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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를 걷다 - 르퓌 순례길에서 만난 생의 인문학
이재형 지음 / 문예출판사 / 2020년 7월
평점 :
절판
이번 여름은 여전히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기나긴 장마로 인해 뜻하지 않게 '방콕'이 되었습니다.
그나마 '여름'이 좋았던 이유는 '휴가'가 있어 그동안 즐기지 못했던 여행이라든지 쉼을 취할 여유가 있다는 것이었는데......
휴가인 듯 휴가 아닌 휴가같은 요즘.
마음만이라도 어디론가 훌쩍 떠나보내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이 길 위에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프랑스 르퓌에서 출발해 생장피에드포르에서 끝나는 750킬로미터의 길. 르퓌 순례길은 산티아고 순례길 중 스페인에 이르기 전 프랑스를 통과하는 여정으로, 그 역사성과 정취로 전 세계 순례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코스다.
가벼운 마음으로 그와 르퓌 순례길을 가만히 걸어가 봅니다.
『프랑스를 걷다』

르퓌에 도착하면 순례자는 우선 카드를 구입하고 순례자를 위한 미사와 축성식에 참석해야 합니다.
검은색 마리아 상 앞에 멀고도 먼 여행을 떠나는 자신들이 무사히 마치기를 간절히 바라며......
그러고나면 또 하나의 마리아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마리아상'이라고 불리는 해발 132미터의 바위산 꼭대기에 서 있어 르퓌 어디에서나 잘 보이는 이 마리아상.
마리아의 자비로움 앞에 앞으로 펼쳐질 순례길이 그리 힘겹거나 외롭지는 않을 듯 합니다.
순례길 위엔 '평등'이 있었습니다.
골고루 섞여 있는 돌의 세계처럼, 순례자의 세계에도 차별과 배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나라 사람인지도 중요하지 않고,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중요하지 않으며, 가난한지 부유한지도 중요하지 않다. 다만, 길을 묵묵히 걸을 뿐이다. 순례자의 세계는 완전히 평등한 세계다. - page 46
아마도 우리가 이 길을 걷는 이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묵묵히 걷는 이 길 위엔 비바람에 마모된 돌 십자가들과 순례자들의 성인인 야고보 성인이 순례자들의 발걸음에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마치 우리에게 자신을 희생하여 길을 비추어주듯이 말입니다.
이 길 위 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1869년 10월 오방에서 일어난 학살 사건.
오방 탄광에서 캐낸 석탄의 조악한 품질에서 비롯한 광부들의 낮은 임금, 경영진에 대한 불신, 1860년에 체결된 프랑스와 영국 간의 자유무역협정, 그리고 다른 지역에서 일어난 파업 등 여러 요인이 합쳐져 결국 일곱 살짜리 어린아이와 두 여성을 포함한 사망자 열네 명과 부상자 스물두 명(그중 세 명은 결국 사망했다)을 낸 비극적인 사건.
이 사건은 우리의 사건과도 연관되어 있었기에 인상적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980년 4월 21일부터 24일까지 강원도 정선군에 있는 국내 최대의 동원탄좌사북광업소에서 탄광 노동자들과 그 가족 6000여 명이 회사 측의 착취와 어용 노조, 임금 소폭 인상에 항의한 시위, 흔히 사북 탄광 노동 항쟁, 사북항쟁.
하지만 더 안타까운건 대부분의 언론이 무슨 이유로 이런 사태가 발생했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광부들을 술취한 폭도로 몰아 그들의 폭력성만 부각하였다는 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광부들의 절규는 이번에는 자본에 의해 파묻히고 말았다. 광부들의 도시가 카지노 도시로 변해버린 것이다. 사북항쟁은 제주 4.3사건이나 광주 5.18민주화운동, 세월호사건처럼 사회적 참사로 기억되고 재평가되어 명예를 회복해야 하는 사건이다. 사북항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 page 174
그들의 절규가 헛되이 흩어지지 않기를 이 걸음 위에 발자국을 남겨봅니다.
아마 저자가 일러주고 싶었던 '순례'의 의미를 일러주는 건 이 하나의 사진이 아닐까 싶습니다.

순례란 '새롭게 태어남'이다.- page 342
순례의 길은 참으로 고독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길이, 그 길을 걷고 있는 이들이 경의로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순례자들은 연대, 나눔, 공존, 소통, 배려 등의 가치들을 배우거나 실천함으로써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날 것이다. 고래가 배 속에 가두었다가 뱉어낸 요나처럼,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에서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존재가 되어 푸른색 옷을 입고 미래를 향해 당당히 걸어가는 아델처럼 말이다. 순례자는 또 다른 나, 새로운 나가 되어 더 넓은 곳, 더 높은 세계로 걸어나갈 것이다. - page 342
나를 잃어버리게 될 때 또다시 이 책과 함께 순례의 길을 떠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