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자의 인문학 - 천천히 걸으며 떠나는 유럽 예술 기행
문갑식 지음, 이서현 사진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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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에 이끌렸습니다.

『산책자의 인문학』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그리고 단풍이 들어 울긋불긋 색을 입히는 나무들을 바라보면 왠지 발걸음을 옮기며 가을 바람을 맞이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산책자'

이 단어에 이끌렸습니다.

알고보니 이 책은

천천히 걸으며 떠나는

유럽 예술 기행

이었습니다.

그 길을 동행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여행을 하기 전 버릇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여행하는 곳과 관련 있는 예술가와 작품을 찾아보는 것이다. 시, 소설, 그림, 조각, 음악 등 우리가 걸작이나 명작이라 부르는 작품을 한껏 감상하고 여행지로 떠나면, 단지 눈에 보이는 그 공간의 현재뿐 아니라 과거까지 여행할 수 있다. 마치 카페 센트럴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프로이트, 폴가, 츠바이크, 로스가 한자리에 모여 열을 내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처럼 말이다. - page 5


이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는 『산책자의 인문학』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나와 예술가와 작가를 이어주는 하나의 연결고리였습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예술가들에 대한 이야기는 어떤 시선으로 보는지에 따라 다양한 감정을 받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주로 그의 작품을 바라보는 책을 읽으면 그의 예술성을,

그의 편지나 일기등을 바라보는 책에서는 인간적인 면모를,

이번처럼 작품과 장소가 결합되어 바라보니 '낭만'이 더 추가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15인의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유유히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느새 저 역시도 유럽을 산책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책의 제목과도 어울리는 예술가와 장소가 있었습니다.

프랑스 북동부에 위치한 랭스에서 북쪽을 향해 차로 한 시간 넘게 달리면 나타나는 작은 마음, '샤를빌 메지에르'.

그곳엔 19세기 후반 프랑스 상징주의의 대표 시인이자, '프랑스 문학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독특한 시인'이 태어났습니다.

'아르튀르 랭보'

어려서부터 영민하고 공부도 잘한 그는 갑자기 반항아로 돌변하게 됩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어머니의 지나치게 엄격하고 차가운 성격이 원인이었다고......

그리고 그가 자진해서 '타락'에 빠져들며 절규하는 모습.

"저는 지금 최대한 타락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왜냐고요? 저는 시인이고 싶고, 또 견자가 되려고 부단히 누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모든 감각의 착란을 통해 미지의 영역에 도달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고통이 너무나 큽니다." - page 138


그리고 온갖 고통과 황홀감을 겪은 그는 겨우 서른일곱 살 때 사망을 하고 맙니다.

"나는 또 하나의 타자다." 랭보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의 삶은 끊임없이 자신을 타자로 만들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것 같았다. 그 짧은 삶 동안 팔랑대며 여기저기를 쏘다녔다. 마치 앞에서 살펴본 그의 시 「감각」이나 「나의 방랑 생활」 한 구절처럼. - page 144


그 곳을 산책하면 사방에 펼쳐진 푸른 포도밭이 보인다고 합니다.

인력과 자연이 어우러진 이 장대한 풍광 앞에서 이곳이 프랑스 중부나 남부보다는 화려하지 못하다고 내심 깔봤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저 눈에 보이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다. 치열하게 '견자'가 되기를 갈망하던 랭보가 내게 준 선물이 바로 이 깨달음이었다.


시인이 되기를 갈망하는 이가 첫째로 해야 할 일은 자기 자신에 대해 아는 것입니다. 완전한 자기 자신을! 그는 자기 영혼을 찾아야 하며, 그 영혼을 면밀하게 살펴야 합니다. 시험하고 음미하면서 그 영혼을 겪어야만 합니다.

아르튀르 랭보, 「견자의 편지」- page 144 ~ 145


그리고 저에겐 반가운 만남도 있었습니다.

최근에 다시 읽어본 「어린 왕자」를 이 책에서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와 '리옹'


리옹의 론강 서쪽에 위치한 벨쿠르 광장엔 두 사람의 동상이 있다고 합니다.

그 동상의 좌대 위에는 두 사람이 있는데, 앞쪽에는 조종사 차림의 사내가 앉아 있었고, 뒤쪽에는 한 어린아이가 서 있었다. 자세히 보니 어린 왕자와 생텍쥐페리의 모습이었다. 동상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1900년 6월 29일 리옹에서 태어나, 1944년 7월 31일 프랑스를 위해 사망.

"내가 죽은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게 아니에요." - page 110

어린 왕자가 고향 별로 돌아가기 직전, 자신을 찾아온 조종사와 나눈 대화.

마치 작가가 자신의 운명을 직감한 듯한 이 문장.

​

 


생텍쥐페리가 어른을 위한 동화를 이렇게 마무리하였습니다.

 

또다시 마음이 찡 하였습니다.


1944년 7월 31일, 생텍쥐페리는 미국의 쌍발 전투기를 개조한 라이트닝 정찰기를 몰고 비행하지만 이것이 그의 마지막 비행이었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실종설과 사망설에 싸여 있던 그의 최후.

1998년 4월 마르세유 남동쪽 바다에서 한 어부가 우연히 그의 팔찌를 발견하면서 처음으로 밝혀지지만......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전히 생텍쥐페리의 유해를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어린 왕자』를 읽었던 우리들은 지금 그가 어디에 있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분명히 그는 우주의 한 작은 별에서 눈빛이 맑은 금발 소년과 함께 한 송이뿐인 아름다운 자아미꽃과 대화를 나누며 서랍 속 양을 기르고 있을 것이다. - page 124


예술가와 동행한 유럽의 산책 끝에 선선한 바람이 제 머릿결을 스쳐 지나는 듯 하였습니다.

힘들거나 숨찬 여행은 아니었지만 가슴 한 켠의 묵직함은......

잠시 바람에 몸을 맡겨봅니다.


깊어가는 가을에 이 책 한 권을 끼고 커피향 은은히 풍기는 카페에 앉아 읽는다면 이보다 더 좋은 '산책'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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