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게 너무 많아도 좋아 - 성덕의 자족충만 생활기
조영주 지음 / Lik-it(라이킷)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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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제 자신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좋아하는 게 뭐니?"

"음......"

선뜻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분명 좋아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도 많이 있을텐데 왜 머릿속은 텅 비어버리는거지......


저자 '조영주'씨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좋아하는 게 너무 많아도 좋아』

 


'적당히 대충 산다'가 삶의 모토이나

일단 꽂혔다 하면

순식간에 덕후의 경지에 오르고야 만다!


그녀의 좋아하는 것은 그것으로 그치지않고 완전히 빠져들어 나중엔 '덕질'의 모습까지 보이고 있었습니다.

덕질

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여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일.

- 우리말샘


셜록 홈즈를 좋아해서 《홈즈가 보낸 편지》작품까지 쓴 그녀.

일본 만화를 좋아해 일본어 공부를 하고 어느 정도 일어를 외칠 수 있는 그녀.

책 읽는 것을 좋아해 결국 작가가 된 그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진정한 '덕후'란 이런 것임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마냥 유쾌한 이야기만 있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친구 하자고 다가오면 경계부터 했다는 그녀.

친구를 만드느니 그냥 어딘가에 처박혀서 안전하게 책이나 읽는 게 낫다고 여겼다는 그녀.

결과적으론 좋게 작가가 되었지만 말입니다.


그녀의 옆엔 항상 '책탑'이 쌓여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 눈에 띈 책 《미래를 여는 핵의학과 함께 핵의학 외길 반세기》.

그녀가 카페에서 일할 때 오후 2시 10분 전쯤하여 매일 오시는, 평일엔 늘 양복 차림이고 주말엔 풀로 티셔츠에 면바지를 입는 멋쟁이 할아버지가 카페에 놓으라며 시집이며 자신의 자서전을 주고 가셨습니다.

감사한 마음에 그녀 또한 자신의 책을 건네니 답례로 건넨 자서전《미래를 여는 핵의학과 함께 핵의학 외길 반세기》와 작은 봉투.

그 책에 적힌 글귀.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왜 사는가에 대한 답을 놓지 ㅇ낳는다면 자신만의 길을 걸을 수 있고 삶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김철종,《미래를 여는 핵의학과 함께 핵의학 외길 반세기》, 새한사업, 2014, 7쪽)

그리고 이어진 그녀의 이야기.

내가 사는 까닭은 뭘까. 그야 자명하다. 내 삶은 실비아 플라스와 마찬가지로 의문형이다.


내가 글을 쓸 수 있을까? 많이 써보면 작품을 쓸 수 있을까?

작품을 잘 쓸 때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을 해야 할까?

(타니아 슐리, <실비아 플라스>,《글쓰는 여자의 공간》, 이봄, 2016, 118쪽)


나는 이 모든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산다. 아직 답은 찾지 못했다. 그런고로 나는 지금 '살아 있다'. 지금 이 순간 또 한 번 작품을 잘 쓰기 위해 책탑을 쌓는다. 누가 뭐라 하든 간에 삶을 걱정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걷기 위하여 아마 나는 계속 덕후의 삶을 살 듯하다. - page 30 ~31

​


그렇게 그녀는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느긋하게 살자. 너무 조급하게 읽어치우려고 하지 말고 언제나 지금, 당신이 재미난 책을 읽으라. 재미가 없고 잘 읽히지 않으면 무리하지 마라. 분명 재미가 있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을 기다려라. 하지만 기다리는 동안 손 놓고 지내진 마라. 찰나는 그냥 오지 않는다. 기다린다는 것과 노력한다는 것은 같은 말이다. 나는 수많은 책에서 그것을 배웠다. - page 97


이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희망이 없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편히 살아남자>

친구가 생일선물로 챙겨준 《시의 힘》이 마음에 들어 책의 저자 서경식 선생님을 만난 그녀.

선생님의 다큐멘터리 영화 <아우슈비츠 증언자는 왜 자살했는가: 프리모 레비를 찾아서>를 본 후 강연에서의 질의응답.

"희망이 없는 헬조선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선문답 같은 이 질문에 선생님은 의문형으로 답했다.

"아우슈비츠에 갇힌 인간에게 희망이 있었을까?"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아우슈비츠에서 인간은 사고가 불가능했다."

선생님은 말을 연이었다.

"인간답지 않고 무기력에 익숙해지는 것이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이걸 병리학적으로 풀이한 사람이 바로 프리모 레비였다. 하지만 그 프리모 레비조차 아우슈비츠를 바꾸지 못했다. 우리라면 어땠을까."

...

선생님의 말은 계속됐다.

"희망은 의문형이다. 왜인 줄 아느냐. 희망이 있다고 쉽게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라. 원한다면 무기력하게 살아도 좋다. 희망이 없더라도 조금이라도 편히, 살아남자." - page 124 ~ 125

희망이 없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도 좋다고 말씀하신 선생님의 말이 저에게도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하고 싶은 일......

잠시 희망과 꿈이 없었던 저에겐 하고 싶은 일마저도 생각이 나지 않아 한참을 생각 또 생각에 잠기게 하였습니다.

 


앞서 그녀는 어린 시절 자신에게 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답고 신비한 것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빨랫줄에 대롱대롱 매달린 아버지의 만화 원고.

그러면서 그녀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나는 여전히 바란다. 나의 글 역시 누군가에겐 빨랫줄에 매달린 만화 원고처럼 보이길, 길을 잃었을 때 방향을 알려주는 북극성이 되어주길, 하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읽고 쓴다. - page 8

이 책은 그녀가 북극성이기 보단 아직 같이 어둠을 밝히는, 우리와 같은 별이었습니다.

언젠가 북극성이 된 그녀의 이야기를 읽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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