미진진한 모험담 속으로 들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세계를 여행한 식물들』

10개의 식물들이 겪은 험난하고도 기상천외한 여행기가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차나무를 시작으로 딸기, 키위와 같은 과일들도 등장하게 되고 약용 대황, 고무, 담배 등.
식물의 본고장으로부터 시작된 이들의 여행기는 모험가들의 노고와 함께 박진감 넘치게 그려져 앞서 '프랑시스 알레'의 추천사의 말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첫 문을 열어준 식물은 세계에서 물 다음으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음료인 차의 '차나무'였습니다.
중국이 유일한 재배지였던 차나무.
17세기에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상인들이 서양으로 들여온 차나무는 19세기 중반에 최상의 차를 얻기 위해 영국이 훔치다시피 가져간, 그래서 '식물학자 스파이'까지 등장하게 된 차나무 이야기는 차의 맛과는 달리 위험하면서도 짜릿함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제 눈길을 끈 건 아무래도 요즘 제 식탁에도 존재감을 나타내는 향긋한 '딸기'이야기였습니다.

토실하고 맛있는 딸기의 모험은 아메데-프랑수아 프레지에(1682~1773)라는 프랑스의 특출난 탐험가의 모험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모험을 꿈꾸던 그에게 1711년 에스파냐의 요새화된 항구 도시들을 비밀리에 연구하기 위해 칠레로 파견되는데 그 역시도 '스파이'로의 임무로 시작되었습니다.
빈약했던 프랑스 딸기에 비해 칠레의 딸기는 엄청나게 크다는 것에 놀라웠던 그.
하지만 남아메리카에 도착한지 2년이 지나자 그의 임무는 방해를 받고 1713년 위트레흐트 조약이 체결되면서 임무가 종료되는 바람에 도망자 신세가 됩니다.
딸기나무 몇 그루를 가지고 프랑스로 귀국했지만 이게 웬일인가...
암나무만 골라 가져온 것이었습니다...
라고 끝이었다면 비극이 되었겠지만 새로 들여온 칠레의 딸기는 버지니아 딸기와 교배되었고 오늘날 우리가 흔히 먹는 양딸기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칠레 딸기처럼 크고 버지니아 딸기처럼 맛있는 딸기의 탄생!
하지만 그 무엇보다 이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탐스런 과일 딸기의 모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딸기는 여전히 시장을 점령하고 있다. 딸기의 점령은 클론이 습격이라고 할 수 있다. 딸기나무의 주요 생식 방법이 기는줄기를 많이 만드는 무성 생식이기 때문에 클론이 나오는 것이다. - page 57
현재 딸기나무는 20여 종이 있지만 변종의 수가 600여 개에 이른다고 하니 딸기의 분신술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습니다.
'담배'에 대한 이야기에선 담배를 아마존에서 발견하였지만 오히려 유럽을 떠난 적 없이 프랑스에 도입해 '발견'했던 '장 니코'에 가려진 프란체스코회 수도사 '앙드레 테베'가 등장하였습니다.
수도사라는 신분을 버릴 생각은 없지만 호기심 많고 넓은 세상을 발견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던 그.
무려 17년 동안 여행을 하고 관찰한 내용을 스케치 등으로 기록하고 유럽에 알려지지 않은 식물의 씨앗을 몇 개 숨겨 들고 오는 등 그의 업적을 보면 역사에 많이 기여했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좀 과장을 해서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그는 거짓말 잘하는 탐험가로 여겨지게 되고 그가 죽고 오랜 세월이 지난 20세기에 와서야 사람들이 그의 말을 아주 조금 믿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런 그를 위해 우리에게 위트 아닌 위트를 남겨주었습니다.
애연가들이여, 이제 담배를 피울 때마다 우리의 모험가 수도사 앙드레 테베를 생각해주길. 그가 없었다면 당신은 여자를 꾀어내려고 담배 권하기, 흡연 퇴치법에 대해 분노하기, 바깥에서 덜덜 떨며 담배 피우기, 담배 값 인상에 절망하기, 금연 패치의 효능에 대해 의문 던지기, 계단을 헐떡거리며 오르기, "제 폐 엑스레이에 보이는 작은 점들은 뭐죠?"라고 묻기 등 담배와 관련된 그 모든 기쁨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튼 (꾀어내고 싶은) 여자에게는 주지 말고 롱사르식으로 물어라. "제가 당신에게 앙구무아의 풀을 권해도 될까요?" - page 150 ~ 151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이 식물.
세상에서 가장 크고 구린 식물이라는 '자이언트 라플레시아'.

직경 1미터에 이르고 무게는 11킬로그램까지 나가는, 세계에서 가장 큰 꽃인 이 식물.
거대한 붉은 덩어리에 흰 반점이 잔뜩 나 생겨도 너무 못생겼고 정말 끔찍한 악취까지 내뿜는, 그야말로 사랑받을 조건을 다 갖췄다는(이런 식의 위트를 저자는 종종 내비치곤 합니다...) 이 식물을 발견한 토머스 스탬퍼드 래플스와 조지프 아놀드.
이 둘이 원정을 통해 발견하게 되었는데 현지에서 '쿠루불' 또는 '암분암분'이라 불리는데 왜! 라플레시아'로 불리게 된 것일까?
뱅크스의 표본을 관리했던 로버트 브라운(그는 아놀드의 친구이기도 하다)은 래플스와 아놀드를 기리기 위해 꽃의 이름을 라플레시아 아르놀디라고 지었다. 아놀드가 래플스보다 꽃을 먼저 봤으니 아놀드에게는 억울한 일이다. 하지만 래플스가 더 유명했으니 속명이 그의 차지가 되었다. - page 211
그야말로 이 식물의 이름은 발견한 자연학자들에게 바치는 헌정이었음을...
식물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을 가지고 인간들이 생색내는 모습이 어이없지 않았을까...?!
무엇보다 이 식물이 책에 나온 이유는 아마도 저자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가 있어서였습니다.
현재 라플레시아는 23개 종이 있고 모두 동남아시아에서 자생한다. 이 꽃은 말레이시아의 상징이 되어 우표, 지폐, 쌀포대 등에 인쇄되어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3개의 국화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신비롭고 기이하면서도 아름다운 (취향에 따라 못생긴) 이 미지의 꽃은 생물다양성 보존의 상징이자 매력적인 관광 상품으로 활약하고 있다. 라플레시아라는 포켓몬까지 있을 정도이니 대단하다. - page 213
하나의 식물이 이름을 가지게 되고 우리에게 오기까지.
알고 보면 식물학자들의 모험과 열정으로 다가왔지만 정작 우리는 그들의 업적을 알지 못하고 무심히 지나치곤 하였다는 사실에 왠지 모를 미안함이 느껴졌습니다.
스파이까지 하면서,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도 씨앗을 챙기는 그 모습은 우리에게도 생각나는 한 분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목화솜을 선사해주셨던 '문익점'.
아무튼 그들 덕분에 우리가 이토록 다양한 식물들을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한 번쯤은 그들을 떠올리며 식물을 마주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란 생각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