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의 타자기 ㅣ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황희 지음 / 들녘 / 2020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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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게 된 건 소설가 '진산'씨의 추천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학대받는 어머니, 장애를 가진 딸이라는 음울한 서사를 몇 겹의 액자틀 안에 담아낸 이야기. 다중액자 구성이라는 복잡한 구조를 취했으면서도 계속 읽게 만드는 치열한 힘이 장점이다.

_진산, 소설가


힘 없는 이들,

조금은 갑갑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건 '픽션'이라고 쓰고 '논픽션'이라 받아들일 수 있는, 우리 주변 어디선가에서 일어나고 있을 이야기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읽고 싶었던 이유.


한때 누군가의 꿈이었으나 현실이 되지 못했던 '타자기'를 매체로

성장과 희망을 노래하는 아름답고 독특하며 기발한 미스터리 판타지!!


바로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이 그려나갈 성장과 희망에 발맞추어 나아가보려 합니다.


『기린의 타자기』

 


사람들이 울부짖고 얼굴에 피를 흘리는 사람들아 보였다가 다시 뿌연 연기속으로 사라지는......

불길과 시커먼 연기를 토해내며 지하철 안의 사람들은 저마다 비명을 지르며 불길과 반대쪽으로 물러나고 있었습니다.

그 속에 느닷없이 나타난 한 여자.

창백한 피부에 검은색 뿔테 안경을 착용하고, 바짓단이 너덜너덜해진 낡은 청바지에, 해진 먹색 라운드넷 스웨터를 입고, 헝글어진 머리와 맨발로 아이, 노인, 여자 순으로 지하철 안에서 안고 사라지길 반복합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한 남자.

화재 현장에서도 거의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쥐고 끔찍한 현장을 촬영하고 있었는데 그 여자를 촬영하려던 찰나.

그녀는 그의 휴대폰을 낚아채 던진 후 그가 지하철을 빠져나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어디에도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순간이동 능력을 가진 그녀의 이름은 '류지하'.

그녀는 이든의 격투기 도장 앞에 기억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습니다.

자신이 어떤 과거를 가지고 있는지, 형제는 있는지, 부모는 어떤 사람인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 채......

청각언어장애를 가진 그녀는 타자기로 쓴 소설을 가지고 출판사를 다니는, 작가가 꿈입니다.


그리고 또 한 명.

시집과 친정이 돈으로 얽혀 그녀 혼자만 희생하면 모두가 행복해지는 이 삶을 살아가는 , 지하의 엄마 '나서영'.

인간 이하의 취급과 폭력을 행사하는 이 집에서 그녀는 오늘도 영문 모른 채 지하 와인창고로 쫓기고 CCTV로 감시를 받게 됩니다.


그러다 입주도우미가 몰래 전해준 소포.

발신인은 없고 수신인에 자신의 이름 석 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소포를 찢자 하얀 배경에 무엇인가로부터 달아나는 듯한 여자의 뒷모습이 그려진 한 권의 책이 나왔습니다.

'조용한 세상'

작가의 이름을 보고 묘한 감정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자신의 딸의 이름과 같은 '류지하'.

가출한 지 6년째 소식도 모르고 지냈었는데 이렇게 자신의 삶에 주인이 되어 멋진 작가가 된 딸의 모습에 기쁜 것도 잠시.

첫 페이지에 적힌 헌사를 보고 충격을 받게 됩니다.


'남편이 던진 타자기에 얼굴이 짓이겨져 스스로 생을 마감한 나의 어머니에게.' - page 41


섭섭함과 불쾌함 그리고 내용에 대한 강한 호기심이 동시에 치밀어 나영은 시어머니와 남편의 시선을 피해 책을 읽게 됩니다.


지하는 FBI에 쫓기는 신세였고 자신의 능력인 순간이동을 하지만 그 능력의 부작용으로 점점 자신의 몸은 횡폐해져 갑니다.

설상가상으로 더이상은 순간이동 능력을 쓸 수 없는 상황.

그리고 잃어버린 기억이 하나둘 문을 열고 나오면서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그래서 잊고 싶었던 현실이 다가오는데......


서영은 '조용한 세상'을 읽으면서 등장하는 이들은 자신의 가족들이었고 그 속에 자신의 모습을, 그동안 몰랐던, 아니 자신의 삶이 힘겨웠기에 외면하고팠던 딸 지하의 심정을 알게 됩니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하면서도 안주했던 현실.

하지만 그런 서영에게도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고......


서영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론 답답하였습니다.

자신의 부인을 폭행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는, 그러면서도 사회적 시선 앞에선 현직 시의원이자 대형교회의 목사인 남편.

돈의 인질로 자신의 딸을 불행에 빠뜨리는 친정.

그리고 자신을 벌레보듯하는 시댁.

인정도 받지 못하고 폭력을 당하면서도 그 집을 나가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

자신의 아이들 때문이었습니다.

하아......


또한 서영에겐 '산후우울증'이 있었습니다.

그로인해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르고 그 죄를 평생 가슴에 짊어지게 됩니다.


아무리 엄마라고 해도 자식의 생명을 자기 마음대로 할 권리는 없다. 그 엄중한 진리를 그땐 깨닫지 못했다. 그저 내 새끼는 내가 거둬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서영은 멍하니 성경책을 내려놨다. 나는 대체 어떤 인간인가.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한 생명의 가능성을 말살하려 했던 나는 대체 어떤 엄마인가. 지하에게 속죄하고 싶었다. - page 188


이는 절대 용서받을 수도 용서할 수도 없음을 지금의 아동 학대 사건에 빗대 일러주고 싶었습니다.


지하는 엄마와 달랐습니다.

헤르만 세헤의 책 『데미안』에 나오는 유명한 문장처럼 말입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 page 300


끔찍한 현실 앞에서도 나아가는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 멋졌습니다.

​

 


자신에게 처해진 상황을 그저 운명처럼 받아들이기만 하였던 서영.

자신의 상황을 벗어나 새로운 운명을 개척했던 지하.

이 '운명'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

 


지금 이 순간.

주어진 운명이든 새로 만들어가는 운명이든 이 모든 것이 결국 '나'를 이룬 것이라고 그들은 우리에게 전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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