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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 박완서 작가 10주기 에세이 결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0년 12월
평점 :
정말 창피한 이야기지만...
그녀의 작품을 읽어보지는 못하였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작품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엄마의 말뚝』『나목』등...
그래서 그녀의 작품보다 그녀의 진실한 이야기가 더 궁금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작가', '한국 문학의 어머니'라는 칭호가 더없이 어울리는 작가 중 한 명.
한국 문학의 가장 크고 따뜻한 그녀, '박완서'.
비록 우리 곁을 떠난 지 10년째 되는, 새해가 밝았으니 11년째 되는 해가 되겠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따뜻한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다이아몬드에는 중고라는 것이 없지.
천년을 가도 만년을 가도 영원히 청춘인 돌."
-박완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이번에야 깨달았습니다.
'박완서'님은 '박완서' 님이다.
그녀의 글은, 언어는 세대를 초월해도 대체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가 쓰는 언어가 이렇게나 유의미하게, 따스하게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첫 장부터 시작된 그녀가 내어준 그 길...
그 '길'로 하여금 잔잔한 울림으로 다가와 결국은 어머니와 같은 '품'으로 보듬어주었습니다.
길은 사람의 다리가 낸 길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이 낸 길이기도 하다. 누군가 아주 친절한 사람들과 이 길을 공유하고 있고 소통하고 있다는 믿음 때문에 내가 그 길에서 느끼는 고독은 처절하지 않고 감미롭다. - page 15
같은 일상이라도 그녀에게만 보이는 그 미세한 차이.
아마도 이걸 '관심'이라고, '사랑'이라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시선이 고스란히 이야기에 담겨있어서 음미하면서 읽어내려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차마 마지막 장을 쉬이 읽어내려갈 수 없었습니다.
그 이야기가 끝나면 또다시 각박한 세상을 마주하게 되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었던 건 그녀가 전해준 깊은 '감동'이 가슴에 남아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참으로 보석 같은 문구들이 많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저에게 위로가 되어준 이 이야기...
70년은 끔찍하게 긴 세월이다. 그러나 건져 올릴 수 있는 장면이 고작 반나절 동안 대여섯 번도 더 연속 상연하고도 시간이 남아도는 분량밖에 안 되다니. 눈물이 날 것 같은 허망감을 시냇물 소리가 다독거려준다.
다행히 집 앞으로 시냇물이 흐르고 있다. 요새 같은 장마철엔 제법 콸콸 소리를 내고 흐르지만 보통 때는 귀 기울여야 그 졸졸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 물소리는 마치 다 지나간다, 모든 건 다 지나가게 돼 있다, 라고 속삭이는 것처럼 들린다. 그 무심한 듯 명랑한 속삭임은 어떤 종교의 경전이나 성직자의 설교보다도 더 깊은 위안과 평화를 준다. - page 110 ~ 111
모든 건 다 지나가게 돼 있다...
그 어떤 말보다 더 깊은 위안과 평화를 주었던 이야기였습니다.
그녀는 뛰어난 이야기꾼이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저에게 그녀의 이야기는 제 영혼의 상처의 만병통치약이었고, 그만큼 효능이 있는 뛰어난 이야기꾼이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새해를 맞이하고 30대 후반이 되니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연한 고민이 들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그녀는 이야기합니다.
현재의 인간관계에서뿐 아니라 지나간 날의 추억 중에서도 사랑받은 기억처럼 오래가고 우리를 살맛 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건 없습니다. 인생이란 과정의 연속일 뿐, 이만하면 됐다 싶은 목적지가 있는 건 아닙니다.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사는 게 곧 성공한 인생입니다. 서로 사랑하라고 예수님도 말씀하셨고 김수환 추기경님도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너희들 모두모두 행복하라는 말씀과 다름없을 것입니다. - page 139 ~ 140
모두들 행복하게 살기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