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재밌어서 잠 못 드는 황제의 세계사 ㅣ 잠 못 드는 시리즈
조지무쇼 엮음, 김정환 옮김, 모토무라 료지 감수 / 생각의길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잠 못 드는' 시리즈 중 이번에 만나게 된 '세계사'.


그동안의 세계사의 경우는 시대별, 나라별로 바라보았기에 거대한 양에 쉽게 접근할 수 없었는데 이 책은 역사를 '황제'로 좁혀 그들의 생애로 세계사의 거대한 흐름을 보고 있었기에 새로웠습니다.

특히 책표지에서도 넌지시 질문을 던집니다.

세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위대한 황제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이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세계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너무 재밌어서 잠 못 드는 황제의 세계사』

 

​

​책장을 펼치면 우선 만나게 되는 황제.

​

 


너무나도 유명한 말이었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함무라비 왕'.

이 문구는 함무라비 법전의 특징인 동해보복법의 원칙을 나타낸 것으로 가해자에게 피해자가 입은 위해와 같은 수준의 벌을 내림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 말의 숨은 뜻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누군가가 위해를 입었을 경우 그 보복이 당사자를 넘어서 가족 부족 간의 문제로까지 번지고는 했다. 함무라비 왕의 목적은 당사자들 사이에서 분쟁이 마무리되도록 함으로써 그러한 보복 싸움이 일어나지 않게하는 것이었다. - page 16

이 역시도 의미가 깊었지만 또 하나의 의미 역시도 그가 국가와 시대를 초월해 인정받을 수 밖에 없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가 통치하던 시대의 사회는 자유인과 노예로 구분되어 있었고 피해자의 신분이 낮을수록 죄가 가볍게 취급되었었습니다.

함무라비 왕은 왜 법전을 편찬했을까? 법전의 전문을 보면 '국토에 정의를 알리기 위해'라는 의도가 기재되어 있다. '정의'란 사회적으로 강한 위치에 있는 자가 과부나 여자아이 등 사회적 약자를 괴롭히지 못하도록 보호하는 것이다.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국민들에게 규율과 분별 있는 행동을 의무화한 것이다. - page 17

국가의 영토를 넓히고 사람들의 생활을 풍요롭게 했으며 사회에 공정함을 되찾게 했던 '함무라비 왕'.

그의 정신은 국가와 시대를 뛰어넘는 진정한 '왕'의 모습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그리고 후세의 역사가로부터 '인류 역사상 가자아 행복했던 시대'로 칭송받으며 제국에 이익을 안겨준 이가 있었습니다.

'최고의 원수' 트라야누스 황제.

민중으로부터 환영을 받은 트라야누스는 말에서 내려 걸으면서 친한 사람들과 포옹을 나누는 겸허한 모습에 호감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뿐만아니라 원로원 의원 중에서 이탈리아반도 출신자와 소아시아 출신자를 함께 집정관으로 임명하는 등, 로마의 전통적인 세력을 존중하면서 제국 통치에 새로운 힘이 될 인물도 등용하며 시대 분위기를 반영한 인사를 실시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원로원과의 양호한 관계를 유지하며 조기에 안정된 정권을 확립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최고의 원수'라 불리게 된 이유.

그가 '최고'인 이유는 친정으로 획득한 전리품을 국가의 재정에 사용하고 공공사업 등으로 민중에게 이익을 가져다줬기 때문이다. 트라야누스 황제는 건축가인 아폴로 도로스를 중용해 저렴한 공공 목욕탕, 도서관 등을 갖춘 거대한 광장과 상업 센터 등을 수도에 건설했다. 또한 로마의 외항으로서 육각형의 항구를 건설하고 속주에는 퇴역 군인이 사는 도시를 만드는 등 제국 각지를 정비했다.

아울러 트라야누스 황제는 네르바 황제가 창설한 복지 제도인 '알리멘타'를 계승해 발전시켰다. 이는 토지 소유자에게 자금을 빌려주고 그 이자를 가난한 아이들의 양육 기금으로 삼는 제도로, 그후 200년이나 존속했다.

그 밖에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생활필수품을 지급하는 등 수많은 시책을 펼쳤으며, 이러한 공로로 최고의 원수라는 찬사를 받은 것이다. - page 93

국민을 위하는 왕.

'최고'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상적인 왕도 있었습니다.

'술레이만 1세'

수도이며 국제적인 상업 도시이기도 했던 이스탄불의 주민 중 40퍼센트가 크리스트교도와 유대교도였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국내의 이민족과 이교도의 활동을 보호했습니다.

오스만 제국에서는 크리스트교 문화권에서 종종 발생한 유대인에 대한 대규모 박해가 없었으며, 튀르크인과 다른 피지배 민족의 충돌은 기본적으로 개인 사이의 대립에 국한되었다고 한다. 또한 제국 영내의 동방 정교회 신도는 민족을 불문하고 똑같이 대우함에 따라 그리스인이나 세르비아인, 불가리아인 등의 민족 간 대립이 진정되었다. - page 220

이처럼 국경이나 민족에 상관없이 인재를 활용함으로써 다문화가 공존하는 제국을 만든 그.

그의 정신은 후세까지도 이어졌습니다.

그 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터키 공화국은 오스만 제국 시대의 영토를 대부분 잃었기는 하지만 공용어 표기에 알파벳을 채용하고 정교분리를 철저히 하는 등 서양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발전을 이루었다. 이와 같은 외래문화 도입에 대한 유연한 자세는 술레이만 1세의 치세에 그 토양이 만들어졌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 page 222

그처럼 넓은 포용력.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시대를 초월해, 국경을 초월해 국민들에게 인정을 받는 왕들의 모습은 한결같았습니다.

국민을 위하는 지도자.

그 정신은 길이 이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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