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 동서양을 호령한 예술의 칭기즈칸 클래식 클라우드 18
남정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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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와 관련된 책들은 시중에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특히나 우리의 예술가보다는 서양의 예술가들에 대한 책들을 더 많이 접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들이 이루어낸 업적이 대단하다는 것은 익히 알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도 그들보다 더 뛰어난 업적을 지닌 이들이 있기에 종종 우리의 예술가들과 관련된 책이 보이면 버선발로 다가가곤 합니다.


아마 이 분에 대해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비디오아트'

벌써 여기저기에서 '아! 그 분!'이라고 외칠 것입니다.


이름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장르가 된 예술가!

미디어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며

예술의 역사를 새로 쓴 현대예술의 혁명가, 백남준!


백남준

 


그의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저에겐 의아하면서도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텔레비젼이 겹겹이 쌓여있고 저마다 다른 영상을 보여주는데......

솔직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고 사람들은 왜 이 작품에 큰 찬사를 보내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아마 그에 대해 잘 몰랐기에 '무지'에서 그 의미를 '이해'하리라는 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었습니다.

그러다 이번에 그에 대해 알 수 있는 책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이제야 그에 대해 '이해'를 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술 작품에는 예외 없이 작가의 철학적 사고와 인생관 그리고 체험 등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법이다. 따라서 작가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작품에 담긴 참된 의미를 알아채기 어렵다. 그래서 작품을 감상하는 데 그 작가가 어떤 삶의 궤적을 그렸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page 15


한국 최초의 재벌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거부였던 아버지 밑에서 막내아들로 태어난 그는 경제적으로 여유로웠기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홍콩과 일본과 독일로 유학을 갈 수 있었고, 그곳에서 쌓은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예술가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나 그는 잔병치레가 많은 몸이 약한 아이였기에 밖에 나가 마음껏 뛰어놀 수 없었기에 어릴 적부터 책을 가까이 하였고 그의 큰누이인 백희득 덕분에 음악에 대한 재능을 얻게 되면서 그의 비디오아트에 적합한 예술가로써의 자리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의 집이 부유하였다고 그의 삶이 평탄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전화에서 벗어나기 위해 떠났던 고국에 다시 돌아오기까지 34년에 걸친 '방랑자의 삶'엔 불운의 시작을 알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예술적 재능은 두각이 드러날 수밖에 없었고 특히나 그의 인생의 커다란 전기를 맞이하게 된 건 '케이지'와의 만남으로부터였습니다.


1957년과 1958년에 열린 '다름슈타트 국제 신음악 여름 강좌'에서 독일 작곡가이자 전자음악의 개척자인 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과 케이지를 만난 것이다. 인생의 갈림길에 놓여 있을 때 누구를 만났는지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고 이야기한다. 새로운 사상을 통해 세상을 보는 관점이 변하기 때문이다. 백남준은 케이지를 만남으로써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 page 98 ~ 99


케이지와의 만남을 통해 그는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에 대해 깨달을 수 있게 되고 이는 그의 작품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나 그의 <살아 있는 조각을 위한 TV 브라> 작품이 전한 의미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왔습니다.


인간의 본능을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일반적으로 수치스러운 것으로 통하는 나체, 배설, 성관계 모두가 부끄러움을 느낄 일이 아님을 알 것이다. 옷을 벗으면 남녀의 몸이 그렇게 생겼음을 누구나 안다. 배설을 하지 않는 인간은 없으며 우리 모두 남녀 간의 성관계로 태어난 존재다. 왜 우리는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본질적 형태와 행위를 감추고 부끄러워해야 하는가. 참으로 모순된 생각이기에 많은 위대한 사상가가 이에 대한 고정관념을 초개처럼 내던져버렸다. 무어먼과 백남준 역시 이처럼 가식적인 생각을 진즉에 버렸을 것이 틀림없었다. - page 161


그의 작품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밖에 없는 이유.

이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백남준은 모름지기 예술가란 미래를 사유할 수 있어야 하며, 소통의 기획자로서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 page 185


백남준!

그가 대한민국의 예술가라는 점이 너무나 자랑스러웠습니다.

특히나 '예술'이란 영역에서 '비디오아트'란 분야가 '백남준' 이 세 글자의 이름인 그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그가 예술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이제는 작품을 바라보며 가슴으로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향해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담은 작품들 중에서도 마지막 작품 <엄마>는 그가 세상에 전하고자하는 이야기가 아닌, 자신이 자신에게 전하고자했던 메시지는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삶의 마지막을 직감한 듯 어디에도 보이지 않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나 애잔한 느낌을 주었던 이 작품이 그의 기나길었던 예술가로써의 여정의 마무리를,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전하는 듯하였기에 다른 작품들보다 언젠가 이 작품만은 꼭 눈으로 맞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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