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우 엔젤
가와이 간지 지음, 신유희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책 제목만 보았을 땐 떠오른 영화가 있었습니다.

<러브스토리>

두 사람이 눈밭에서 알콩달콩하면서 뒹구는 모습.

특히나 눈 속에 누워 팔다리를 위아래로 휘저어 만드는 눈의 천사 모습.


하지만......

이 소설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얀 천사'가 내민 손이 참으로 어두웠습니다.


"이제 곧 '천사'는 온 세상의 하늘을 뒤덮을 거야.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거지.

...... 나에게 의존하라, 나에게 복종하라.

복종하지 않는 자에게는 죽음을"


스노우 엔젤

 


2014년 6월 ○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라피엣.


언덕 위에서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한 노인이 있었습니다.

짧은 백발, 하얀 콧수염, 길고 흰 턱수염.

온화한 표정으로 눈 아래 펼쳐진 호수를 바라보는 그를 부르는 목소리.


"미스터 샤로노프?" - page 10


짧고 검은 머리, 검은 홍채에 아시아계인 듯한 검은 슈트를 입은 남자가 노인에게 다가가 말을 건넵니다.


"용건을 말하겠다. 미스터 샤로노프, 당신의 레시피가 필요해." - page 12


그가 한평생을 바쳐 만든 '최후의 레시피'.

이것은 마치 한없이 다정하고, 치유는 끝이 없으며, 아낌없이 주기만 할 뿐 앗아가는 법이 없는, 마치 깨끗하고 순수한 눈옷을 걸친 천사와도 같은 그것......


"천사는, 정말로 신이 내게 준 선물이었을까? 아니면, 신의 낙원에 감히 발을 디디려 한 나에 대한 징벌이었을까? 그럼, 사랑하는 앤이 죽임을 당한 것 또한 신의 징벌일까?" - page 16


라피엣 휴양지가 내려다보이는 작은 언덕 위.

공기가 분출한 듯한 둔탁한 총성은 코티지 주위를 무성하게 둘러싼 나무들의 술렁임으로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2017년 9월 24일, 일요일, 도쿄도 주오구 긴자.


극심한 초조감에 휩싸여 차와 함께 질주하는 그는 자신을 쫓아오는 좀비들을 처단하기 위해 무차별하게 살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곤 백화점 옥상으로 올라간 그.

하늘에 누군가가 떠 있습니다.


"천사, 님......?" - page 24


"이 미친 세상에서 저를 데려가주세요! 저를 구원해주세요!" - page 25


그러곤 그는 철제 난간에 기어올라 양팔을 활짝 펼친 뒤 발부리로 난간을 힘껏 박차고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백주대낮에 수십명을 살상하는 흉행을 저지른 자의 입에서 나온 단어, 천사님.

현장을 바라보던 기자키 계장은 말없는 주검을 바라보니 어째선지 등줄기에 오싹하니 소름이 돋는 듯함 감각에 휩싸입니다.


9년 전, 진자이 아키라와 히와라 쇼코는 경시청 다카이도서 소속 형사였습니다.

사철 선로 위 고가도로에서 나이 지긋한 변호사 부부가 떨어져 사망한 사건.

즉각 사고사로 결론이 내려졌지만, 진자이만은 현장 상황으로 보건대 사고가 아닌 '사건'임을 의심했고 사건을 쫓다가 자신의 동료, 뒤늦게 사랑이었음을 깨달았던 히와라 쇼코가 다섯 남자에게 저격당해 사망하게 됩니다.

진자이는 그 다섯 남자를 전부 쏴 죽이고, 모든 사실을 상사에게 보고한 후 도망자 신세로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사망자로 처리된 진자이에게 누군가 다가옵니다.

알고보니 전 상사였던 기자키 계장님이셨습니다.

기자키는 진자이에게 누군가 만나고 싶어한다고 그를 데려가고 그곳엔 마약 단속관 미즈키 쇼코가 있었습니다.

미즈키 쇼코는 진자이에게 제안 아닌 제안을 하게 되는데......


"당신은 스노우 엔젤인지 뭔지 하는 신종 약물을 유통시키고 있는 놈을 잡고 싶어. 그래서 그놈을 찾아내기 위해 새로운 협력자(S)를 고용하기로 했지. 그게 나야. 당신은 나한테 뭘 시킬 작정이지?"

그러자 미즈키 쇼코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스노우 엔젤을 유통시키려 드는 인물이라면 찾을 것까지도 없습니다. 저희가 이미 파악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진자이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당장 잡아넣으면 되잖아."

"증거가 없습니다."

쇼코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당신의 임무는 그 인물에게 접근하여 체포 영장을 청구할 수 있을 만한 증거를 잡아내는 것입니다." - page 79 ~ 80


소설은 '스노우 엔젤'이라는 합성 마약물질을 유통하는 자를 잡기 위해 거대한 음모 속으로 뛰어들어가게 되는데......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저자는 긴박한 상황 속 진자이 아키라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 사건의 경우는 소설로 끝나지 않을, 우리 현실 속에서도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기에 더없이 몰입하면서 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약'이라는 물질.

그 기준이 참으로 모호하였습니다.

 


환자에겐 통증을 완화시켜주는 '약'임에 동시에 쾌락을 추구하는 '마약' 사이.

술, 담배, 마약......

무슨 기준일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함이 있었습니다.


"약물을 합법화하면 어둠의 자금원을 잃은 마피아가 힘을 잃고 약물 시장이 축소될 것이라는 논리죠. 요컨대 현재 위법인 약물을 담배나 술처럼 해금해서 국가가 관리하여 세금을 거둬들이겠다는 심보인데......"

...

"그런데 약물을 합법화하면 이번엔 세수를 늘리기 위해 매상을 올리려 들 테니까, 담배나 술과 마찬가지로 사회에 정착해버릴 거란 말이죠. 요컨대 국가란 놈은, 어떤 국가든 국민의 건강보다는 돈이 중요한 거예요."

...

"국가가 진심으로 약물을 박멸하려는 의지가 없으니까 약물은 사라지지 않아요. 뭐, 덕택에 우리가 밥 먹고 사는 거지만." - page 190 ~ 191


그러고보면 '카지노' 설치 및 운영도 이와 같았습니다.

법률에선 금지되었지만 막상 '도박'사업은 인정하는 국가의 모습.

국가가 하면 합법, 조직단이 하면 불법.

무슨 말을 해야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이야기가 저에겐 큰 인상을 주었습니다.

 


법률이 범죄자에게 무른 이유.

그 '용서'의 의미가 참으로 잔혹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소설의 배경은 '도쿄 올림픽' 개최를 앞둔 일본의 모습과 암알리 마약 거래하는 이들의 모습이 마치 '달'의 모습처럼 느껴졌습니다.

빛으로 밝혀진 부분도, 가려진 부분도 결국은 '달'이라는 것이 참으로 씁쓸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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