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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전자
조경아 지음 / 나무옆의자 / 2020년 7월
평점 :
가끔 이런 뉴스를 접하면 답답하곤 합니다.
멀쩡히 피해자는 존재하는데 피의자가 없는 경우.
(서로 책임을 회피하는 경우)
피의자의 신분이 높을수록 범죄의 경중이 낮아지는 경우.
특히나 이번 성범죄 사건의 경우엔 법의 처벌이 너무나 미비했기에 더 울분이 터지곤 하였습니다.
우리에겐 '법'이 있기에 그 원칙에 따른다고는 하지만 참......
그래서 이 책의 문구가 눈에 띄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상처 받은 사람들은 어쩌면 복수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끝을 맺고 싶었던 거 같아. 어떻게든."
갑갑한 속을 시원하게 뚫어줄 유쾌하고도 가슴 짠한 복수 이야기가 펼쳐질 이 소설.
『복수전자』

"저기요. 저 사람이 김밥집에서 난동 부리는 걸 제가 똑똑히 봤다니까요?" - page 10
경찰서 안.
보미의 입장에선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피해자 아주머니를 대신해 피의자의 정강이를 걷어차고, 팔도 비틀었고, 신고까지 했는데 오히려 남자는 보미에게 약간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고 피해자 아주머니는 차 순경과 화목하고 다정하게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입니다.
"기성우 씨 일로 합의하러 오신 분이시죠?"
"죄송합니다. 제가 좀 늦었습니다."
"아이고, 아닙니다. 이리 와서 좀 앉으세요." - page 12
30대로 보이는 양복 입은 남자가 피의자 기성우에게 꾸벅 인사하고는 피해자가 작성한 피해 물품 목록을 제대로 훑어보지도 않고 바로 합의를 일사천리로 진행하는 것입니다.
도저히 가만 있을 수 없어 보미는 한 마디 합니다.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질 않아서요. 도대체 저 사람 누구예요? 뭐 국회의원 아들쯤이라도 돼요? 진짜 국회의원 아들이라고 해도 그렇지,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 page 13
그러자 차 순경은 오히려 보미에게 기성우 씨를 때린 폭행죄로 잡힐 수 있다는, 실로 자신이 우스운 꼴이 되어버립니다.
합의 절차가 마무리되고 나니 차 순경이 조심스레 보미에게 귀띔해 줍니다.
"구체적인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저 사람 자기 아버지한테 피해 입은 사람들한테 대신 사죄하고, 피해 보상금이라도 챙겨주고 싶어서 저런다는 얘기가 있어." - page 15
경찰서를 나오고 보미와 기성우는 서로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아버지한테 복수를 하고 싶은 거예요? 아니면, 자학을 하고 싶은 거예요?"
...
"왜요? 내가 그렇게 이상해 보여요?"
"처음엔 이상했는데, 지금은 좀 불쌍해 보여서."
"뭐가 불쌍한데요?"
"부모님을 증오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어느 정도 짐작은 하거든요. 제 주변에 그런 분들이 꽤 있어서. 그런 부모한테 복수까지 하려면 저렇게 미쳐야 되나 싶기도 하고." - page 21
그리고는 기성우에게 명함 하나를 건네줍니다.
명함에 적힌 이름.
복. 수. 전. 자. - page 23
명함에 있어야하는 연락처는 없고 QR코드만 덩그러니 그려져 있었습니다.
스캔을 하니 '복수전자'라는 모바일게임 설치 페이지로 넘어가고 호기심에 게임을 시작하게 됩니다.
50단계의 복수게임을 마스터하고 나면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질문지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에 성실히 답을 하고나면 자신이 원하던 '복수'를 의뢰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습니다.
복수의 성공률은 99퍼센트.
그 복수를 해 주는 곳이 바로 복수전자였습니다.
그곳엔 전자제품 수리와 시스템을 관리하는 요셉, 붕어빵을 만들면서 비상한 기억력을 지닌 도팔, 총괄 그들을 관리하는 테오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일손을 돕는 보미와 복수전자를 통해 도움을 받아 자신의 위치에서 다른 사람의 복수를 지원하는, 재능기부를 하는 이들이 함께 억울한 사람들의 복수를 대신해주고 있었습니다.
기성우 역시도 국회의원인 아버지에게 복수를 결심하게 되면서 복수전자에 복수를 의뢰하는 이들의 사연과 그 과정에 참여하면서 우리에게 진정 '복수'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일러주고 있었습니다.
소설 속에서는 끊임없이 '복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결국 '복수'의 화살의 촉은 자신을 향해 있다는 사실을 소설에서는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이런다고 해서 내 딸 희연이가 다시 살아 돌아오진 않겠지만, 지금이라도 잘못된 것은 바로잡고 싶었다. 그렇게 나를 향한 나의 복수는 거침없이 이어졌다. 내 복수의 끝이 어디까지일지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이렇게라도 아주 작은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내 복수는 성공한 것 아닐까? 내게 닥친 불행이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어쩌면 그 마음이 복수전자 사람들이 바라던 진정한 복수일지도 모르겠다. - page 151
차가운 복수의 결말은 그 냉기가 참으로 오래 남아 허망하고 싸늘하였습니다.
그건 아마도 완벽한 복수라는 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지......
그럼에도 이들이 행한 행위는 견고한 바위에 미약한 실금이라도 남기며 또 다른 희생자를 막았다는 것이, 그리고 새로운 체계를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위안을 삼는 것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에 잠겨봅니다.
그들의 일을 그저 사회 밖으로 밀려난 루저들의 한풀이라 치부했을 테니까. 그렇게 하찮고 미약한 것들이 힘을 합쳐 철옹성 같은 자신의 존재를 무너뜨릴 수 있을 거라곤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아버지는 그런 하찮은 존재들에게 자신이 무너졌다는 사실이 가장 뼈아플지도 모르겠다. - page 2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