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쩌다 정신과 의사 - 뇌부자들 김지용의 은밀하고 솔직한 진짜 정신과 이야기
김지용 지음 / 심심 / 2020년 7월
평점 :
예전까지만 하더라도 '정신과'에 대해 약간의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매체에서 그려지는 모습은 환자 양 옆엔 그를 제압하는 이가 존재하고 병동에는 환자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모습 등 그리 다가갈 수 없는, 그래서 그 문턱은 꽤 높았습니다.
사실 그들은 외적인 상처가 아닌 내적인 상처를 지닌 것 뿐인데 말입니다.
육안으로 보이지 않기에 더 그를 이해하고 감싸주어야함을 이제서야 깨닫기 시작하였습니다.
여기 아직도 굳건히 남아 있는 정신과의 '높은' 문턱을 낮추고자 그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어쩌다 정신과 의사』

그의 장래희망은 원래 고고학자였습니다.
하지만 자신은 정작 역사학자이신 아버지께서 이미 지나간 과거를 파헤치기보단 현재 사회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설득 하에 어쩌다보니 의대에 합격하게 됩니다.
자신이 그리던 미래가 아니었기에 그의 의대 생활은 적응하기 쉽지 않았고, 적응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두 번의 유급.
더 이상 누구도 탓할 수 없고 '명문대 의대생'이라는 타이틀을 내려놓는 것도 두려웠기에 그때부터 조금씩 학점도 올리면서 입학한 지 4년만에 어쩌다 의사가 됩니다.
세부 전공을 선택할 때, 정신과를 선택한 것은 아마도 운명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신과 의사는 과학자 사이의 마법사 같았다. 과학과 마법을 동시에 배우는 마법사들.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은 학문이라 어찌 보면 모호하지만, 그래서 재미있어 보였다. 심리적인 이유로 눈이 멀고 다리가 마비될 수 있다니. 그리고 그걸 상담으로 치료해낸 사람이 있다니. 진단을 내리는 과정도 복잡했지만, 같은 진단명이라도 사람마다 발병 원인, 나타나는 증상, 심리, 치료 방법까지 모두 달랐다. 질병이 아닌 그 사람의 마음을, 인생을 더 넓게 바라봐야 했다. 계속해서 다른 사람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게 될 것이니, 이 길이라면 질리지 않을 것 같았다. - page 33 ~ 34
마치 발굴 현장의 고고학자처럼 사람의 마음속을 아주 조심스럽게 파헤치는, 그렇게 찾아낸 유물처럼 잊힌 채 묻혀 있던 기억과 감정을 현재를 이해하는 결정적 단서가 되기에 닮은 듯한 정신과에 조금씩 매력을 느끼며 빠져들기 시작합니다.
저 역시도 궁금했습니다.
한 두번은 '힘들다' '우울하다'라는 말을 들어줄 수 있지만 이 빈도가 잦을수록 듣는 이도 힘들고 우울해질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천상 '정신과 의사'였습니다.
아니, 모든 '정신과 의사'들이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혀 힘들지 않다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힘들어도 좋다. 흥미를 느끼고, 사람들을 돕는 일이란 보람도 느끼며, 괜찮다 할 수 있는 수입까지 따라오는데, 어찌 힘들기만 할까? 좋은 직업을 택했다는 생각이 문득 들 때가 있다. 그 빈도가 못해먹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보다 잦다.
누군가를 평생 괴롭혀온 마음속 상처나 문제가 점점 줄어드는 과정을 바라보는 것은 진심으로 뿌듯한 일이다. 간혹 누군가를 괴롭히던 문제가 완전히 사라진 경우엔 내 일같이 기분 좋다. 짧게는 몇 개월부터 길게는 몇 년이 걸리곤 하지만, 처음 찾아왔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밝은 표정으로 앉아 있는 그의 모습 자체가 내게 기쁨을 준다. 바뀐 마음으로 새로운 삶을 만들어 나가는 모습이 반갑다. - page 103 ~ 104
여느 과와는 달리 환자는 속 깊은 이야기를 의사에게 털어놓기에 그들의 관계가 친밀할 것 같지만 나름의 선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곁에서 같이 걸어가고 있지만, 분명히 주체는 내가 아닌 그들이다. 나는 인생이란 여행의 가이드일 뿐. 무리하게 개입해서도 안 되며, 지나친 책임감을 가지는 것도 분수에 맞지 않다. 삶의 방식을 내가 결정해줘서는 안 된다. 그들의 결정을 지지하거나 만류할 수는 있지만, 결국 선택은 스스로 내리도록 해야 한다. 치료자의 과도한 책임감과 역할을 넘어선 행동은 그들을 어린아이처럼 의존하는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 그들에게는 즐겁게 만나고, 울어주고, 서로를 안아줄 그런 사람이 필요하지만, 내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사람을 진료실 바깥의 현실 세계에서 찾는 것이 결국 그들에게 필요한 일이고 그들이 해야만 하는 일이니까. - page 129
이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정신과 의사는 그들의 인생이란 여행의 가이드라는 말이......
요즘들어 사람들이 마음의 상처가 많은 이유는 아마도 '완벽해지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완벽한 부모님.
완벽한 친구.
완벽한 연인.
완벽한 배우자.
그리고 완벽한 자신.
그래서 저자는 우리에게 이런 처방을 내려주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대상'이 아니라 '충분히 좋은 대상'이다. '충분히 좋은'이란 말을 내 방식대로 더 풀어서 이야기해보자면 '군데군데 불만족스럽고 안 맞는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은'이다. - page 208
'충분히 좋아도' 된다는 이 말이 저에게도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저자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드라마 <영혼 수선공>의 이시준 선생님이 떠올랐습니다.
정신과 의사인 이시준 선생님.
그는 다른 의사와는 달리 환자에게 자신이 먼저 한 발자국 다가가 손을 내밀었고 환자의 '영혼'을 수리하는 자신을 '수선공'이라 표현하였습니다.
그가 전한 대사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모두 아픈 사람들입니다.
아직 진단을 받지 못했을 뿐이죠.
정신질환은요, 개인의 특성이 아니라 상태입니다.
상태라는 것은 내가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누구든 상태가 좋아지면 병도 사라진다는 거죠.
그래서 마음의 안정이 가장 좋은 명약인 거구요.
아마 저자가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상처는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다만 그 상처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다시 그 상처를 바라봅니다.
그 상처는 '치료'가 아닌 '치유'하면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된, 잔잔한 울림이 있던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