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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 - 이방인 안겔라의 낯선 듯 다정하게 살기
김지혜 지음 / 파람북 / 2019년 6월
평점 :
'이방인'이 있었습니다.
따가운 시선이 시도 때도 없이 내리꽂히던
먼 이방의 도시에서 씩씩하고 유쾌하게
"저는 오늘 하루도 인간답게 살고 있습니다!"
이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인간답게' 살아가고 있다는 그녀에게서 그 인간다움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인간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

남편의 유학길.
그 길을 만 15개월에 접어든 아이를 데리고 같이 올랐습니다.
낯선 듯 익숙한 듯 한 그 곳, 독일.
벌써 10여년 전 한국을 떠나 독일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진 듯 하지만 한 가지 '인간답게 산다는 것'에 대해선 아직도 그 해답을 찾는 중이라는 그녀.
첫 장에서는 일상에서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열까지 나는 감기를 걸리면서 그녀는 이런 깨달음을 갖게 됩니다.
누워 있다 보니 마음속에 적어놓았던 '하고 싶은 일'의 순서가 달라진다. 이것도 해야지, 저것도 해야지 하고 욕심내었던 일들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그저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 밥을 지어 아이와 같이 식탁에 앉아 먹고 싶고, 잠들기 전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싶은, 딱히 새로울 것 없는 일상들이 하고 싶은 일의 1순위로 올라왔다.
맨날 이걸 잊어버린다. 이렇게 한 번씩 대책 없이 아프고 나면 그제야 '아, 맞아' 하고 다시 떠올린다. 살면서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를 잊지 않기 위해 한 번씩 감기 몸살을 앓으며 복습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 page 34 ~ 35
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것이 아마 이 이야기일까!
평범한, 사소한 일상이 주는 행복.
아프기 전에 깨달아야할텐데 왜 항상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인지......
그리고 이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매일매일 동네 호숫가에서, 일요일엔 텅 빈 슈퍼마켓 주차장에서 나는 두 남자의 레슨을 받았고, 며칠 뒤 자전거를 타고 아들과 비슷한 속도로 달릴 수 있었다. 우리 동네 호숫가에는 몇 군데 오르막길이 있는데, 평평한 길은 수월히 달릴 수 있었지만 오르막길은 힘들어서 매번 자전거에서 내려 씩씩거리며 올라갔었다. 나도 아들처럼 언젠가 페달을 밟고 이 오르막을 올라갈 날이 있겠지 했는데 어느 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스윽 올라갔다.
"'언젠가는' 했던 일이 '지금'이 되는 순간, 진짜 신난다. 야호!" - page 58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지금 이 순간>이란 노래가 떠올랐습니다.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
간절히 바라고 원했던 이 순간
나만의 꿈이 나만의 소원
이뤄질지 몰라 여기 바로 오늘 - 뮤지컬 'Jekyll And Hyde'의 <지금 이 순간> 중에서
'언젠가' 이루어지길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것.
그럼 그 순간이 '지금'이 된다는 사실.
지금 내게 확신만 있을 뿐
남은 건 이제 승리 뿐 - 뮤지컬 'Jekyll And Hyde'의 <지금 이 순간> 중에서
그리곤 독일인과 한국인으로써 들여다본 세상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이 유독 가슴을 아리게 하였습니다.
그녀의 아들도 보내고 싶었던 '좋은 유치원'.
장애가 있는 아이들과 없는 아이들이 함께 지내는 곳으로 늘 대기자가 많아 들어가기 힘든 이 곳.
그렇다고 이 유치원이 무슨 특별한 교육을 하는 건 아니다. 외국어를 가르친다거나 시설이 좋다거나 독특한 교육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 유치원 아이들은 한 교실에서 같이 놀고 부대끼면서 서로에게 배운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것. 그래서 인간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것, 서로 기대어 산다는 것을 말이다. - page 100
그 글에는 '장애인'이라는 표현이 있었는데, 나는 독일어 사전에도 나와있고 보편적인 표현이라 생각한 'Behinderte'라는 단어를 썼다. 그런데 내 글을 본 한나는 그 표현을 다른 말로 바꿀 것을 권했다.
"예전엔 이런 말을 썼지만 지금은 잘 안 써. 대신 이렇게 써."
한나가 내게 알려준 말은 조금 더 긴 말이었다. Mensch mit Behinderung, 그러니까 '장애가 있는 사람'이란 뜻의 이 말은 사람이란 단어 Mensch를 앞에 쓰고 뒤에 그 사람에 대한 부가 설명을 덧붙인 것이다. 그 시대의 말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과 세계관을 고스란히 보여준다고 한다. 시기마다 유행했던 말들을 정리해보면 당시 사회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유추해볼 수 있는 이유다. 간단한 단어 대신 굳이 저 긴 표현을 쓰는 사람들.... 그 표현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이곳 사람들의 시선이 고스란히 묻어나 있었다. - page 102
편견없이, 모두가 '사람'인 곳.
하지만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장애인 학교가 세워질까봐 서로 으르렁 거리고 결국 그 아이들의 부모님이 무릎을 꿇으며 애원하는 사회.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이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군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는 대한민국 헌법 제 11조 1항에 우선할 수 있을까? - page 105 ~ 106
저 역시도 자라나는 아이에게 부끄러운 어른이 되지 말아야겠습니다.
제가 '독일인'들을 존경하는 이유는 지난 과거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면 반성에 반성을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특히나 이 이야기.
그런데 유대인 학살이 몇몇 나치들뿐만이 아니라 독일 국가 전체가 개입되어 계획되고 실행된 것이라는 증거가 나오기 시작했다. 독일 정규군이 학살에 참여했다는 증거가 학계에서 나왔는데, 1995년 독일 사회조사연구소가 독일 전역을 돌며 열었던 '절멸전쟁 : 1941년부터 1944년까지의 독일 국방군이 자행한 범죄'라는 전시회는 이 증거들을 시민들이 직접 자기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독일 정규군은 전쟁범죄와 무관한, 그저 조국을 지킨 군인이었을 뿐이라는 독일인들의 인식이 이를 계기로 깨졌고, 독일 사회에도 큰 파장이 일었다. 결국 제2차 세계대전에 참여한 독일 정규군이라는 말은 평범한 독일 시민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독일의 모든 시민이 이 범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자각은 다시는 과거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시민사회의 움직임으로 이어진다. - page 182
이어진 우리의 이야기로는 '세월호' 참사사건이었습니다.
세월호는 단순한 사고가 아닌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모든 부조리한 면이 뒤섞여 만들어진 예고된 참사였다. '치유공간 이웃'의 이명수 대표는 그 죽음을 두고 "304개의 우주가 우리 눈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사라졌다. 그게 세월호 참사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우주가 눈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사라질 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그리고 우주가 사라지는 대참사 이후 우리는 그 일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 page 183
그리고 잊지말아야함을......
회색 구름이 하늘을 뒤덮은 여름 오후, 구름보다 더 짙은 회색의 비석들을 바라본다. 과거를, 그것도 단순한 과거가 아닌,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 평범하지 않은 과거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눈곱만큼도 엄숙해 보이지 않는, 평범한 비석들 사이로 과거와 현재를 잇는 튼튼한 줄이 느껴진다. - page 183
마지막엔 그녀가 독일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선입견이나 편견이 아닌 한 '인간'으로 대하는 것이 진정한 인간이 인간에게 하는 배려와 존중임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앞서 그녀는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1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 제가 마주했던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다 찾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타인의 고통과 행복에 무뎌지지 않고 살아갈 때 그 행복이 부메랑이 되어 다시 자기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이들은 잘 알고 있는 듯했습니다. 일면식 없이도 인간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절박한 상황에 놓인 누군가에게 기댈 어깨를 내어주며 힘이 되어주는 것,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숨구멍이 되어주고, 난로가 되어주며 살아가는 것이 자신도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입니다. - page 5 ~ 6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을......
인간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로 살아가는 것.
이 해답을 찾는게 왜그리도 힘겨웠는지......
책 속엔 저자 '김지혜'씨의 피아노 연주곡 CD가 있었습니다.
잠시 피아노 선율에 귀를 기울이며 '인간답게' 사는 의미를 곱씹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