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감옥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이규원 옮김 / 고요한숨 / 2020년 11월
평점 :
품절


10년을 기다려온 쓰네카와 고타로의 숨은 걸작!


독자들에 의해 다시 소환되었다는 이 소설!

그 매력이 무엇일지 직접 읽어봐야겠습니다.


"우린 모두 여기에 갇혀버렸어"


가을의 감옥

 


소설은 세 편의 각기 다른 이야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시간, 공간, 환상

일상의 감옥에 갇힌 이들의 이야기.


우선 '시간'에 갇힌 이의 이야기가 등장하게 됩니다.


이 글은 11월 7일 수요일에 관한 이야기다. - page 9


여느 때처럼 학교로 걸음을 옮긴 그.

오전 내내 강의를 듣고 점심은 늘 갇이 먹는 유리에와 함께 학생식당에서 먹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텔레비전을 보는데 문득 써늘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몸통 둘레가 1미터는 됨직한 거대한 뱀이 내 등 뒤로 소리없이 스르륵 지나가는 것 같다.

나 말고는 아무도 없는 방이 이상하리만치 정적에 싸여 있다. 방 안에 큰 뱀이 있다. - page 10


그렇게 11월 7일 수요일은 막을 내렸습니다.


이튿날 사회심리학 강의를 들으러 강의실로 들어갔는데 낯설고 나이 든 교수가 경제학을 강의합니다.

교수의 착각이겠지... 생각한 그는 점심에 유리에와 함께 밥을 먹게 됩니다.

그런데... 어제 했던 이야기를 또다시 하는 유리에.


"넌 수요일인 어제 카레를 먹으면서 똑같은 얘기를 했어."

"어젠 화요일이잖아."

"무슨 소리야. 어제는 수요일이었어. 오늘은 목요일이고."

"오늘이 수요일이라니까." - page 12


11월 7일에 갇힌 그는 11월 8일로 갈 수 있을까...?


낙엽이 춤추고 바람이 다가온다. 문이 열리고 눈부신 빛에 휩싸인다.

안녕, 11월 7일. - page 75


두번째는 '공간'에 갇힌 이가 등장합니다.

친구 집에서 기분 좋게 취한 그.

집에 곧장 들어가기가 아쉬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샛길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잠시 걸어가자 무언가가 보입니다.


달빛이 집 한 채를 비추고 있었다. 초가지붕과 툇마루가 보였다. 이 근방하고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집이었다. - page 80


오키나 가면을 쓴 남자가 이리 오라며 손짓을 합니다.

주저주저 집 안으로 들어섰더니 그 남자가 가는 손으로 내 손목을 잡더니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나는 아주, 아주 오랫동안 여기에 있었어요. 당신을 기다리면서 말이오." - page 83


"나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소. 누구든 여기 들어온 사람에게 집을 떠넘기면 되니까. 반듯한 후계자가 오지 않는다면 아무나 좋으니 집을 떠넘기면 되는 거요. 이 운명을 대신 짊어질 사람을 내세우면 되는 거였소. 하지만 나는 자유가 무서웠다오. 대대로 내려온 집을 버리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바깥으로 나가 달랑 혼자 산다는 게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소. 아무튼 지금은 아는 벗도 없고, 이 집을 아는 사람들도 거의 다 세상을 떠났을 거요. 나는 그만 때를 놓친 것이지." - page 85


그리고는 툇마루에 앉은 가면 남자가 흐릿하게 사라지고 그 집에 갇히게 된 그.

그는 집에서 나올 수 있을까...?


마지막엔 '환상'에 갇힌 이가 등장합니다.

어린 시절 자신을 공주님이라 불러주던 할머니.

그리고 언제였던가, 할머니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누구나 꿈꾸지만 결코 가져본 적이 없는 힘을, 넌 가지고 있단다.

나와 할머니 단둘뿐이었다.

다른 사람은 알지 못했다.

숨이 막힐 만큼 푸르른 미궁에 우리는 있었다. - page 147 ~ 148


사실 할머니는 친할머니가 아닌 환술사 할머니였습니다.

할머니의 환술을 몰래 연습하면서 점점 자신도 환술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로 인해 점점 불행해지는데...

앞으로 펼쳐질 미오의 인생은 어찌 될까...?


감옥의 자물쇠는 벗겨져 있다. 앞으로 이곳은 감옥이 아니고 산사도 아니다.

남자의 절규 소리를 들었는지 누군가 급하게 복도를 뛰어온다.

나는 그 소리를 고스란히 듣고 있다.

나는 격렬한 환희에 몸을 떨며 웃기 시작한다. - page 217 ~ 218


처음에 이 소설을 접했을 땐 조금 의아했습니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곱씹을수록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평범했던 일상의 것들이 나를 가두게 되었을 때 느끼게 되는 불안과 공포로 비로소 깨닫게 되는 인간의 내면의 모습을...


소설들을 읽으면서 이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인생에서 만나는 문제라는 것...

문제라고 단정 짓는 것도 문제이겠지만 무심코 지나치는 것 역시도 문제라는 것을, 그래서 나를 둘러싼 것들의 되돌아보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긴 그의 소설.

만약 내가 갇히게 된다면...

나의 모습은 어떻게 그려질지 상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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