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처럼 생각하기 - 나무처럼 자연의 질서 속에서 다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하여
자크 타상 지음, 구영옥 옮김 / 더숲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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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구가 자꾸만 맴돌았습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에는

나무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책을 읽기 전까지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 책을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나무에게서, 나무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할 것들을.

『나무처럼 생각하기』

 


책에 들어가기 앞서 저자는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나무가 문명을 만들고 문명이 식물이 자라지 않는 불모지를 만든다고 누군가 주장할지 모르지만, 오래전부터 우리와 나무를 잇는 녹색 실은 운 좋게도 결코 끊어진 적이 없다. 우리는 항상 나무와 접목된 상태였다. 나무는 경계가 매우 불분명하고 난해한 형태의 존재다. 따라서 이 생명을 파악하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우리에게 나무는 비밀스러우면서 우리 시각에 따라 재구성되는 존재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접근할 수 없는 세상의 일부분을 상징하는 형상으로 존재할 것이다. - page 7 ~ 8

그 인연의 끈을 지닌 나무에 대해 우리는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가져야함을 일러주었습니다.


우리가 태어났을 때 나무가 우리에게 세상에 존재하는 법, 세상을 배우는 방법을 가르쳤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직립하게 되면서 곧게 뻗은 나무를 보고 열망에 사로잡혀 첫발을 내디딘 곳이 바로 거목의 중심 가지들 위였다.

이것이 우리의 첫 번째 받침돌이며, 우리가 그 위를 걸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말의 발끝에는 단단한 말발굽이 있어 넓은 초원을 안심하고 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인간의 발아래에 있는 나뭇가지들은 미끄럽고 우리 무게에 짓눌려 구부러지며 항상 잘 보이지 않아 결코 안심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머릿속에서 균형을 잃을 떄 나뭇가지에 다시 접목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공허함에 대한 공포가 여전히 우리의 마음에 남아 있으므로 세상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항상 받침돌이 필요하다. - page 24 ~ 26

그래서인지 우리는 '숲을 좋아하는', 아니 기본적으로 '나무를 좋아하는'기질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나무를 바라보며 안정감을 얻을 뿐만 아니라 행복감마저 느끼니 말입니다.


<나무는 서두르지 않는다>에서 인상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나무의 속도는 느리지 않다. 속도는 시간을 재서 수치화하고 그것을 평가하는 개념일 뿐이다. 생물마다 나름의 속도가 있듯이 나무도 자유롭게 자신의 속도에 맞춘다. 나무는 우주를 관장하는 시간의 주기에 따라 자란다. 이 고요한 존재는 느리게 출현하고 끈기 있게 성장하면서 세상의 속도에 맞추는 것이다. 앞서지 않고 뒤처지지도 않으면서 순응한다. 계절의 변화와 빛의 일상적인 변화에 예민한 나무는 살이 있는 클렙시드라로 구현된 우주의 시간성을 따른다. - page 52

사실 우리의 모습은 시간에 쫓기듯 살아가고 있습니다.

앞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스마트폰에, 트위터에 팔려 주변과의 타협보다는 질주를, 그래서 곡선으로 자라나는 나무와는 달리 직선의 형태로 그 짧은 기억마저도 잃곤 합니다.

그런데 나무는 전합니다.

나무는 우리에게 세상과 친밀해지는 시간을 준다.

우리가 길을 잃었던 바로 그때로 돌아가려면 매일 아침 나뭇가지와 잔가지를 살피며 나무가 자라고 싹트고 꽃피는 과정을 관찰해야 한다. 그렇게 내면의 혼란을 자연의 메트로놈에 맞춰보면 좋다. 새나 곤충의 예측 불가능하고 변화무쌍한 움직임과 함께하는 나무의 세심한 우정이 우리를 심오한 시간성으로 다시 이끈다. - page 52 ~ 53


<다름을 받아들이고 나아가는 나무>에서도 우리에게 일러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차이와 저마다의 특성에 따라 상대가 우리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을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자신과 그 이상으로 연결되기 위해 자신을 넘어서는, 즉 자기중심에서 벗어나는 능력 덕분에 나무는 오히려 다른 사람을 향해 나아가고 그 안에서 영속한다.

나무의 자아는 타자와도 세상 전체와도 분리되지 않는다. - page 86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는 것.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나무에 대한 이야기 중에 빅토르 위고가 전한 나무의 의미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름답고 진정한 자유의 상징은 나무다. 나무가 땅의 심장부에 박혀 있듯이 민중의 심장 속에 자유의 뿌리가 박혀 있다. 자유는 나무처럼 자라 하늘을 향해 그 가지를 뻗는다. 그렇게 끝없이 자한 자유는 그늘진 자리에 있는 자손들을 감싸안는다. 첫 번째 자유의 나무는 신이 1800년 전 골고다에 심었다. 즉 십자가 위에서 예수그리스도는 인간의 자유, 평등, 형제애를 위해 희생하셨다."

이 마지막 자유의 나무는 오늘날 몇 그루나 남아 있을까? 적어도 프랑스 주화 1유로 뒷면에서 그중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 page 148

우리에겐 어떤 나무가 이 의미를 지니고 있을지.

그리고 이 나무가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우리는 노력을 했는지.

잠시 생각에 잠기곤 하였습니다.


우리가 나무와 마주해야하는 이유.

나무는 자신을 구성하는 유기물을 스스로 만들고 완전히 생분해한다. 끝없이 재생산하기 때문에 에너지 계획에서도 자유롭다. 탄소를 고정하고 산소를 발생시키며 공기와 물을 정화하고 급변하는 기후와 그 징후들을 완화한다. 유연하고 내성 있으며 절제할 줄 알아 자신이 만든 것을 거의 소비하지 않는다. 나무는 여러모로 지속가능하며 또한 인간 사회에 이러한 존재 방식을 제안한다. - page 156

오늘날처럼 지구온난화로 인해 변덕스럽고 불확실해진 물의 흐름을 조절해 줄 수 있는 것.

지구온난화를 약화시키는 것 중 하나가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고나니 왜 우리가 나무처럼 생각해야하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나무에서 영감을 얻는 것은 때로 극한 상황에서 인간을 살아남게 한다. - page 182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는 것 같지만, 느리게 성장하는 것 같지만 알고보면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자신과 타인이 같이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는 나무.

이는 우리가 살아가야하는 방향을 일러주기 때문이었습니다.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무던히 그 자리에 우뚝 솟은 나무들.

곧게 자라진 않았지만 푸르른 잎사귀들과 함께 자연의 시간을, 다른 생물들과의 공존을 일러주고 있었습니다.

조금 궁금하였습니다.

나는 저 나무에게서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

왠지 나무들은 저에게 고난과 역경이 있더라도 조금씩 성장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위로를 전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나무처럼 생각하기.

가끔은 내가 나무가 되어 세상을 바라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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