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 예찬 - 숨 가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품격 있는 휴식법
로버트 디세이 지음, 오숙은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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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한때는 눈코 뜰새 없이 바쁘게만 살았습니다.

주변에서 '일중독'이라는 이야기도 들으면서 그렇게 앞만 바라보면 달리기만 하였습니다.


그러다 '번아웃 증후군'을 겪고나서야 비로소 나를 돌아보기 시작하였습니다.

활활 타오르다 한순간의 꺼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깨닫기 시작하였습니다.

무조건 열심히만 하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는 것을!

나를 위한 '잠시 멈춤'도 필요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지금까지도 종종 '휴식'을 취하곤 합니다.


이 책을 보자마자 꼭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제대로된 '휴식'이 무엇인지.

과연 '게으른' 행동도 괜찮은 것인지.

게으름 예찬

 


요즘 우리는 바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니 참으로 미련하기 짝이 없다! 바쁘다는 말은 사실 자신이 노예상태에 있음을 광고하는 것이다. "바쁜 사람이 사는 것만큼 덜 바쁜 삶은 없다." 2천 년 전 세네카의 말이다. 세네카는 자녀를 위해서든 미래 세대를 위해서든 일하느라 바쁘다고 큰소리치는 사람들의 말에 별로 공감하지 않았다. 그는 이것을 "다른 사람을 위한 낭비"라고 보았다. 그런 사람은 다음엔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낭비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계속 무한히 이어질 것이다. 영국 소설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학교에서든 대학에서든, 교회에서든 시장에서든 굉장히 바쁘다는 것은 "활력 부족 증후군"이라고 여겼다. - page 19 ~ 20

사실 저도 그랬습니다.

남들보다 바쁘게 사는 것에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며 뒤쳐지려고 할 때면 채찍질을 하곤 하였습니다.

그랬었는데......

바쁘다는 말이 곧 자신이 노예상태라는 것을 스스로 광고한다는 이 말이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는 '게으름'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다른 수많은 사상가 역시, 게으름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라기보다는 어떤 것이든 할 자유로 표현했다. 이 경우 게으름이란, 앨런 베넷의 말을 인용하면, "어떤 목적이 있는 어떠한 것도 하지 않기"로 이해할 수 있다 사실 그것은 오늘날 많은 이들이 '마음 챙김'이라고 부르는 명상의 측면을 띠기 시작한다. 일종의 왕성하고 집중된 무활동이다. - page 26

그렇게 책 속에서는 물질적 이익을 바라지 않고 순전히 그 즐어굼을 위해 자유로이 선택한 것, 빈둥거리고, 깃들이고, 단장하고, 취미 활동을 하는 등의 '여가'를 통해 우리가 가장 치열하고 유쾌하게 인간다울 수 있음을 일러주었습니다.


책 속의 이야기 중 안개에 갇혔을 때 느끼는 감정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오후의 햇살이 대나무를 밝게 비추고, 샘마다 기쁨이 퐁퐁 솟는데 우리 주전자에서는 솔바람 소리가 들리누나. 우리 무상함을 꿈꾸자. 그리고 만물의 아름다운 어리석음 속에서 꾸물거리자."

...

사실 그렇다. 안개의 문제는 그것이 기분 좋게 느껴지려면 언제쯤 걷힌다는 전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안개에 완전히 에워싸여 있다. 그 두텁고 고요한 흐름 속을 응시하는 나는, 오카쿠라 선생의 충고에 따라 안개의 초대를 받아들이고 저 너머에 있는 것을 상상해보려고 애써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오카쿠라 선생이 계속 나에게 건네는 말은 이상하게도 내 프랑스 친구 티에리 파코의 낮잠에 관한 말과 비슷하게 들리는데, 아름다움은 완벽함에서 발견되는 게 아니라 불완전함을 마주한 상상 놀이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완선이 아니라 완성의 행위 속에 있다. - page 70 ~ 71


​우리의 '게으름'을 대하는 태도.

말할 필요도 없지만, 당신은 게으름을 피우기 위해서 행복해야 한다. 행복하기 위해 게으름을 피워야 하는 게 아니다. - page 143

우리가 착각하는 것을 바로잡아주었습니다.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닌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

훌륭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저자는 빈둥거림, 깃들이기와 단장하기, 놀이를 통해 내 시간을 멋지게 보내는 방법을 일러주었습니다.

특히나 놀이가 중요한 이유.

모든 놀이, 심지어 철저한 들까불기조차도 기억과 망각 사이에 위태롭게 걸친 선에서 활력을 끌어낸다. 바로 그때문에 놀이가 그렇게 우리 삶을 고양시켜주는 것이다. 노는 것은 어떤 뿌리를 기억하고, 재연하고, 새롭게 체험하고, 과거부터 내려오는 어떤 것을 계속 살려나가고 나머지는 그러지 않기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잊고 온전히 현재에 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

놀이를 멈춘다면 우리는 그저 현재 이 순간에 쉬면서 우리가 보고 듣고 냄새 맡을 수 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게 될 것이다. - page 243 ~ 244

이렇듯 놀이는 시공간 내에서 허락되는 한계 내에서 시작되는 활동이기에 허투루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책의 마지막에 이런 인용구가 있었습니다.

여가여, 지나간 시절의 여신영,

시간은 길고 하루하루가 충분해서

천진한 기쁨을 붙잡던 시절,

짧아진 순간이 즐거움을 억제하지 않던 시절.

근대의 유산, 다하지 않은 의무의 황량한 전조가

우리 행복한 마음을 괴롭히지 못했던

시절은 지나갔으니,

그대는 지나치게 바쁜 이 세상에서

존재를 거두었나요...?

에이미 로웰, 「여가」(1912)


 


이제 드디어 놀 시간이다. - page 279


정신없이 바쁘게 달려온 당신.

휴식을 위한 시간을 가질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럼 당신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목적'을 가지고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잠시 세상의 목소리에 귀를 닫아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 시간이 오히려 당신을 더 당신답게 만들어주니까요.


책을 읽고난 뒤 저도 세상의 목소리에, 무게를 잠시 내려놓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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