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만 아는 농담 - 보라보라섬에서 건져 올린 행복의 조각들
김태연 지음 / 놀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보라보라섬.
사실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검색을 해 보니 세상 모든 커플의 버킷리스트라고 하였습니다.
타히티 보라보라 섬.
화가 폴 고갱에게 큰 영감을 준 섬이자 소설 《남태평양 이야기》의 작가 제임스 미치너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으로 꼽은 섬이라고 하였습니다.
푸르른 바다.
마냥 바라만 보아도 힐링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곳을 간 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그녀의 이야기.
이건 그즈음의 이야기다. 한국을 떠나는 게 집에서 멀어지는 건지 가까워지는 건지, 보라보라에 도착하면 여행이 시작되는 건지 생활이 시작되는 건지, '그'가 외간 남자인지 남편인지조차 몰랐던, 아직은 모든 것의 경계가 희미했던 나의 첫 보라보라. 그 시작을 함께해주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 page 5
『우리만 아는 농담』

첫 이야기부터 인상적이었습니다.
불어가 서툰 그녀 '나즈'의 이야기였습니다.
어떤 고단함도 긍정으로 감싸는 힘이 있는 사람.
그런 그녀가 하루는 남편의 생일이 다가온다며 걱정을 털어놓습니다.
항상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 선물만 했다며, 이번에는 '돈'이 들어간 선물을 해 주고 싶다는 그녀.
누만의 생일날.
나즈는 들뜬 얼굴로 만족스러운 선물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어느 조용한 섬에 있는 숙소에서 푹 쉬기만 하는 일정.
그야말로 '돈'이 들어간 선물이었습니다.
어떻게 돈을 모았는지 물어보았더니 서툰 외국어로 낯선 사람들에게 빨래가 필요하지 않은지 묻고, 그것을 받아 빨래를 하고, 말리고, 다림질하며 차곡차곡 모았다고 합니다.
그럼 저 역시도 이런 의문이 듭니다.
'힘들게 번 돈을 하루에 다쓰는 거야? 너무 여유 부리는 거 아닌가?' - page 16
하지만 그런 저에게도 나즈는 작은 충고를 건네주었습니다.
낭만적인 사람. 생각해보면 나의 가난을 핑계로 지금껏 얼마나 많은 이들의 낭만을 비웃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다른 이의 낭만을 비웃지 않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괜찮은 어른이 되는 걸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나는 용기를 내어 나즈를 꼭 안아주었다. - page 16
저에게도 울림을 주었던 <곰팡이 핀 노트가 말하게 해준 것>이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스스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오해를 하게 된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잘 알고 있다고 오해하게 된다. 그런 오해들이 적절하게 쌓인 덕분에 하게 된 결혼이니, 어떻게 우리가 행복하기만 할 수 있을까. 누구나 결핍이 있고 그래서 외로운 것일 텐데, 나 역시 그렇다는 걸 인정하기는 왜 그리도 어려운 건지 모르겠다. 찌질하면 찌질한 대로, 서로의 가까이에 있어줄 텐데. 물론 그마저도 오해일지 모르겠지만. - page 81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왜 상대방을 위로할 때 영어로 "I'm sorry."라고 외치는지......
그리고 <누구보다 사랑했고 사랑받았던> 그들의 이야기에선 '사랑'의 유통기한이란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사랑의 달콤함 뒤에 오는 쌉싸름함이란.....
책을 읽으면서 '행복'이란 단어가 새삼 떠올랐습니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떠난 마농과 그녀의 남편.
"여행은 즐거웠어?" 라는 질문에 뜻밖의 대답을 건넨 그들.
"다시는 안 갈 거야. 사람들이 왜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안 가는지 알겠더라고. 그건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야. 부모를 위해서 안 가는 거야. 돈도 많이 드는데 체력적으로도 정말 힘들어." - page 214
하지만 이어진 그녀의 이야기.
"하지만 그 모든 고생들을 미리 알았더라도 나는 갔을 거야. 그때 산후우울증이 심해지고 있었거든. 행복이 필요했어. 떠나지 않았다면 난 지금처럼 행복하지 못했을 거야. 거기 간 덕분에 집이 제일 좋다는 걸 알았으니까." - page 214
그리고 저자의 이야기.
행복이라는 단어를 쓰는 어른을 참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 마지막으로 행복하다고 느껴본 적이 언제였더라. 불행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었다. 모든 경계가 희미하다. 아이의 잠든 얼굴을 보고 있자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 아이는 어떤 어른이 될까. "괜찮아?" 바다에서 마농이 나를 향해 소리쳤다. "괜찮아"라고 대답하며 손을 흔들었다. 마농도 손을 흔들었다. 나는 내게 손을 흔드는 마농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 아이는 행복하게 자랄 거라고. 스스로 행복해지려는 엄마를 보고 자라는 아이가 어찌 불행할 수가 있을까. 나는 그렇게 믿는다. - page 214 ~ 216
그녀의 마지막 이야기.
내일의 불확실한 세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누구도 모른다.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도 있다. 어제오늘과 똑같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하루가 계속될 수도 있고, 반대로 모든 것이 무너질 수도 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그 지루함이 축복이었다는 걸 알게 되겠지만, 워 그렇다고 별 수 있다. 무너진 자리에 다시 새로운 지루함을 만들 수밖에 없다. 오늘이 언젠가 우리만 아는 농담이 될 날을 기다리며. 내일의 일은 모르겠다. - page 260
그렇기에 우리는 오늘을 열심히, 때론 낭만을 즐기며 자신만의 농담을 만들어가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