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콥스키 -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인 볼가강의 영혼 ㅣ 클래식 클라우드 27
정준호 지음 / arte(아르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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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을 들으면 딱! 하고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여느 작곡가와는 달리 '발레 작품'이 떠오르는 그,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

 

그동안 유럽의 작곡가들에 관한 책들은 시중에서 종종 만나볼 수 있었는데 이번에야 차이콥스키에 대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반가운 마음에 읽게 되었습니다.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인 볼가강의 영혼

 

『차이콥스키』

 

 

19세기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러시아의 대표 작곡가 '차이콥스키'.

그의 숨은 걸작을 이제라도 알게 되는 그 묘미.

그 보석을 찾아가는 여정은 여느 여정보다도 넓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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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능통한 프랑스어와 독일어, 이탈리아어가 그를 세계인으로 만들었지만 정작 자신의 모국어인 러시아어는 나라 밖에서 통하지 않아 그의 걸작 오페라가 오늘날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요인이 되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삶을 산 '길 위의 작곡가'였던 차이콥스키.

 

차이콥스키는 우랄 지역을 떠나기 전 소년 시절에 이미 대부분의 유행 곡을 피아노로 연주할 수 있었고, 부모가 붙여 주는 선생의 실력을 금방 넘어설 만큼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지만 역시나 부모는 그를 수도의 등용문인 법률학교에 진학하게 됩니다.

빽빽한 수업과 기숙 생활 속.

음악을 접할 기회는 많지 않지만 그럼에도 열일곱 살에 만난 이탈리아 성악 교사 루이지 피치올리로부터 러시아 법률학교 학생 그 틈바구니 사이에서 음악적인 자아를 형성하게 됩니다.

결국 법무부 공무원의 일을 그만두고 1863년 예술가의 길을 택하게 됩니다.

 

차이콥스키에게는 삶의 고비에 처할 때마다 법률학교 시절의 친구인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아푸흐틴으로부터 많은 힘을 받고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고 그보다 네 살 어린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키레예프로부터 성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리고 그에게 운명적인 인연 중 한 명인 폰 메크 부인.

서른여섯 살이 되던 해 고대하던 <대장장이 바쿨라>를 상트페테르부릌크에서 초연을 하지만 반응이 썩 좋지 못했습니다.

낙담하고 있던 그해 저물녘, 그에게 뜻밖의 편지를 받게 됩니다.

 

친애하는 표트르 일리치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제 위촉을 그리 빨리 들어주시다니요. 선생님 작품이 제게 주는 황홀감을 말씀드려 보아야 부질없고 부적절하겠죠. 선생님께서는 저 같은 음악 문외한보다 훨씬 중요한 분에게 더한 찬사와 존경을 받는 데 익숙하실 테니까요. 아마 우스우실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어이없어할 만한 일을 하고 참을 수 없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만족합니다. 선생님 음악이 제 삶을 위로하고 즐겁게 해 주었다고 믿어 주십사 부탁드릴 수 있으니까요.

-1876년 12월 30일, 나데즈다 폰 메크가 차이콥스키에게 보낸 편지 중

 

그 후 후원자와 예술가로 장장 14년에 걸쳐 수백 통에 달하는 편지를 주고받게 됩니다.

덕분에 차이콥스키는 교수직에서 물러나 창작에만 몰두하며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게 되는데 놀라웠던 건 부인과는 단 한 번도 직접 만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진정한 후원자와 예술가의 관계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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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차이콥스키를 이야기할 때 떼려야 뗄 수 없는 '발레'공연들이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우선 <백조의 호수>는 초연판과 요즘 우리가 보는 수정판에 차이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2막과 4막.

 

4막은 확실히 초연판이 더 설득력이 있다. 해피엔딩을 바라는 관객에게 왕자의 사랑을 거부하는 공주의 예상외 반응은 양쪽 모두 같다. 설상가상 왕자도 왕관을 던져 버려 산통을 깨고 만다. 그러나 앞서 본 대로 초연판은 2막에서 공주가 왕자에게 먼저 구해 달라고 하지 않았고, 맹목적인 희망보다는 걱정을 내비쳤기 때문에 이제와서 용서해 달라는 왕자의 행동은 부질없어 보인다. 수정판에서는 2막에서 왕자와 오데트가 관객의 희망을 한껏 부풀렸기 때문에 4막의 체념이 느닷없고 실망스럽다. - page 96

 

보다 극적인 표현을 하고자 차이콥스키가 세상을 떠난 뒤 고쳤겠지만...

그래도 원작자의 의도로 남겨두었다면 어땠을까... 란 생각도 해 봅니다.

 

그리고 <잠자는 숲속의 미녀>.

유일하게 그의 생전에 성공을 거두었던 작품인 만큼 그 역시도 이 작품에 대해 폰 메크 부인에게 자신했습니다.

 

이 발레 음악은 제 작품 중 최고가 될 것입니다. 주제는 너무나 시적이고, 음악과 잘 맞습니다. 작곡하면서 아주 몰입했고, 열과 성을 다한 결과는 늘 보상받습니다.

-1891년 8월 6일, 차이콥스키가 폰 메크에게 보낸 편지 중

 

하지만 저에겐 개인적으로 <호두까기 인형> 작품이 인상적인데 아마도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면 마치 선물처럼 우리 곁에 다가오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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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이 작품은 초연 때 인정받지 못했다고 하니 작은 탄식이 나오고 하였습니다.

그래도 명작은 언젠간 인정을 받는다는 것을 이 작품을 통해서도 알 수 있었습니다.

 

차이콥스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음악에 대해 항상 목말라했고, 그래서 음악을 진정 사랑해 많은 곡들을 만들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만년으로 갈수록 더욱 무섭게 빨라져 매년 하나씩 대작을 쏟아 내며 틈틈이 절대 작지 않은 곡을 병행했다고 하니...

또한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기에 작품을 마칠 때마다 '최고다'라며 외치는데 그 일화 중 하나가 있었습니다.

차이콥스키는 큰 신세를 진 니콜라이 루빈시테인에게 헌정하려고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을 써서 크리스마스 전야에 연주해 의견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니콜라이는 어설프다는 평과 함께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을 모델로 하라며 퇴짜를 놓고 큰 충격을 받은 차이콥스키는 음표 하나 바꾸지 않고 당대 제일의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였던 뷜로에게 보내 결국 인정을 받았는데...

그의 열정과 완벽함을 향한 집념은 그가 훗날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만들어 준 것이 아닐까란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신만의 음악세계 구축했던 차이콥스키.

애석하게도 그는 자신의 어머니와 같이 콜레라로 인해 1893년 11월 6일 우리의 곁을 떠나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죽음에 대해 의혹도 제기하고 있지만 그런 사인들보단 그의 업적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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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과 장벽이 없었던 차이콥스키.

그래서인지 그의 음악은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그동안 그에 대해 너무 몰랐다는 것이 안타까웠고 이제서야 그를 알게 되어서 더없이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남긴 음악들...

다시금 음악과 그의 업적을 되새겨보며 교감하고 싶었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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