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달님만이
장아미 지음 / 황금가지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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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에......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본 문구였습니다.

 이 문구를 만나면 자연스레 뒷문장은 이러했었는데......

호랑이가 담배를 피던 시절에......

(옛날 사람인 거 인정하게 되는건가?!)


이 소설은 그동안 접해보지 못했던 장르였습니다.

민담과 판타지의 결합.

그래서 만들어진 새로운 '한국형 판타지 소설'.

그래서 더 기대가 되었습니다.

우리네 전승 민담인 '호랑이', '무당', '굿', '이무기'가 어떻게 표현될지.

"옛날 옛적에 한 소녀가

호랑이 등에 올라타 바다를 건너오니

그 섬에도 그리하여

범의 자식들이 살게 됐도다."


오직 달님만이


운혜에 밟히는 치맛자락을 끌어 올리며 산기슭을 가던 열아홉 살 '모현'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모현은 서른하고도 여섯이었고 형부인 단오와 함께 밤길을, 그것도 산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범님 때문이오."

새치름한 눈을 더욱 가늘게 뜨고 무당 천이는 외쳤다.

"범님께서 채울 수 없는 허기에 허덕이고 있기 때문이요. 이 모든 화는 그 때문이요. 검은산에 머물며 우리를 보살피시는 그분, 범님의 굶주림 때문에. 노여움 때문에." - page 10


호랑이의 재물이 된 그녀 모현.

그동안의 호랑이 신부는 살아 돌아오지 못하였습니다.

사실 네 번째 신부로 선택된 이는 모현의 언니 희현이었습니다.

하지만......

모현을 붙들고 희현이 귀엣말을 속삭였다.

"나는 네게 마지막 남은 피붙이지? 그렇지, 모현아?"

그 음성이, 손이 불덩이 같았다. 다가선 누구에게나 옮겨붙고 말 돌림병 같은 열기.

"나를 죽게 버려두지 마. 너는, 너만은 그러면 안 되잖아.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데. 어떻게 지켜왔는데. 알잖아."

모현이 숨죽여 흐느꼈다.

"네게는 내가 하나뿐인 혈육이잖아. 허나 저길 봐. 나한테는 아이가 있어. 혼인도 했지. 그렇지만 모현아, 너는 혼자지. 나밖에 없지. 살려줘. 이대로 놓아버리지 마. 저 아이들을, 네 식구들을. 이렇게 부탁할게." - page 42

언니의 간곡한 부탁.

모현은 어떤 감정으로 이러한 선택을 한 것일까.

치기? 책임감? 애정?

결국 그녀는 몸을 일으켜 외칩니다.

"천이 님께 간청드리오니, 제가 산군님의 신부가 되겠습니다." - page 43


언니 대신에 호랑이 신부가 되기로한 모현.

그런 모현에게 언니는 어머니가 품에 지니고 다니던 소지품이었고 그들 자매가 잃지 않은 유일한 과거의 물건이기도 한 오동나무 재질의 칼집과 손잡이를 줍니다.


그렇게 형부와 산에 오르던 중 갑자기 형부는 태도를 돌변하기 시작합니다.

"괜찮다니까."

단오가 실실거렸다.

"힘 빼지 말자니까, 처제." - page 14

자신의 더러운 욕망을 채우려던 그에게 벗어나고자 품에 안고있던 칼을 꺼내들게 되고 그 순간 호랑이도 나타나게 됩니다.

호랑이는 단숨에 단오를 덮쳤고 그사이 도망가려던 그녀 앞에 호랑이는 다시 등장하게 됩니다.

그 순간, 기이하게도 무릎을 꿇고 앉은 모현의 귓가에 낯선 남자의 음성이 울려 퍼지게 됩니다.

"그대였어. 그대를 찾기 위한 여정이었지. 잘 왔다, 소녀야. 이로써 예언은 이루어졌으니." - page 25

호랑이가 주둥이를 벌려 모현의 어깻죽지에 이를 박고난 뒤 그 상처 부위를 핥는 혓바닥의 감촉을 느끼게 됩니다.

으르렁 거리는 호랑이.

무언가 느닷없이 호랑이의 뒤편에 나타난 거대한 형상.

모현이 중얼거렸다. 이 밤, 이 골짜, 기에서, 도대, 체 무, 슨 일이.

질문의 매듭을 짓기도 전에 모현은 정신을 잃고 말았다. - page 26


그렇게 모현은 고을 수령인 홍옥 나리의 등에 업혀 마을에 돌아오게 됩니다.

살아 돌아오지 못할 거라 여겼는데......

그런데 남편의 죽음이 동생 때문이라 여기는 희현은 모현에게 오히려 분노하게 되고 결국 언니의 '한'은 절정에 이르며 두 자매의 갈등 속에서, 세상의 모진 역경 속에서 헤쳐나가는 동생 모현의 이야기가 소설 속에 그려져 있었습니다.


단숨에 읽어버린 이 소설.

결국 소설의 마지막은 이러했습니다.

그 틈을 빌어 산과 바다에 동시에 울리도록 모현이 목청 높여 외쳤다.

"들어라. 무당은 죽었다. 그 몸을 지배하던 장수의 넋 역시 사라졌다. 범님이, 용님이 그대들을 지켜주셨다."

땅에서는 호랑이가 울었고 하늘에서는 용이 부르짖었다.

"내 그대들에게 이르노니 더는 인산공양을 올리지 말기를.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약한 이를 바쳐 목숨을 부지하려 하지 말지니 다만 서로를 도와 마을을 구원하도록 해라.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사람을 살리는 일인 바."

그 선언에 힘을 보태려는 듯 호랑이가 다시금 포효했다. 횃불마저 꺼뜨릴 듯 힘찬 울부짖음.용이 꼬리를 끌며 밤하늘을 유영했다. 그 미상이 참으로 유려했다.

"범님! 용님!" - page 415

그렇게 모현과 미유는 호랑이 등을 타고 더 넓은 세상으로 떠나게 됩니다.

남자니 여자니 노인이니 아이니 할 것 없이 마을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그들의 앞날을 축복해주었다.

"옛날 옛적에 한 소녀가 호랑이 등에 올라타 바다를 건너오니."

미유가 그 노래를 받아 불렀다.

"그 섬에도 그리하여 범의 자식들이 살게 됐도다." - page 417 ~ 418


모현을 보면서 마치 <겨울왕국>의 '엘사'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헤쳐나가며 성장하는 모습이.

하지만 왜 그녀에겐 마음씨 좋은 언니가 없는 것인지......


모현을 통해 잠시 주저앉아 있던 저에게 자극제가 되었습니다.

저에게 두려움을 앞서는 용기를 보여준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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