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의 왕
니클라스 나트 오크 다그 지음, 송섬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9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소설은 읽기 전부터 기대가 되었습니다.

《레미제라블》과 《양들의 침묵》의 환상적인 만남!

이정명, 프레드릭 배크만, A.J. 핀이 극찬한 놀라운 데뷔작!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극찬한 이 소설.

이건 이유불문하고 읽어야했습니다.

『늑대의 왕』


"호수에 시체가 떠 있어요. 물가에요." - page 15


1793년 가을.

파트부렌 호숫가에 떠오른 시체.

팔다리가 절단된 시체에게 다가간 '미켈 카르델'은 그 끔찍함에 그만 발작을 일으키고 맙니다.

시체는 조금도 썩지 않은 상태였으며 눈알이 없는 텅 빈 눈구멍이 그를 쏘아보고 있었다. 찢어진 입술 안에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 머리카락에는 여전히 광택이 남아 있었다. 밤과 호수의 어둠이 아무리 그 색을 흐리게 했어도 머리카락이 밝은 금빛인 건 분명히 알 수 있었다. - page 17


그리고 또 한 명이 등장합니다.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나이지만 폐결핵 선고를 받은, 명석한 두뇌와 끈질긴 심문으로 법관으로서 유명세를 떨치면서도 홀로 지내는 '세실 빙에'.

그에게 치안총감은 어딘가 불편한 기색으로 한참 헛기침을 한 뒤에야 본론을 내놓습니다.

"한때 우린 젊었지, 세실. 법대를 갓 졸업하고 법정에 이름을 알리려고 안달을 내던 시절이 있었잖아. 너는 신념을 위해서는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 이상주의자로, 무슨 대가라도 치를 준비가 되어 있었지. 너는 그리 변하지 않았지만 나는 세상에 닳아버렸어. 그렇게 타협한 덕에 치안총감 자리에까지 오른 거야. 한때 우리는 정반대 역할이었는데, 이제 와선 내가 이런 질문을 하는 처지가 되어버렸군. 세실, 우리가 바로자바아야 마땅하고, 또 바로잡을 능력이 있는 잘못 앞에 놓이는 일이 얼마나 자주 있겠나? 그중 네가 정말로 관심을 가질 만한 가치가 있어서 뛰어든 사건은 거의 없었지. 글을 모르는 횡령범, 아내를 쳐 죽인 망치에서 피를 씻어낼 생각도 미처 하지 않았던 살인범, 온갖 종류의 폭력배며 술기운에 화를 못 이겨 행패를 부리는 불량배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달라. 너도, 나도 지금껏 단 한 번도 맞닥뜨린 적 없는 사건이라고.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달리 있다면야 굳이 네게 부탁하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인두겁을 쓴 괴물을 상대하려니 믿을 사람이 너밖에 없구나. 시체는 마리아 교회의 묘지로 이송되었어. 이번 부탁만 들어주면 다시는 아무 부탁 하지 않겠네." - page 29


검시를 위해 시체안치실을 찾은 빙에.

그곳에 또다른 이가 있었습니다.

거짓 핑계를 대고 참관한 카르델.

"갓 생긴 상처가 아닌걸. 흉터 부위가 완전히 아물어 있어."

빙에가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보통 이런 상태의 시체를 발견한다면 상처가 바로 사인이거나, 살인자가 증거를 인멸하려고 낸 상처라고 생각하게 되지요. 이번 사건에서는 둘 다 아닙니다. 아마 사지가 모두 이런 상태라 해도 놀랍지 않을 것 같습니다." - page 38

빙에는 수사를 위해 카르델에게 협조를 요청합니다.

그렇게 이 둘은 사건의 진실을 향해 갑니다.

처음엔 서로 맞지 않아 툴툴거리지만 위험한 상황에서도, 수없는 고비 속에서도 헤쳐나가면서 이 둘은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빙에의 병약한 신체로 인해, 그들을 돕는 치안총감은 상부의 미움을 사 새로운 총감이 부임하면 이 수사는 물거품이 되고야 맙니다.

어느 때보다 혹독한 겨울 속에서 밝혀지는 진실은 냉혹하고 추악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진실이었습니다.

"두 사람 꼬락서니 좀 보라지! 하나는 뼈만 남았고 하나는 누더기를 걸친 병신인 주제에 감히 그런 눈으로 나를 보고 있단 말이지! 당신들 같은 자들이 어떻게 신분 높은 남자들의 욕망을 알겠어? 값나가는 물건과 재산, 건물과 작위를 물려받길 기다리며 대대로 부유하게 자라온 남자들 말이야. 그런 분들은 남을 다스리도록 길러지지. 동시에 책임감에 늘 짓눌려 있지. 그래서 당신들은 상상도 못 할 방식으로 위안을 얻어야만 하는 거야.

...

즐거움을 위해 남의 입안에 오줌을 누고, 때리고, 상처를 내고, 짓밟고, 파괴하는 그 모든 걸 다 해본 다음이라고. 나는 그보다 더한 걸 줄 수 있지. 그들의 욕망이 무엇이건 우리가 다 채워주거든. 특별한 '수아레'. 격식을 갖춘 파티가 열리는 날이면 나는 그들이 예상치 못한 경험을 선사해. 상상도 못 한 걸 받는 사람들은 대체로 기뻐하거든. 여기에는 색다른 아이들만 모아놓은 동물원이 있어. 그중 추한 몇몇은 다른 아이들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려고 골랐지만, 우리 손님들이 그들의 열등함, 치욕, 고통과 불행을 보고 즐거워하도록 갖추어놓은 아이들도 있어. 꼽추, 난쟁이, 언청이에서부터 수두증에 걸려 머리가 커다랗게 부푼 아이는 물론 기형에 불구자까지 있지. 돈을 달라는 아이들에게는 우리가 부리는 다른 사용인들과 마찬가지로 돈을 주지만, 나머지는 돈도 안 받고 일을 해. 호수에 버려진 건 그중 하나야.

...

내가 모시는 손님들은 세상을 지배하는 남자들이라고. 그들의 쾌락에 비하면 인간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그런 것 하나가 희생된다 해서 뭐 그리 대단한 일이겠어?" - page 138 ~ 139

이보다 더 추할 수 있을까.

동물보다도 못한......

하지만 이 모습은 소설 속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참으로 한탄스러웠습니다.


결국 비극적인 사건의 진실은......

카르델이 의자에 등을 기대더니 졸린 눈을 비볐다.

"그러면 이 미스터리의 열쇠는 결국 실연당한 상처였던 건가?"

"그것이 인류의 가장 오래된 동기지요. 요한네스가 처음에 했던 말이 맞았습니다. 그는 괴물이 되도록 길러졌고, 결국 괴물이 되고 말았지요. 하지만 증오를 치유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다니엘 데발이 나타나자 요한네스 역시 인간성을 되찾았지요. 하지만 사랑이 거짓임을 알게 되자 괴물은 애초보다 더 끔찍한 모습으로 되돌아간 겁니다."

두 사람은 잠시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 page 475


읽고나서 먹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니, 그냥 부정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탐욕과 타락, 인간의 사악함과 인간에 대한 연민이 결국은 우리들의 모습이기에 외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습니다.


소설 속의 이 이야기가 책장을 덮어도 가슴 언저리에 남았습니다.

"빙에 씨, 제가 본 세상에서 인간이란 해로운 짐승, 힘겨루기를 하느라 서로를 갈기갈기 물어뜯는 피에 굶주린 늑대에 불과합니다. 노예가 주인보다 선한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힘이 약할 뿐입니다. 죄 없는 자들이 무결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악한 일을 저지를 힘이 결여되어서입니다. 파리가 피바다로 변하기 전에는 모두가 자유, 평등, 박애, 인권을 외쳤습니다. 지금 스웨덴에서와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저는 기요틴에 참수당한 이들의 가죽을 벗겨 무두질해 인권선언문을 자아정하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이곳에서 중산층과 농민들은 오랜 세월 그들을 억압한 귀족에게 맞서 봉기를 꿈꿉니다.

...

당신이 저의 죄를 의심의 여지 없이 낱낱이 증명해줄 테지요. 그러면 시민들은 복수심에 차서 봉기할 것입니다. 제 목에 칼이 떨어지기 전 저는 혁명의 저울을 건드리게 될 겁니다. 파리의 거리에는 말 그대로 피가 쏟아져 내렸습니다. 처형당하는 이들이 너무 많아 기요틴의 날은 하루에도 몇 번을 갈아야 했지요. 저는 스톡홀름 역시 그렇게 되기를 빕니다. 하수구가 핏빛이 되어 흐를 것입니다. 살아남은 몇 안되는 이들이 강자가 되는 것입니다. 시체가 감라스탄을 가득 메울 것입니다. 무덤은 시체로 넘쳐날 것입니다. 오로지 갈가마귀만 남을 것입니다." - page 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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