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
문은강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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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가 눈에 띄었습니다.

"『오베라는 남자』보다 더 재밌고 감동적이다"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


『오베라는 남자』와 같은 소설을 너무나 좋아하기에 최근에도 우리 소설 중에도 읽게 된 책이 있었습니다.

『할매가 돌아왔다』

67년 만에 60억을 들고 돌아온 할매.

유쾌하게 다가온 그녀가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진짜 속사정은 너무나 가슴 아픈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으면서 주변의 사람들과 짧게 독서 토론도 하고 이와같이 유쾌하면서도 가슴 찡한 소설이 우리 앞에 자주 나왔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보곤 하였었습니다.


그!런!데!!

그 바람이 이렇게나 일찍 이루어지다니!


2019년, 가장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소설!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

 

​

우선 표지에 나와계시는 분이......

아마도 우리의 주인공 '고복희'씨일 듯 한데......

사람을 외모로 판단해서는 안되지만 '춤'과 관련이 있으실지 소설을 읽어보면 알겠지요!

​

그녀의 회상으로 시작된 첫 문장.

고복희는 이해할 수 없다. - page 7

비싼 학비를 내놓고 수업 거부를 외치는 선배들을 이해할 수 없었던 그녀.

그녀를 에워싸고 비난을 쏟아내는 선배들이 한심하기만 하였습니다.

그중에 유독 거슬리는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쭈뼛쭈뼛 다가와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진심처럼 느껴져 용서해줬더니 거기서 끝내지 않고 계속해서 주위를 맴도는 그, 장영수.

본능적으로 느끼게 됩니다.

이 자식, 이상한 놈임이 틀림없다는 것.

그렇게 그녀와 그는 결혼을 하게 됩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고복희는 회상한다. - page 10

​

지금 고복희는 남쪽 나라에 있다. - page 13

인생이란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것이라지만 그녀 자신도 태평양과 인도양이 만나는 적도 부근의, 연중무휴 후끈후끈한 열대기후를 자랑하는 이런 곳에 살게 되리라 예상하지 못하지만......

캄보디아 프놈펜의 짙은 초록이 가득 찬 세계.

호텔보다는 민박에 가까운 '원더랜드'의 사장으로 지내고 있었습니다.

​

누군가는 고복희를 괴팍한 여자라고 정의하지만 사실은 '정확한' 루틴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고복희는 아침 다섯시에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리한다. 단발머리를 단정하게 빗은 뒤, 청결하고 활동성 좋은 옷으로 갈아입는다. 고복희가 생활하는 공간의 부엌에 난 쪽문을 나서면 곧바로 야외 로비로 갈 수 있다. 다섯시 이십분부터 로비를 쓸고, 데크체어와 파라솔을 펴고, 밤사이 풀장의 수면 위로 내려앉은 부유물을 걷어낸다. 그럼 다섯시 오십분이 된다. 오 분 동안 오늘의 손님 명단을 머릿속에 정리하고, 스스로 만든 '오 분 스트레칭'을 한 뒤, 정확하게 여섯시에 대문을 여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다. 원더랜드의 대문을 열고 닫는 시간은 오전 여섯시부터 밤 열두시까지. 체크인은 정확하게 오후 두시 이후, 체크아웃은 오후 열두시 이전. 원더랜드의 투숙객은 모두 이 시간을 준수해야 한다. 예외는 없다. - page 15 ~ 16

이 융통성 없고 까칠한 사장님 덕분(?)에 호텔은 오늘도 텅텅 비어있습니다.

​

"한 달 살기?"

원더랜드가 오픈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일하고 있는 유일한 직원 '린'은 고복희에게 제안합니다.

원더랜드에 한 달 동안 머무를 수 있는 시스템.

하지만 고복희는 생각합니다.

불가능한 계획이다.

고복희는 그렇게 생각했다. 세상에 아무리 멍청이가 넘친다 해도 이 정도로 멍청한 선택을 하는 인간은 없을 거라고. - page 23

​

멍청한 선택을 한 이가 있었으니 그는 남는 게 시간뿐인 스물여섯 살 백수 '박지우'.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한 그녀.

별 거 없는 나라 캄보디아에 온 그녀는 그나마 앙코르와트를 보기 위해 나갈 채비를 하는데 고복희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어봅니다.

"왜 여기로 왔습니까?"

...

"앙코르와트 때문이라고 했잖아요."

"그럼 앙코르와트 가까이 갔어야지요?"

"여기가 앙코르와트 가까이잖아요?"

"더 가까이로 가야죠."

"얼마나 가까이 가란 말씀이세요?" - page 39 ~ 40

알고보니 앙코르와트는 시엠레아프에, 프놈펜에서는 버스로 일곱 시간 비행기로는 한 시간이 걸리는 곳에 있었습니다.

어리벙벙한 표정을 짓는 박지우.

"여기가 캄보디아 수도 아니에요?"

"맞습니다."

"근데 앙코르와트가 없어요?"

"불국사는 서울에 있습니까?" - page 40

​

그제서야 상황파악을 한 박지우는 고복희에게 환불을 요청하지만 계약 규정에 적힌 바와같이 환불은 안 된다는 것.

결국 원더랜드에서의 한 달 생활을 하게 됩니다.

​

행동 하나하나 실수투성이에 바보같이 시간만 흘려보내는 자신이 한심해 고복희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게 됩니다.

"억울해요. 누구는 가게도 차리고, 번듯한 직장에 취직하고, 유학 가고, 해외여행도 다니고, 이래저래 재밌게 사는데. 나는 걔들이 업데이트하는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무의미한 시간이나 보내고 있잖아요."

"안 보면 됩니다."

"근데 눈뜰 때부터 감을 때까지 멍청하게 남의 인생을 쳐다보는 것밖에는 할 일이 없어요. 제 삶에 집중하라고요? 제 삶은 진짜 재미없거든요. 들여다보면 볼수록 한심하게만 느껴질 뿐인데."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 page 94

그렇게 고복희에게 박지우는 그동안 닫혀버린 마음에 틈이 나기 시작합니다.

​

그 전에 그녀의 닫힌 마음을 열어놓았던 이가 있었습니다.

장영수.

디스코에 빠져 있던 자아영수는 토요일 밤이면 고복희를 끌고 디스코텍에 가게 됩니다.

가기 싫으면 가기 싫다고 말할 그녀인데 막상 디스코텍에 가선 자리에 앉아만 있는 그녀.

그러다 그녀는 명동의 후미진 골목에서 운명과 같은 음식을 만나게 됩니다.

조개구이.

​그와 조개구이를 먹으며 얼떨결에 인생을 좌우하게 될 결정을 하게 됩니다.

"군산에 살면 조개구이를 배 터지게 먹을 수 있어요."

"배 터지게......"

"거기가 얼마나 좋으냐면요. 뻘을 쥐기만 해도 백합이 우수수 떨어지거든요. 심심하면 나가 조개를 개는 거예요. 집에 가져와서 구워 먹고 삶아 먹고 국수랑 죽도 끓이고."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군산이라는 도시는 서울과는 전혀 다른 세계처럼 느껴졌다.

"거기서 나랑 같이 살래요?" - page 170 ~ 171

​

그곳에서 선생님을 하며 지내는 그들.

장영수가 아이들에게 외친 이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

고복희 부부는 방학이면 가까운 도시로 여행을 다니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장영수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나는 지독한 겁쟁이예요. 세상이 무섭거든요. 더 무서운 건 그 괴물에 내가 잡아먹히는 날이 올 것 같아서. 진짜 중요한 게 뭔지 잊어버릴 것만 같아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살면 됩니다."

하하, 장영수가 작게 웃었다.

"복희 말이 맞아요."

그게 우리의 숙명이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늘 똑바로 걸어가는 것. - page 184 ~ 185

​

하지만......

"우리 약속 하나만 해요."

뜨거운 햇빛 아래 그의 볼은 둥글고 발그스레했다.

"절대로 사라지지 말아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끝까지 남아요."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장영수에게 고복희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뿐이었다.

"누구도 우리를 망하게 할 순 없어요. 세상에 감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그의 몸은 단단했고 표정은 파릇파릇한 잎사귀 같았다.

"상상력 없는 인간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예요."

8월이 지나가는 중이었다. 장영수가 고복희의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우리는 그러지 마요. 복희, 매일 새로운 꿈을 꿔야해요. 그래야만 해요......" - page 187 ~ 188

끝내 그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됩니다.

​

망하기 직전인 원더랜드에 나타나 행패를 부리는 이.

그리고 지난 5년 전 사건의 진실.

용서와 화해.

​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장영수가 하늘에서 본다면 마음을 놓겠지요.

여전히 고복희는 뻣뻣하다. 흥겨운 비트가 흘러나와도 발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그저 공중을 떠다니는 자유로운 음표를 바라볼 뿐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장영수를 만나게 되는 날, 이 세상의 모든 거짓말을 끌어모아 전해주고 싶다고. 역시 그렇죠? 나는 좋은 세상이 올 줄 알고 있었어요. 의기양양하게 미소 짓는 그의 얼굴을 보고 싶다고. 정말 얄미운 인간. 하늘을 향해 치켜들던 길고 곧은 손가락을, 어깨부터 발끝까지 흐르는 유연한 웨이브를, 현란한 자이브 스텝을, 바보처럼 휘어지던 눈꼬리를 그리워했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녀는 그 모든 순간을 사랑했다.

다 함께 모여 춤추는 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동그란 지구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이 찍어놓은 발자국으로 빼곡할 것이다. 저마다의 흔적을 남겨놓고 떠난 이들은 분명 즐거웠을 것이다.

아침이 밝아온다. 고복희가 원더랜드 대문을 연다. 이 단순한 행위는 반복될 것이다. 누군가에겐 그저 남쪽의 어느 나라라고 기억될 이곳에서. - page 262

​

소설을 읽고난 뒤 다시 '원더랜드'에 가고 싶었습니다.

다시 책장을 펼치게 된다면 그때의 고복희는 어떤 모습일까......

여전히 자신만의 루틴으로 행동하겠지만 닫혀있던 마음은 조금 열려 있지 않을까.

부디 그 자리에 그렇게 있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하는 제가 이기적인 건지......

고복희씨에게 제 속마음도 털어놓고 싶었습니다.

아마 싫어하시겠지만......

​

정말 유머러스하면서 가슴 따뜻했던 호텔 '원더랜드'로의 초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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