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방문자들 - 테마소설 페미니즘 ㅣ 다산책방 테마소설
장류진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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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이슈가 우리 사회에선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곤 합니다.

이는 우리 사회 뿐만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관심을 갖고 많은 작품들이 나오기에 그 의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요즘이라 생각이 듭니다.


이번에 읽게 된 이 책은

출판인이 뽑은 올해의 책

『현남 오빠에게』그 이후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책의 표지에 적힌 문구.

"응, 이거 네 얘기야

이 글을 읽고 있는 너, 바로 당신"

우리의 이야기가 담긴 이 소설.

이 소설의 끝에 전하는 이야기가 무엇일지 궁금하였습니다.

『새벽의 방문자들』

 


6인의 여섯 편의 이야기는 불편하지만 우리 주변의, 아니 우리의 이야기였습니다.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그저 당연시되어 넘어갔었던, 불편한 진실이기에 들추지 않았던 이야기를 덤덤히 써내려간 소설 속에서의 '여성'의 모습은 현재에도 진행형이라는 점이 안타깝기만 하였습니다.


소설의 시작은 '장류진' 작가의 <새벽의 방문자들>이었습니다.

새벽의 방문자들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찾아왔다. 여자는 초인종이 울릴 때마다 비디오 폰에 달린 모니터로 남자들을 관찰했다. 그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별일 아니라고 주문을 거는 듯한 태연함, 남에게 들키기 싫은 일을 할 때의 부끄러움, 돌연 술이 확 깨면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순간의 주저함, 그러면서도 어쨌든 곧 벌어지게 될 눈먼 섹스에 대한 설렘 등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는 얼굴들. 머뭇거리는 그들의 얼굴이 비디오 폰의 카메라에 정면으로 잡히는 순간, 여자는 휴대폰 카메라로 모니터를 촬영했다. 그들이 포기하고 발걸음을 돌리고 나면 찍어둔 사진을 프린트했다. - page 31 ~ 32

'김현진' 작가의 <누구세요?>

여자의 몸은 참 편리한 데가 있다. 별로 마음이 없어도 일정한 자극을 주면 윤활유가 분비되어 그럭저럭의 섹스는 가능하니 말이다. 이 그럭저럭의 섹스 말고는 나는 평생 겪지 못하는 걸까? 더 농밀한 세계로 진입할 수 는 없는 걸까? 그가 바라는 건실한 반반 결혼 생활을 하면서? 그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아 참, 이럴 때 보조를 맞춰줘야지. 나는 반사 신경처럼 엉덩이를 조금 흔들며 한껏 거짓말을 치기 시작했다. - page 236

성적 대상으로의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이야기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의 시선이었습니다.


'하유지' 작가의 <룰루와 랄라>에선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겸, 넌 여자들이 안정만 추구해서 불만 아니었어? 이번엔 나도 도전 좀 해보면 안 돼? 발전의 여지가 있다고 보거든, 난." - page 72 ~ 73

자신의 예비 신량 '겸' 역시도 '여자'에 대한 시선이 이러했음을......


"그럼 애초에 제대로 가르쳐주던가."

뱉었다. 시작했다. 전진이다! 장갑을 한 손가락씩 자바아당겨 벗은 다음 작업대 위에 올려놓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뭐? 지금 이걸 다 떼고 다시 붙여야 되는데 그런 뻔뻔한......."

"아 그러니까, 어쨌든 그건 미안하게 됐는데......." 하고 나는 바퀴 달린 의자를 돌려 바가지를 똑바로 올려다보며 말했다. "왜 자꾸 반말이야?" - page 78

하위계층 노동자인 아줌마들에게 무례한 '어린 남자' 상사의 부당한 대우.

이를 통쾌하게 맞받아친 그녀의 모습에서 짧은 쾌감마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정지향' 작가의 <베이비 그루피>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어느 저녁 긴 구글링 끝에 나는 그루피라는 단어를 찾아냈다. 지난여름 내내 내가 정체를 밝혀보기 위해 노력했던 P와 나의 관계가 그 단어 안에 명확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내가 본 건 그루피라는 단어에 대한 정의가 아니라, 홍대 씬에서 그루피를 보는 일이 얼마나 불쾌한지에 대한 개인적인 소회를 적은 포스트였음에도 나는 곧장 그 의미를 알아챌 수 있었다. 그곳에서 사람들이 나를 보는 미심쩍은 눈빛과 P가 나를 대하는 태도에서 지겹도록 체화해온 것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아는 모든 것을 그러모아도 설명되지 않던 한 시절이 그 단어의 발견과 함께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그날에 나는 울지 않았다. 문득문득 눈물이 난 것은 그 후로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또 몇 달이 지난 밤들이었다. 문자에 답을 하지 않자 P는 이내 뜸해지더니 다시는 전화하지 않았다. - page 134 ~ 135

이번에 알게 된 '그루피'의 의미.

어린 소녀가 성적 대상으로 존재한다는 점.

참으로 답답하였던 이야기였습니다.


'박민정' 작가의 <예의 바른 악당>에서의 이야기.

우리는 결코 우리일 수 없었다. 보라는 애써 잊고 있던 장면 하나를 불러온다. 그해 여름, 우리는 함께 걸었고 같은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보라의 곁에는 그가 있고 돌아보면 지나가 있다. 그러나 지나는 틈만 나면 돌아보는 보라를 대놓고 외면한다. 행렬의 밀도가 낮아질 때마다 보라는 긴장을 풀고 생각한다. 내게 상처를 준 건 너희들이잖아. 보라의 상상 속에서 언제나 지나는 그의 은밀한 연인이다. 그들은 그토록 보라를 기만하는 중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보라와 보폭을 맞추어 걷고 같은 내용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 page 188 ~ 189

두 여자의 관계에 한 남자.

아리송하고도 애매한......

그래서 더없이 여운이 남았던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인상적이었던 '김현' 작가의 <유미의 기분>.

이 소설에선 '스쿨미투'와 '성소수자 문제'에 대한 이야기였기에 그들이 겪는 폭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종이 한 장 한 장은,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한 놈 한 놈을 떠올리게 했다. 그 노랗고 작은 것들이, 그 보잘것없는 종이 쪼가리가 한데 모이자 크고 넓고 거대한 것이 이루어졌다. 많은 여학생들이 포스트잇으로 이루어진 그 네모난 세계에 연결됐다. 그것이 마치 자유로의 입구라도 되는 양 환호했다. 또한 많은 남학생들이 포스트잇으로 이루어진 그 정체불명의 세계에서 눈을 돌렸다. 그것이 마치 자신들의 내면으로 향하는 입구라도 되는 양 헐, 존나, 대박, 메갈, 꼴펨, 진지충이라는 말을 내뱉고 사라졌다. 오직 그런 말을 들어본 사람만이 거기 남아서 손가락으로 포스트잇을 가리키며 말했다.

-국어

-수학

-체육

-영어 - page 214 ~ 215


자기 놀리고 괴롭힌 새끼들한테는 사과 같은 거 받고 싶지 않은데, 나한테는 사과를 받고 싶대. 나는 자길 놀리지도 않고 괴롭히지도 않고 오히려 잘 대해줬는데 그래서 사괄 받고 싶다는 거야. 걔들이 자길 놀리고 비웃을 때 나도 같이 웃었다고. 나는 사과할 자격이 있다는 거야. 다른 새끼들은 사과할 자격도 없는데 나는 있대. 그게...... 처음엔 미친 새끼네 싶었는데 편질 다 읽고 나니까 눈물이 나더라고. 김철민 그 애가 다 알고 있는 거 같더라고. 내가 게이인 걸. 아, 이 편지는 나한테 사과를 하라는 거고, 내가 누군가에게 사과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해주는 거구나, 알겠더라고. 사과할 자격이 있는 사람, 그 말이 용기를 주더라고. - page 219


'페미니즘'을 테마로 한 소설들이라고는 하였지만 결국 우리의 이야기였습니다.

그 속엔 사회적으로 약한 이들의 이야기가 있었고 너무 당연시되어 무관심했던 이야기가 고스란히 펼쳐져 있었습니다.


소설을 읽고나서 한동안은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더 이상은 외면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기에 이제라도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다짐도 해 봅니다.


마지막에 문학평론가 '장은영'씨는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페미니즘 소설이란 이제 하나의 장르다. 소설로 발화된 픽션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이미 시작되었고 앞으로도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나와 자매들의 이야기를 닮은 소설들을 따라가보면 젠더, 섹슈얼리티 같은 추상적 개념들이 결혼, 연애와 같은 삶의 과정이자 제도들과 더불어 일상을 지배하며 우리의 몸과 영혼에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페미니즘이란 말로 다 수렴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내가 관찰한 것은 페미니즘이 제기하는 현상들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거기에는 인간의 윤리, 존엄과 같은 근본적 문제들이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침묵으로 대처하거나 초능력을 발휘해서 무마해버리면 안 되는 삶의 근본 조건들, 그 앞에서 나는 깊게 호흡해본다. 자, 어디서부터 나의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 page 281 ~ 282

여전히 진행 중인 우리의 이야기.

이젠 그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여야할 때임을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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