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뉴욕
이디스 워튼 지음, 정유선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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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디스 워튼'.

『순수의 시대』작품으로 여성 최초 퓰리처상을 수상할만큼 대단한 작가이지만 저와는 큰 인연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이번에 4편의 단편소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읽게 되었습니다.

여성 특유의 섬세한 문장과 예리한 심리묘사를 특징으로 하였다는 그녀의 작품.

특히나 국내 최초로 번역된 작품이기에 기대가 되었습니다.

『올드 뉴욕』



우선 만나게 된 <헛된 기대>.

뉴욕 레이시 가문의 아들 루이스 레이스는 성년을 맞이하여 유럽에 여행을 가게 됩니다.

"자, 그랜드 투어(과거에 영국과 미국의 부유층 젊은이들이 교육의 일환으로 유럽 주요 도시들을 견학하던 여행 - 역자 주)를 위하여!" - page 10

아버지는 아들이 유럽 여행을 하면서 자신의 가문 대대로 물려줄 명화 갤러리를 위한 작품을 사오길 바라지만 제목처럼 그것은 '헛된 기대'가 되고 맙니다.

"제가 취향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고 넌지시 말씀드렸잖아요. 새로운 작가들이 떠오르고 있다고..., 기억하실 거예요."

"혁명! 새로운 이름들이라고! 누가 그런 말을 하니? 지난주 런던의 중개인들에게 편지를 받았다. 내가 그들을 너한테 특별히 추천했었지. 다름 아니라 올여름에 확실한 귀도 레니 작품 한 점이 시장에 나온다더구나."

"아, 그 중개인들요? 그들은 잘 몰라요!"

"그 중개인들이 모른다고? 그러면 너 말고 또 누가 안단 말이냐?" 레이시 씨는 핏기가 가신 얼굴로 비웃듯 물었다. - page 54

그렇게 그가 수집한 작품들은 아버지에게 온갖 냉대와 비난을 받게 됩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도, 루이스 레이스도 사망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뉴욕에서 그토록 막강한 세력을 떨치던 레이시 가문도 그 명성이 조금씩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수집품은 재평가 받으면서 소설은 막을 내립니다.

그 젋은이가 대학을 갓 졸업하고 아주 젊었을 때 아버지가 옛 거장의 그림을 사 오라고 이탈리아로 보냈던 모양이야. 그가 이렇게 보기 드물고 믿기 힘든 수집품들을 가지고 돌아왔다는군. 그 나이의 젊은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니! 그런데 그의 아버지는 쓰레기들을 집으로 가져왔다고 상속권을 박탈했다나 봐. 그 젊은 친구와 아내 모두 아주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어. 그가 그런 그림들을 사들였다고 심하게 비웃음을 사는 바람에 그 부부는 멀리 떠나 깊은 시골에서 은둔자처럼 살았던 것 같아. - page 77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 시대 뿐만아니라 지금의 우리 시대에서도 엿볼 수 있어서 아이러니하면서도 한편으론 이해가 되었습니다.


저에게 인상적이었던 작품 <노처녀>.

이 작품이 저에게는 그녀의 섬세하고 예리한 심리 표현을 엿볼 수 있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옛 뉴욕에서 성실하고 부유한 가문들 중 하나인 랄스턴 가문.

그 가문의 델리아는 사촌인 샬롯 로벨으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넌 분별력을 되찾으려 노력해야 해, 샬롯. 결국 친자식들에게 우선권이 있는 거야."

"바로 그게 문제야." 샬롯은 델리아의 손목을 난폭하게 거머쥐었다. "어떻게 내 아이를 포기할 수 있겠어?"

"네..., 네 아이라고?" 델리아의 세계는 발밑에서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가엾은 말라깽이 아이들 중에 누가 네 아이라는 거나ㅣ, 샬롯?" 그녀는 참을성 있게 물었다.

샬롯은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 내 아이를 내 아이라고 부르는 거야." - page 98

알고보니 샬롯은 몰래 아기를 낳았었고 그 아이를 아동 보호소에서 다른 아이들과 함께 돌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의 발단엔 그녀 델리아도 연관이 되었습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이 비극적인 분위기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그럴수록 더 깊이 빠져들게 되는 그녀.

샬롯 로벨은 이 모든 것을 인지하고 받아들였다. 그녀는 델리아와 단둘이 나눈 대화를 통해 자격 없는 죄인에게 내려지는 자비와 긴 목록에 또 하나의 자비가 보태지는 것으로 이 상황을 받아들였다. 그녀의 이 한마디는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는 단서가 되었다. "이제 그 아이는 적어도 진실을 의심하지는 않을 거야." 샬롯에게는 자기 자식이 둘 사이의 연결성을 알아채지 못하게 하는 것이 삶의 주된 목적이었다.

하지만 델리아의 주된 목적은 티나를 눈으로 보는 것이었다. 인생 전체가 자신을 피해간 행복의 희미한 그림자로 물들고 채워진 중년 여인은 자신에게 찾아온 더없는 행복의 빛줄기에 눈이 부셨다. 이따금 티나의 변화하는 얼굴을 볼 때는 마치 자신의 피가 그 아이 얼굴에서 고동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고동치는 그 흐름을 부추기는 모든 생각과 감정을 읽을 수 있을 것만 같앗다. 티나의 사랑은 환희와 우울감, 겸손과 자기비하가 요동치는 폭풍과 같았다. 델리아는 억눌렸던 젊은 시절 자신의 꾸밈없는 솔직함, 모든 희망과 열망, 상상이 자기 앞에 펼쳐지는 것이 보였다. - page 168

이 소설을 읽다보니 이 노래가사가 떠올랐습니다.

요즘 따라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
니꺼인 듯 니꺼 아닌 니꺼 같은 나
이게 무슨 사이인 건지 사실 헷갈려 무뚝뚝하게 굴지마 - 소유, 정기고의 <썸> 중에서

자신의 아이를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그래도 자신이 '엄마'라는 것을 마음 속으로만 외쳤던 샬롯.

그 모든 상황을 바라보고 감내해야하는 델리아.

누구를 비난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남은 2편의 단편소설은 '불륜'과 관련된 이야기였습니다.

<새해 첫날>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당신은 비탄과 고독 속에서 당신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얼마나 힘들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소. 난 그런 것에서 당신을 지켜주고 싶었소. 나와 결혼해달라고 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오." 그는 일어서서 마치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흡족해하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불행히 여성의 평판을 더럽힌 남자는 명예를 잃게 될까 봐 전전긍긍하기 마련이오. 비록 내 성향이 그렇진 않았더라도, 난 그런 고민도 해야..." - page 311

사회적 '평판'을 중요시 여기는 그 시대 상류사회의 부조리함과 위선.

하지만 그들 역시도 그 끝은......

삶은 그 잔해뿐만 아니라 위업보다도 웃자라서 모든 것을 뒤덮기 마련이다. 그토록 느릿느릿 나아가는 사회에서 딜레인 가족의 위기는 생각보다 더 짧은 시간 안에 파묻혔고 사람들의 기억에 잊혔다. - page 235 ~ 236


4편의 소설은 짧지만 긴 울림을 전해주었습니다.

저마다 다른 상류계층을 보여주었지만 그들의 최후는 닮아있었습니다.

화려함과 우아함이라는 가면 아래에 가려진 모습이, 사회 평판을 유지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발버둥이.

그렇게 사는 삶이 과연 진정한 삶인지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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