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에 잘 살고 있습니다 - 지속가능한 도시 생활을 위한 한옥 라이프
장보현 지음, 김진호 사진 / 생각정거장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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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역시도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누구나 일관된 모습의, 마치 '성냥갑'이라는 표현으로도 쓰였던 아파트에서 남들과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하늘을 향해 높게 뻗은 아파트를 볼 수 있습니다.

뭔가 획일화된 공간에서, 누구나 같은 생활패턴......

가끔은 '일탈'을 꿈꿀지도 모르겠습니다.


'한옥 라이프'

아이들의 손을 맞잡고 '북촌'을 향해 간 적이 있었습니다.

옹기종기 모여있던 '한옥'들.

왠지 모르게 그 곳에서의 삶은 어떨지 막연한 꿈을 꿔 본 적도 있었습니다.

살아보지 않았기에, 그리고 남들과 다른 삶을 살 것 같아 뭔가 모험 아닌 모험이 될 것 같아서.


그러던 찰나 '한옥 라이프'를 실천한 이의 에세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서울 한 가운데서.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20대의 마지막 해를 남겨 둔 그녀와 30대 초반을 활짝 열어젖히려 하던 때의 그.

그들의 도심 속 한옥 라이프.

『지금 여기에 잘 살고 있습니다』 

 

​

​4계절 - 봄, 여름, 가을, 겨울 - 을 온 몸으로 맞이했던 그들의 이야기.


조금은 새삼스러웠습니다.

'입춘'이라든지, '입하', '입추', '입동' 등의 절기를 나눈 이 단어들은 사실 생활을 하면서 무심코 넘어가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주한다 하더라도 크게 와 닿진 않았습니다.

그저 '아! 그랬구나!'처럼 넘어가던 절기를 이 책을 통해, 한옥 생활을 통해 절기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문구.

동장군의 입김이 여전히 귀밑에 서린 정월 첫날의 의식이 그럭저럭 마무리되면, 할아버지는 벼루에 먹을 갈고 얇은 붓을 꺼내 미리 재단해놓은 종이에 같은 글씨를 여러 장 반복해서 써 내려갔다. 집으로 돌아온 뒤, 아버지는 천자아에서 지난 일 년 간 가정의 안녕과 행복을 관장한 묵은 입춘첩을 떼어내고 그 자리에 새로 받아온 두 장의 종이를 겹쳐 '八'자 모양으로 붙였다. 어떤 정월 초하루는 봄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인 입춘과 비슷하게 맞아떨어지기도 했다.


입춘대길 만사형통 立春大吉 萬事亨通

천화개소멸 사시대길상 千禍皆消滅 四時大吉祥


입춘을 맞아 크게 길하고 모든 일이 뜻하는 대로 두루두루 잘되길, 모든 재앙은 다 소멸되고 항상 상서로운 날이 되어라. - page 19

집집마다 대문에 붙였던 그 글귀.

봄의 시작을 알리면서 새로운 한 해의 시작 역시도 알렸습니다.


그토록 진하게 풍겨 오던 라일락 향기는 어느덧 꿀 내 진동하는 아카시아에게 그 자리를 내어 주었다. 도처에 만발한 아카시아 군락은 초여름 청량한 바람에 온몸을 맡기고 춤을 춘다. 이따금씩 내리는 촉촉한 이슬비 사이로 성큼 다가온 여름의 향기. 하루가 다르게 세력을 확자아해가는 녹음과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여름의 기억들을 들추어낸다. 지난여름, 더 지난여름, 오래전 여름, 그리고 다가올 여름. - page 76

그렇게 맞이한 여름의 한옥.

마냥 뜨거울 줄 알았지만 실상은 달랐습니다.

어느덧 안채에 도달한 빛. 사방으로 쏟아지는 빛의 양은 그 어느 때보다 차고 넘치나 여름 한옥의 실내는 오히려 겨울보다 어둡다. 태양의 높은 고도가 처마의 기울기에 상쇄되기 때문이다. - page 117 ~ 118

무척이나 무더울 것 같던 한옥 라이프는 라디에이터의 열기로 누그러뜨리게 됩니다.


젖은 세간이 널브러진 어수선한 여름의 한옥에서는 덕분에 봉인 해제된 추억들이 잠깐씩 일상을 환기시킨다. 축축해진 책을 한 장씩 훑어 보거나, 고옥다습한 무더위 속에서 두꺼운 옷을 걸치며 괜스레 겨울을 그리워하는 나날. 흘러간 계절을 뒤로하고 건넛방으로 물러간 라디에이커가 한 번씩 안채로 나들이 나오는 것 또한 장마철 풍경이다. 한여름 무더위를 뜨거운 음식으로 이겨내듯, 한옥의 나무와 흙, 돌이 머금은 다습한 기운을 라디에이터의 열기로 누그러뜨려 본다. - page 110


고온다습으로 불쾌했던 여름은 어느새 추억이란 이름으로 남고 가을이 다가오게 됩니다.

불현듯 마주한 가을의 세계는 아름다웠다. 선회하는 바람은 나뭇잎을 춤추게 하고 일찌감치 잎사귀를 떨궈낸 앙상한 나뭇가지는 가을의 변주곡 속에서 자연스러운 폐허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었다. 무엇보다 초록의 태를 벗고 각자의 색을 끄집어낸 단풍은 여름 속에서 차마 보이지 않았던 기커먼 계곡을 더욱 깊게 물들였다. - page 152 ~ 153


단풍으로 물든 나무와 진한 여운을 남기는 태양의 잔광은 저물어 가는 오늘의 아쉬움을, 미련을 남겨주는 것일까......


젖은 낙엽 더미 사이로 그윽한 가을의 향기를 남기고 한층 차가워진 공기 사이로 겨울이 다가오게 됩니다.

그들의 겨울은 그리 춥지 않았습니다.

따스한 겨울 볕이 금세 달아날까 황망하게 바지런을 떨며 월동 준비를 서두른 눈 내리던 어느 날, 기분 좋은 불편함이 있는 한옥에서 겨울을 준비한다. 한층 차갑게 내려앉은 묵직한 공기층이 맨살에 부닥칠 때마다 의식적으로 꺼낸 두툼한 옷가지에 저물어가는 황금빛 햇살이 내려앉았다. 고양이는 속 털을 부풀려 겨울옷을 꺼내 입는 중이다. - page 239


사계절 속 한옥 라이프는 계절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계절 속에 깃든 절기를 따라 식탁의 모습도 변해간다. 가을의 식탁은 다채로움이 절정에 이른다. 토마토소스, 모차렐라 치즈, 바질 잎으로 구워 낸 마르게리타 피자와, 갓 수확한 당근의 흙먼지만 털어내고 올리브유에 살짝 구운 당근 샐러드. 약간의 소금과 화이트 발사믹으로만 토핑을 하고 치즈를 뿌리면 풍성한 한 끼 식탁이 꾸려진다. - page 181 ~ 183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낯설었던 절기들이 '음식'과 어울어지면서 친근하게 다가왔었습니다.


한옥에서의 삶은 아파트에서의 삶보다 자연에 더 가까웠습니다.

아마도 불어오는 바람과 햇살, 옥상에 키워지는 식물들이 전하는 계절을 몸소 듣고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나봅니다.


그들의 삶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지속가능한 삶'에 대해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아마 자연의 흐름에 맡기며 더불어 사는 삶.

이것이야말로 진정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어느새 '상강'을 향해 가는 우리.

이 책 속에선 《무진기행》을 꺼내 읽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먼지가 소복이 쌓인 책장에서 《무진기행》을 꺼냈다. 안개를 묘사하는 부분이 압권이라는 사실은 왠지 진부하게 다가온다. 내게 묻는다면 희미한 바람, 희미한 바람, 희미한 바람이라고 답해야지. 나의 무진에서, 이 습지에서 아무것도 아닌 희미한 바람에 재생의 의지를 다진다.


그 여자는 어린아이처럼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나의 한 손으로 그 여자의 한 손을 잡았다. 그 여자는 놀란 듯했다. 나는 얼른 손을 놓았다. 자마시 후에 나는 다시 손을 잡았다. 그 여자는 이번엔 놀라지 않았다. 우리가 잡고 있는 손바닥과 손바닥 틈으로 희미한 바람이 새어나가고 있었다. - page 192

저 역시도 《무진기행》책을 다시금 꺼내 읽어보며 그들과 함께 떠나가는 가을의 마지막을 장식해 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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