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 탐정 이상
김재희 지음 / 시공사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암호와 추리에 능한 천재 시인 이상과

생계형 소설가 구보의 경성 활약극


1930년 경성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낭만 미스터리라는 이 소설.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로 이 소설.

매력적인 이끌림이 있었습니다.


경성 탐정 이상

 


홑적삼 위로 와이셔츠를 갖춰 입고, 그 위에 조끼와 서양식 코트를 입고 낡은 구두로 발걸음을 옮겨보는 그, 구보.

좁은 골목을 몇 번 더 돌아 도착한 건물 안 사무실은 한개해 보입니다.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문간을 지키고 있다가 마침내 심부름꾼으로 보이는 소년을 붙잡고 말을 건넵니다.


"회의실이 어디입니까? 염상섭 선생님을 뵈러 왔습니다." - page 11


텅 빈 편집부 전용 회의실에 겸연쩍게 앉아있는 구보.

그러다 회의실 문이 벌컥 열리면서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이 물결치듯 안으로 쑥 들어옵니다.

기묘한 느낌의 이 사내.


"여기가 구인회가 모이는 곳이오?"

구보는 고개를 숙이며 안경 위로 비죽 나온 앞머리를 슬쩍 넘겼다.

"저, 저는 박태원이라고 합니다. 구보라고 편하게 부르십시오. 선생님은 누구십니까?"

구보가 먼저 고개를 숙이고 인사했다. 처음 보는 사람이나 일본인 순사 앞, 혹은 여러 사람 앞에 나설 때에는 유난히 긴장하여 말을 더듬는 버릇이 있었다.

"나는 김해경이라 하오. 남들은 이상이라고 합니다만." - page 13


다시 회의실 문이 삐걱거리며 열립니다.

이마에 커다란 혹, 둥글넓적한 얼굴에 사람 좋은 미소, 당당한 풍채에 곧잘 어울리는 조선 한복을 입은 그, 문단의 대선배 염상섭이었습니다.

구보는 얼른 일어나 반듯하게 인사를 올리지만 상은 파이프 연통에 불을 붙이고는 느긋하게 연기를 뿜고 앉아있습니다.


"어, 혹부리 선배, 우리를 부른 이유는 뭐요? 구인회 노땅들한테 인사치레나 하자고 부른 건 아닐 테고." - page 17


"이 사건을 해결하게."

상섭은 책상에 놓인 누런 종이봉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기한은 1주일 주지. 이 문제의 단서를 포착해 결정적인 해결법을 제시하면 자네들을 정식 구인회 회원으로 받아주겠네." - page 19


그렇게 천재 시인 이상(본명 : 김해경)과 생계형 소설가 구보(본명 : 박태원) 두 문인의 사건 풀이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있노라면 영국의 '셜록 홈즈'와 '왓슨 박사'가 떠오르게 됩니다.

사건을 머릿속으로 그리면서 뛰어다니는 이상의 모습은 홈즈의 모습이었고 그의 든든한 조력자 구보의 모습은 왓슨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주어지는 사건은 종로경찰서 '기무라 형사'가 해결하기 전에 그들이 먼저 범인을 잡게 됩니다.

범인을 추궁할 땐 홈즈가 했던 것처럼 사건이 일어나게 된 계기에서부터 그가 범인일 수밖에 없음을 증명하였기에 해결될 땐 통쾌감이 들곤 하였습니다.


아무래도 배경이 1930년 일제시대 경성의 모습이라 그런지 이런 이야기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구보는 몸을 움츠렸다. 사람의 잔혹한 마음에 몸서리가 쳐지는 것인지 아니면 동장군이 기승을 부려 한기가 느껴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인간의 마음이 한겨울 혹한보다 더욱 가혹하고 독한 것일지도 몰랐다. 암울한 현실 속에 독립군이 되어 인생을 걸거나, 사상이 깃든 문학을 발표해 독립심을 고취하든가 아니면 낭만시를 지어 새로운 희망을 일깨워준다든가 하는 좋은 길을 외면하고 인륜에 위배되는 범죄를 벌인 그들에게 일말의 동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 page 81


"상이, 그림에 담긴 메시지가 만약에 일본에 치명적인 약점을 안길 수 있는 것이라면 우리라도 나서서 그림을 강제적으로 빼앗아 독립투사나 상하이 임시정부 국내 연락책에게라도 넘겨야 옳은 것이 아닌가?"

상은 고개를 저었다.

"그림은 그림으로, 문화재로 남겨져야 하는 것이 옳다네. 일본 황실에서 나온 것이니 그리로 돌아가는 게 맞다고 보네. 다만 간송 선생의 애타는 심정도 이해는 가네. 언젠가 최북의 <미인도>도 조선에 돌아올 날이 있을 걸세." - page 264




사건들마다 그가 전한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메시지들.


"이제 그만 돌아가게. 이곳은 바깥보다 더욱 어둠에 민감한 곳일세. 땅속이라 낮과 밤을 모를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일세. 밖의 어둠보다 잔인한 밤이 찾아오는 곳이 이곳일세." - page 162 ~ 163


진실은 아무도 모르네. 추리보다 사건수사보다 더 밝히기 어려운 것이 바로 진실이지. - page 423


사건들은 하나의 실타래로 얽혀있었습니다. 

그 중심엔......

​(이는 소설을 읽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숨가쁘게 달려오다보니 어느새 책의 마지막을 읽고 있었습니다.

이 흐름이 끊기기 전에 다음 권을 읽어야겠습니다.


영국에 셜록홈즈와 왓슨 박사가 있다면!

우리에겐 이상과 구보가 있습니다!


또다시 경성을 누비고 다닐 그들과 동행하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