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 탐정 이상 5 - 거울방 환시기
김재희 지음 / 시공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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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와 추리에 능한 천재 시인 '이상'.

그리고 그의 곁에 뗄레야 뗄 수 없는 생계형 소설가 '구보'.


저와 ​이들과의 만남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경성 탐정 이상 시리즈'는 8년간의 대장정을 이끌고 이번에 그 마지막을 장식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아쉬움을 잠시 뒤로하고 그들과 사건을 해결하러 가보겠습니다.


끝! 끝에 부딪혔다네

내게 총을 겨눈 거울 속 나로 인해


경성 탐정 이상 5

 


전편들에서 만났던 이들이 하나 둘 등장하게 되어서 우선은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는 건 결국 엄청난 사건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음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란 불안함마저 들었습니다.


경성역 새벽 5시.

간만에 구보는 상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평소에는 농도 치면서 헤프지 않게 미소도 잘 보이던 상이 오늘은 일절 진지한 모습입니다.

아니, 사건의 위중함을 보여주는 듯 긴장이 서려있습니다.


머리가 묵직한 상은 카페인 가득한 커피 한 잔이 절실했습니다.

식당차에서 안내를 받아 커피를 시키고 창밖을 내다보던 중 한 젊은 남자가 상에게 인사를 합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하동민이라고 합니다. 건설사 직원인데 인천 현장으로 가는 중입니다. 소설과 시를 끼적였던지라 문인들 작품과 얼굴을 관심 깊게 봅니다."

"나도 건축기사로 근무했던 적 있소이다."

"압니다, 선배님. 아, 선배님이라 부르기에는 제가 너무 모자라서. 저 사실 조선공학회 회원입니다. 선생님께서 표지 도안 공모전 입상하신 것도 압니다." - page 17


자신과 너무나도 비슷한 듯한 '하동민'.

그렇게 그는 상에게 인사를 건네고 자리를 뜹니다.


구보 역시도 기차 안에서 누군가와 만나게 됩니다.

교동도의 슈하트 학교 상급 전문과정에 입학하는 '주안나' 아가씨와 그녀를 경호하는 '소유미'.

마침 상과 구보가 가는 곳 역시도 교동도의 '슈하트 학교'였기에 이들과의 만남 역시도 쉬이 지나칠 순 없었습니다.


교동도에 위치한 독일계 '슈하트 학교'.

한강오 변호사의 딸 '한영미'라는 슈하트 학교의 학생이 실종된 지 일주일이 된 것이었습니다.

의뢰인 말로는 학교에서 가출로 보고 안일하게 대처해 경찰도 형식적 조사만 한 것 같아 상과 구보에게 사건을 의뢰하게 되는데...


이 학교의 철학이 독특합니다.


"요가는 명상과 호흡, 이완을 결합한 수련이고, 슈하트는 자연생태를 중시하죠. 슈하트와 요가는 본질적인 사상이 같아요. 내 몸을 자연과 동일시하고 정결하고 순수한 음식으로 몸을 정화하며 깨어 있음을 갈구하는 겁니다." - page 44


그리고 학교 이념이나 생활 태도가 맞지 않으면 '자아성찰의 방'이란 곳에 며칠 가두고는 벌을 준다고 하였습니다.


"학교 이념에 따라서 명상방들을 만들고 마지막 방에는 거울을 사면에 두어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했어요. 거울로 자신을 장시간 들여다보게 해서 내면의 순수를 이끌어내요. 자아를 성찰하며 반성하게 한다구요." - page 79


학교에 감금과 벌이 이루어지는 방이 있다니...

그리고 그곳을 조사하고자 하지만 자꾸만 감추려는 교장 선생님.

학교에선 끊임없이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하고 상과 구보는 몰래 탐문을 벌이다 상의 행방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다시 만나게 된 상.

그런데 그는 정신을 잃고 오른손에 단도를 쥐고 있었습니다.

그 옆엔 금색 레이스가 겹겹이 달린 흰 드레스를 입은 한 여성의 가슴팍에 빨갛게 물든 피가 보이게 됩니다.


"구보......, 이제야 기억이 나네. 이 방에서 거울로 보이는 남자가 한영미를 죽였어. 칼을 들고 단번에 심장을 찔렀어." - page 183


"구보, 이제야 기억났어."

"말해봐, 그자가 누구야?"

"나야."

"뭐라고?"

기억 속 거울의 남자는 자신이었다! - page 184


아무리 상이 망상과 환청에 시달린다 하더라도 살인이라니...

도대체 상에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리고 이 슈하트 학교가 감추고자 한 진실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이들의 활약이 손에 땀을 쥘만큼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거울방'은 마치 이상의 시 <거울>과도 닮아있었습니다.



 


나를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

그 시선의 주인 역시도 '자신'이라는 점이 소름 끼치도록 무서웠습니다.

분리된 자아를 마주하게 된다는 거...


인상적인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구보, 나 또한 고립된 후 망상에 갇혀서 무너졌던 걸 자네가 끄집어내 주었지. 그만큼 인간은 환경이나 교육에 영향을 받네. 교동도의 폐쇄된 환경 속에서 잘못된 사상을 주입받고 살면서 억눌리다 보니 공포와 불안감에 무력해진 게야. 인간의 존엄성을 강제로 빼앗기고 체제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포로수용소를 생각해봐." - page 301


나치가 그러했고...

일제강점기 시 일본이 그러했기에 참으로 씁쓸히 가슴에 새겨진 이야기였습니다.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 영화 <암살>이, <군함도>가 떠오르곤 하였습니다.

아무래도 시대적 배경이, 그 속에 담긴 우리의 이야기가 닮아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소설도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분명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진한 울림으로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렇게 큰 사건이 지나고...

구보는 상의 커피 마시는 얼굴을 보면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는 끝을 맺게 됩니다.

홈즈와 왓슨과 같은 이 콤비의 활약...

그동안 이들의 활약을 볼 수 있어서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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