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업 - 하 - 반룡, 용이 될 남자
메이위저 지음, 정주은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11월
평점 :
절판


앞서 『제왕업 上』에서 소기의 황궁 입성이 이루어지면서 끝을 맺었었습니다.

그 뒤를 이은 『제왕업 下』에서 왕현과 소기의 행보는 어떻게 될지......


 


시작은 이러했습니다.

이번 변고를 겪은 뒤, 황궁은 적막에 휩싸였다. - page 11

선황은 갑작스레 붕어하고 고모는 중풍으로 쓰려졌고 아버지는 비통함을 금치 못하며 소기를 향한 적개심을 내려놓은 듯 하였습니다.

끊임없는 권력 투쟁.


이러나저러나 피는 물보다 진한 법. 피붙이들과는 어쩌다 사이가 소원해지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가까워지게 마련이었다.

다만 예전의 그 아름답던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나와 그들 사이에는 영원히 메워지지 않는 골이 생길 따름이었다. 이제 아버지는 나를 자신의 품 안에서 지켜줘야 할 응석받이 딸로 여기지 않을 테고 다시는 예전처럼 귀애하지도, 감싸주지도 않을 것이다. 아버지에게 지금의 나는 왕씨 가문의 여식이기 이전에 소기의 아내이자 태황태후와 함께 수렴청정을 하고 있는, 진정으로 황궁을 틀어쥔 여인이었다. - page 11


제왕의 난 이후로 관리들의 부패는 더 심해지고 왕현은 어머니와의 영원한 이별을 맞게 됩니다.

어머니를 보며 읊조리는 왕현의 모습이 참으로 애처로웠습니다.

나는 어머니의 성스럽고 깨끗한 잠든 얼굴을 가만히 응시했다. 차마 어머니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그녀의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 어린 시절의 일들이 어지럽게 머릿속을 채웠다. 어머니의 찌푸린 얼굴, 미소 띤 얼굴, 나직이 부르던 목소리, 신신당부하던 말씀...... 하나하나 새록새록 떠올랐다. 어머니가 살아 계씰 때 나는 늘 어머니가 잔소리를 할까 봐 꺼렸고, 온갖 일에 몸이 매여 어머니와 함께할 시간도 여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한 번도 탓하지 않았다. 우리가 오기만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면서도 그저 묵묵히 먼 곳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우리의 사정을 한없이 이해해주었다. 어머니가 다시 한 번 나와 함께 탕천궁에 가고 싶어 했음을, 선조들의 능침을 참배하러 황릉에 가고 싶어 했음을, 늘 오라버니의 자식들을 보고 싶어 했음을...... 나는 다 알고 있었다. 그러했는데 끊임없이 일어나는 심란한 일들 탓에 차일피일 미루면서도 그런 일들은 중요하지 않으며 어쨌든 어머니는 기다릴 거라고, 언제라도 내 뒤에서 기다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리도 갑자기, 내게 후회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내 곁을 떠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 page 134


갑자기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고 다리가 풀려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소기는 말없이 나를 품에 안았다. 그렇게 나를 힘껏 끌어안은 소기의 양미간에서 더할 수 없이 깊은 애정이 느껴졌다.

아버지는 어디 계신지도 모르고, 어머니는 속세를 떠나셨고, 자담은 결국 남이 되어버렸다...... 이제 오라버니를 빼고 나면 내가 사랑하는 지극히 가까운 사람은 소기뿐이었다. 오직 그만이 내 곁에 남아 서로 의지하며 이 길고 험난한 일생을 걸어갈 것이다.

마침내 둑이 터진 것처럼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온 힘을 다해 그를 꽉 끌어안았다. 물에 빠진 순간 내 눈앞에 나타난 유일한 부목을 끌어안듯이. - page 135

그렇다 그녀는 다시 강해지리라 다짐을 하게 됩니다.


'세상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둘이서 멀리 강호로 도망친다면,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는 원앙은 부러울지 모르나 신선도 부럽지 않을 것이다.' 한때는 이런 꿈을 꾸기도 했다. 만약 내가 만난 낭군이 소기가 아니었다면 이 꿈을 이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그를 만나고 그 또한 나를 만나 지금까지 함께해왔으니 다시 돌아갈 수도, 또 돌아갈 필요도 없었다! 우리는 서로 손을 자바고 기나길 가시밭길을 헤쳐 나오면서 너무 많은 대가를 치렀고 둘 다 피범벅이 되었다. 더는 그 무엇도 우리가 그 지고지상의 자리에 오르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 page 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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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들에게도 아이가 생기게 됩니다.

그 기쁨도 잠시, 당경이 모반을 일으키고 돌궐이 국경을 침범하여 나라에 큰 변고가 일어나게 됩니다.

믿었던 이로부터의 배신.

그로인해 괴로워하는 소기의 모습.

"결국 당신을, 또 천하를 저버리고 말았소."

그가 자신을 탓하리란 것을 진즉에 알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직접 들으니 송곳으로 가슴을 찌르는 것만 같았다.

당경이 난을 일으키고 외적을 끌어들여 백성들이 큰 화를 입었다. 사람을 잘못 봤고 방비가 늦었다는 점에서 소기는 책임을 미룰 수 없었다.

그러나 소기는 신이 아니었다. 10여 년 동안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전장의 피바다를 같이 건넌 형제라 할지라도 야심의 유혹을 뿌리칠 수는 없었다.

사람의 본성이 그러한바, 신조차 사람의 본성을 꿰뚫어 보지 못하는데 하물며 일개 범인에 불과한 소기가 어찌 다 알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유가 어찌 되었든 잘못은 잘못이었고, 천하를 저버린 사실 또한 지울 수 없었다.

소기는 군자가 아닐지 모르지만, 자신의 잘못을 감추고 뒤로 숨어버리는 비겁한 자도 아니었다.

친정은 천하에 대한 그의 책임이었다. - page 284 ~ 285

이에 소기는 반란을 평정하기 위해 북벌에 나서게 됩니다.

떠나기 전 그가 왕현에게 전한 이 이야기.

"아이가 말을 떼기 전에, 처음으로 아버지란 말을 하기 전에 돌아오리다. 아무, 기다려주시오. 아무리 고되고 힘들더라도 내가 돌아올 때까지......" 거기까지 말하고 목이 멘 소기는 목울대를 울렁이며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붉어진 두 눈이 나를 마음속에 담으려는 듯 가만히 바라봤다. 바르르 떨리는 몸이 그의 고통과 무력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 순간의 그는 더 이상 전지전능한 예장왕이 아니었다. 그저 다른 이와 마찬가지로 감정과 눈물이 있는 범부이자 무력한 낭군이요, 미안함과 죄책감을 가누지 못하는 아비였다. - page 293


당경을 죽이고 반군을 무너뜨렸는데도 이 전쟁은 끝날 조짐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창칼이 오가는 전장, 계속 북진해 강토를 넓히고 오랑캐를 무찔러 패업을 실현하는 그.


​"다른 누구도 아닌 소기이기에 과감히 나를 이 위태로운 곳에 두는 위험을 무릅쓸 수 있었다." 나는 옥수를 마주 보며 웃었다. "그리고 내가 왕현이기 때문에 소기는 이 판을 내 손에 맡길 수 있었던 것이다."

"정분과 은정, 도의로 따지면 우리는 부부이자 사랑하는 반려다." 나는 한 자 한 자 힘주어 말했다. "그러나 이 제왕의 패업을 이루는 길에서 우리는 함께 싸우는 지기니라. 태평할 때는 깊은 규중에서 그에게 먹을 갈아줄 것이나, 혼란할 때는 분연히 일어나 그를 둘러싼 가시덤불을 쳐낼 것이다. 만약 나를 그저 귀하고 연약한 여인으로만 본다면 나를 알고 나를 믿는 그 소기가 아닐 것이고, 나 또한 그런 평범한 사내와는 함께하지 않을 것이다." - page 403 ~ 404

​

 


'권력'을 향해, 지키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피가, 음모와 배신이 난무한 모습이 한편으론 안타깝게 여겨졌습니다.

결국 영원하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패업을 둘러싼 권력 쟁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이루어낼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왕현과 소기의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정분과 은정.

이 말을 한 자 한 자 제 가슴에도 새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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