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기도
산티아고 감보아 지음, 송병선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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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만나게 된 건 그동안 접해보지 못했던 '콜롬비아 소설'이라는 점에서였습니다.

그리고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문구.

'21세기의 마르케스' 산티아고 감보아 국내 초역


또한 제가 좋아하는 작가 '정유정'의 추천사 역시도 인상적이었습니다.

1960년대생이라면 국경을 넘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지구 반 바퀴를 돈 거리인데 경험의 기저는 어떻게 그렇게 비슷한지 놀라웠다. 정유정(소설가)

그 시대를 겪어보지 않은 저에게는 호기심으로 다가왔던 소설.

하지만 결국 호기심이 아픔으로, 슬픈 현실이었다는 사실에 가슴 찡했던 소설이었습니다.

밤 기도


극심한 스모그로 뒤덮인 방콕.

아마도 '고독'이나 아니면 단순히 '기다림'을 의미할 것 같은 샹그릴라 빌딩의 오리엔탈 호텔 14층에서 무언지 모르지만, 아니 오히려 충동, 혹은 창의적 열정, 아니면 단순히 오래된 슬픔을 터 놓고자 시작하는 한 남자의 과거의 회상.

그럼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 page 17


콜롬비아 보고타의 '아슬아슬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마누엘'은 사랑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집의 나이 어린 유령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다가온 '후아나'.

나를 보았고, 나는 그녀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둘은 서로 좋아했습니다. 누나는 지금까지도 내가 그 누구에게도 가져보지 못했던 것을 주었습니다. 그건 바로 이해심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아니면 조금 더 은밀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즉 높은 곳에서 떨어져 내게 영혼을 드러낸 거울이었습니다. 누나 덕분에 나는 어린 시절에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 page 23


혼돈의 국가와 사회 속, 아니 그들이 같이 살아가는 가족 구성원 역시도 서로간의 분쟁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가족들에게서 벗어나고파 마누엘은 후아나와 탈출을 계획합니다.


하지만 후아나가 아무런 말도 없이 사라지게 됩니다.

누나를 찾기 위해 그는 누나의 친구들로부터 단서들을 찾으며 콜롬비아를 떠나 누나를 찾으로 떠나는 과정에서 그만 마약 소지로 체포되게 됩니다.

이런 자신의 억울한 심경을 듣게 된 영사는 뭔가 의심쩍음을 느끼고 그 대신 후아나의 행적을 쫓아가기 시작합니다.


인테르 네타의 독백 중 이 이야기가 유독 인상깊게 남곤 하였습니다.

오, 죽을 운명의 인간이여, 당신은 내가 말할 수 없고 고백할 수 없는 욕망이 무엇인지 알고 싶지 않나요? 친구여, 그건 바로 당신이 절대 알 수 없을 것들이고, 그래서 털어놓을 수 없어요. 하지만 다른 것들, 그러니까 간단한 것들은 이야기해줄 수 있어요. 당신은 광활한 세상에는 도시들이 있고, 나는 며칠 동안 그 도시를 방황하고 싶다는 것을 알고 있나요? 난 그렇게 하고 싶어 죽겠어요! 그런 도시 군중의 일부가 되고, 단지 몇 시간, 아니 몇 분만이라도 그 도시의 거리와 지하철역에서 길을 잃고, 도움 기관으로 달려가 고독한 사람들을 위한 헬프라인에서 도움을 찾고 싶어요.

그 도시들이 어떤 것들일까요?

나는 나의 야간 성운들 속에 있는 수많은 것 중에서 하나를 말하려고 해요. 거기에는 아주 강하게 빛나는 별들이 있거든요. 그럼 한번 보도록 해요. 보자고요. 내 지도 오른쪽 지역에서 황금색이 되지 못하고 구리 색깔을 띠는 그 아름다운 빛은 무엇일까요? 바다 근처에, 그러니까 아기의 무기력한 손발처럼 긴 팔이 시작되는 부분에서 좌초된 별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그건 방콕이에요. - page 92 ~ 93

방콕이라는 나라가......

화려한 이면 속에 가려진 어두움이 왠지 모르게 무섭게도, 안타깝게도 다가왔었습니다.


"영사님, 당신에게 이 모든 것을 이야기한 것은 당신에게 부탁하기 위해서입니다. 나를 대신해서 내 누나를 찾아주세요. 도쿄로 가서 후아나를 데려오세요. 과도한 부탁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사형수의 마지막 소망으로 생각해주세요." - page 229

그의 도움의 외침은 결국......

시체 바로 위로 벽에는, 그가 손가락으로 자기 피를 묻혀 그린 그림이 하나 있었다. 하트 모양의 섬과 하나의 화산이었다. 화산 중턱에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손을 꼭 잡고서 몰려오는 폭풍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물밑에서 숨어 기다리는 괴물 같은 동물들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한쪽에 이렇게 썼다. <우리>라고. - page 460


한 국가에서 행해진 부패와 권력이 초래한 개인의 이야기.

이 이야기는 단순히 소설이 아닌 현실이었고 현재에도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에 무너질 수 밖에 없는, 힘 없는 국민들의 소리없는 아우성에 그만 가슴이 아팠습니다.

국가의 의미가 무엇일까......

또다시 생각에 잠기게 되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우리가 떳떳한 '국민'이 되기까지 흘린 피, 땀, 눈물들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되새기고 또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마누엘은 그 시간에 이미 그녀가 올 것을 알고 있기에,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청년은 방콕의 더럽고 축축한 감방에 있고, 그의 누나는 테헤란에서 사랑하지 않는 남자 옆에 누워 자는 척 한다.

말, 말, 말.

밤 기도.

그들이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생각하는 이 기도. 그것은 마음속에서 울리는 가슴이 찢길 듯한 비명과 고통과 사랑의 외침이다. 그것은 두 개의 조용한 기도이다. 나는 그 이상한 폭풍우 속에, 그들이 만들었지만 한 번도 살아보지 못했던 행성과 가까운 곳에 있다. 이 두 연약한 인간은 함께 있으면서 잊히기를 염원하지만, 삶은 마치 벽처럼 그들 사이로 끼어든다. - page 280

밤 기도.

오늘 밤 하늘도 그들의 가슴 찢길 듯한 비명과 고통과 사랑의 외침이 있을까.

부디 이제는 평안한 기도로 채워지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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