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채에 미쳐서
아사이 마카테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제목이 독특했습니다.

그런데 가만보니......

이 소설!

뭔가 심상치않았습니다.


무려 50세의 나이에 늦깎이 데뷔하여

일본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문학상인 나오키 상과

전국 서점원이 뽑은 시대소설 대상을 동시에 석권한

작가의 '야채애호독점타파' 러브 스토리!


무심코 제목에 이끌려 책을 받아들었지만 읽으면서 웃음과 감동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던......

엉뚱하면서도 순수했던 이들이 펼치는 러브 스토리.

『야채에 미쳐서』

 


지사토는 나가야 하수구 덮개 널판을 꽝꽝 밟으며 울화통을 깡그리 터뜨리려는 듯 악을 썼다.

"이놈의 오사카, 진짜 지긋지긋해!" - page 9


오사카에 부임한 남편을 따라 내려온 에도 토박이 '지사토'.

하지만 그의 남편은 불의의 사고로 떠나게 되고 시댁에서는 요절한 장남의 처를 부양할 만큼 살림이 넉넉하지 않으니 인연을 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친정이라고 아버지 대부터 해 오던 만주가게에 찾아갔더니 그 가게를 운영하는 오빠의 처 올케라는 사람은 바쁘다는 핑계로 겨우 한나절 만에 싫은 내색을 비추기에 그녀는 굶어죽으면 죽었지 그런 올케에게는 손을 벌리지 않겠다고 작심하며 오사카에 살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일하는 곳마다 오래 일하지 못하고 짤리기 일쑤.

이번 습자소에서의 강사일 역시도 결국 짤리게 됩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녀의 쪽방이 도둑맞게 되고 하필이면 그날이 집세 내는 날이라니......


망연자실에 힘겹게 버티고 있던 그녀에게 구세주처럼 등장한 이가 있었습니다.

그의 첫인상은......

하지만 이 사내는 체포된 빈집털이범 같은 인상이다. 연령은 지사토와 비슷한 스물 두엇일 텐데, 옷자락은 걷어 올려 허리춤에 지르고, 그 밑으로 연두색 모모히키를 입은 다리를 아무렇게나 뻗은 채 판자벽에 기대어 주저앉아 있다. 게다가 수건 틈새로 손가락을 넣어 덥수룩한 수염을 벅벅 긁기 시작했다. 아, 너저분해, 입가에서 뭐가 떨어졌어. 아마 먹다 붙은 밥알 같다. 세상에. - page 22

그런 그를 향해 관리인은 자세를 바로하고 허리를 구부리며 말합니다.

"이쪽은 집주인 가와치야의 큰도련님 세이타로 씨." - page 22


그동안 쌓였던 울분이 그의 앞에서 터질 줄이야!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며 오사카엔 인정이 없다고 하니 그 말을 들은 지사토는 그녀에게 제안을 합니다.

"일할 데가 없으면 우리 쪽은 어때? 여자 일손들이 결혼한다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일손이 딸린다고 걱정하는 소리를 얼마 전에 들은 것 같은데." - page 26


이튿날 아침 지사토는 관리인과 함께 오사카에서도 유명한 상점만 모여 있는 기타센바의 이마바시 지역의 덴마 청과물시장 상인회 집안의 마나님 시녀로의 일을 하게 됩니다.

시녀로서 한 사람 몫을 해내야 급료를 받을 수 있다는 말에 그녀는 조심스레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물어보니 이삼 년쯤이라는......

세상에! 그렇게 오랫동안 이 부인을 모신다고? 그건 무리야. 방금 전의 각오는 어디로 갔는지 이대로 꼬리를 감추고 내빼 버리고 싶었다. 아니, 아니, 쨔우쨔우, 하며 지사토는 고개를 저었다. 빈손으로 야반도주를 한다고 해도 에도는 고사하고 미노의 남편 무덤에도 가 보지 못할 것이다.

지사도는 주눅이 들려고 하는 자신을 떨쳐 세우려는 듯 허리를 펴며 전정가위를 들고 있는 마나님을 보았다. - page 39  ~ 40


허당일 듯한 세이타로는 야채를 먹는 순간 산지를 맞출 만큼 해박하여 사람들이 "야채에 미쳤다"고 할 정도로 야채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본 지사토는 어느샌가 조금씩 끌리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야채시장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그의 모습에서 저 역시도 너무나 매력적으로 보였는데......

과연 당찬 에도 여자 지사토와 얼간이 오사카 남자 세이타로 사이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소설 속에서는 의미심장한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채소가 이쪽에서 저쪽으로 움직이는 게 전부면서 이렇게들 우쭐거리시지. 구전을 떼어먹는 것만이 장사라면 거기엔 실이 없소. 실이 없는데 권리만 휘둘러 농부들 눈에 피눈물을 나게 만들면 조만간 여기저기서 부패가 일어날 거요. 이렇게 단순한 사실을 왜 모른단 말이오. 나보다 지혜가 깊은 분들이 이렇게 모였는데." - page 222


"다들 잘 들어. 이런 것이 가와치야의 채소라고 당당하게 내놓을 만한 물건이 아니라면 절대로 팔면 안 된다. 당장의 이문에 눈이 멀어 그런 짓을 하다가는 하루아침에 신용을 잃는다. 알겠나? 신용이라는 것은 쌓는 데는 수십 년이지만 잃는 데는 한순간이다. 그것만 명심해라." - page 230

피땀흘려 자식과도 같은 농산물을 내놓는 농부들.

그들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이들은 중간 상인이나 판매자, 아니 결국 우리가 아니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또한 '신용'이라는 거......

사람과 사람 사이의 보이지 않는 약속이 지금 우리에겐 잘 지켜지고 있는지 반성하게 됩니다.


세이타로 같은 이들이 있다면 우리는 그저 믿고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최근에 열심히 보던 드라마 <검사내전>이 끝이 났습니다.

거기에서도 '정의'를 지키고자 고군분투했던 검사들의 모습.

자신의 위치에서 당연히 지켜야할 것을 지켜지길 바라는 우리의 모습이 한편으로 안타깝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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