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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탐험 - 너머의 세계를 탐하다
앤드루 레이더 지음, 민청기 옮김 / 소소의책 / 2021년 3월
평점 :
최근에 다시 붐을 일으키고 있는 '우주로의 여행'.
그동안엔 설마...?하고 지나쳤던 일들이 조금씩 형태를 갖추며 진짜! 가 되고 있었습니다.
특히나 우주여행을 민간인들도 할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온다는 뉴스는 인간의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알기 위한 욕구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만들어내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그래서 궁금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끝없는 인간의 호기심과 열망이 만들어낸
놀랍고도 위대한 탐험의 역사!
『인간의 탐험』

본문에 들어가기 앞서 '인간의 탐험'이 중요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아주 멀리 500년 후를 생각해보면 사소한 정치적 충돌이나 유명 인사의 뒷이야기, 주식시장의 변동 따위는 묻히겠지만 탐험만큼은 그렇지 않다. 콜럼버스가 중요한 이유는 그가 성취한 개인적인 업적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탐험의 세계를 열어 세상 사람들을 연결했기 때문이다. 콜럼버스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의 경계를 밖으로 넓힌 사람이었다. - page 8
우리가 그토록 떠나려하는 이유...?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해야만 얻을 수 있는 수 있는 해답이 있기에 원동력인 호기심과 대담성을 가지고 인류는 탐험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탐험의 여정.
그 속에서 어떻게 인류를 풍요롭게 만들었는지에 대해 발견과 모험, 부와 정복, 편견과 관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농업을 시작하면서 유랑 생활은 막을 내리고 대규모로 기술 발전을 촉진시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본격적인 탐험이 시작되었습니다.
고대인의 항해가 펼쳐지는데 실로 놀라웠던 건 기원전 276~기원전 195에 살았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초대 학예사였던 '에라토스테네스' 학자가 그린 지도.

이 지도를 보면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를 비롯해 지중해 주변의 대륙이 상세하게 나와 있고 심지어 18~19세기 유럽의 탐험가들이 찾으려고 100여 년 넘게 애썼더너 나일강의 수원인 두 개의 호수까지 그려져 있다고 하니 고대인도 아주 먼 곳까지 여행을 했고 이후 1,000년 동안 지구에 살았던 그 어떤 사람들보다 세계를 더 잘 알았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 무엇보다 '탐험'이라고 하면 저에겐 '바이킹'이 떠오르곤 합니다.
아무래도 바이킹은 환상적 요소로 미화되어 전설이나 사건들이 많이 알려져 있기에 그들이 떠오르는데 그만큼 그들의 행선 역시도 넓었습니다.
고향인 덴마크나 노르웨이, 스웨덴을 출발해 러시아부터 아이슬란드에 이르는 유럽 전역에서 약탈을 하거나 거래를 하면서 정착을 하였고 남쪽으로는 지중해의 시칠리아나 북아프리카까지 내려갔으며 러시아의 강을 따라 흑해까지 진출한 것을 보면 바이킹의 이동은 고대 이후 가장 대규모로 이루어진 문화 교류이자 유럽인 최초로 대서양을 건너는 계기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리고 탐험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이 '마르코 폴로'.
그의 여행기인 『동방견문록』은 동아시아의 지식을 유럽에 알렸을 뿐 아니라 미래의 여행가나 탐험가가 동아시아에 가도록 모험심을 자극하였기에 그의 영향력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
그런데...
대항해 시대라하면 '유럽'을 떠올리던 저에게 새로운 사실이 일러주었습니다.
바로 대항해 시대의 초반에는 중국이 유럽보다 훨씬 앞섰다는 것.
1400년대 초반,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가장 앞선 해군을 운용해 유럽보다 더 적극적으로 세계를 탐험하고 식민지를 개척하고 정복 사업을 벌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만약에...
만약 역사가 조금 다르게 흘러 중국 원정대가 유럽까지 가서 자국에 유리한 조건으로 무역협정을 강요했다면, 유럽이 아프리카 해안을 돌아 아시아에 도착하거나 서쪽으로 대서양을 건너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중국 탐험가들이 태평양을 건너 유럽으로 가는 직항로를 찾으려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는 바람에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스페인 정복자들 대신 중국 정복자들이 금과 은에 눈이 멀어 아스텍과 잉카의 도시를 유린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가상의 역사에서 중국 항해자들은 유럽으로 가는 항로를 찾다가 아메리카 대륙을 탐험했을 수도 있고, 중국인들이 황제의 전횡을 피해 캘리포니아에 이주민 마음을 세웠을 수도 있다. 역사가 아주 조금만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면, 중국어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주류 언어로 자리잡아 결국에는 국제 공용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 page 160 ~ 161
조금은 소름이 끼쳤습니다.
만약 그랬었다면... 우리의 지금은 어떤 모습일지...
콜럼버스로 인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게 되고 탐험에 한 획을 그었지만 '페르낭 드 마갈량이스(영어로 '페르디난드 마젤란')'의 업적을 더 의미 있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마젤란의 탐험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전 세계의 사람들을 연결하는 사슬에서 가장 마지막 마디를 완성했다는 것이다. 이후 수십 년 동안 스페인 함대가 태평양을 건너가 필리핀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마닐라의 전초기지는 유럽뿐 아니라 중국, 일본, 인도, 베트남도 탐내는 곳이었다. 그 뒤로 250년 동안 마닐라와 멕시코 아카폴코 간에 갤리언선이 오가면서 아메리카의 은과 중국의 도자기, 칠기, 비단을 교역했다. 중국의 상품은 육상으로 멕시코시티까지 이동한 뒤, 다시 유럽으로 운송되었다. 이 무역로를 통해 상품뿐 아니라 사람들도 오갔다. 1613년에는 한 사무라이가 일본인으로는 처음으로 멕시코를 방문하고 대서양을 건너 로마까지 갔다. 또한 중국인들이 신대륙에 도착해 유럽인, 아메리카 원주민과 섞이기도 했다. 지금은 일상화된 국제적 교류가 바로 그때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근대화의 시작이었다. - page 219 ~ 221
그렇게 세계 곳곳으로 흩어진 인류는 세상 너머로 경계를 넓히면서 지구 전체를 잇는 세계적인 연결망을 구축하게 됩니다.
단순했던 지도에서 점점 빈 곳은 채워지고 보다 세밀화되면서 인류는 세상의 발견으로부터 넓히며 세상의 진면목을 발견하는 것에 '탐험'의 의미를 두기 시작합니다.

창공에 이름을 새기고 우주로 그 공간을 확장하기 시작합니다.
수많은 행성을 발견하고 행성에 관한 정보를 알아내며 이제는 달은 기지로, 화성은 거주지로의 시도는 상상이 아닌 현실로 이루어지기 위한 인류의 탐험은 현재진행형이기에 앞으로의 미래가 더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인류는 끝없이 호기심과 열망을 채우기 위해 다녔다는 것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왜 그토록 진출을 하려는 것일까...?
이는 삶을 기본적인 생존의 전부가 아닌 더 가치 있는 삶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너무나 작아진 이 세계.
영원히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우주로의 나아감은 우리의 숙제이자 삶의 의미가 아닐까란 생각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