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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지 않으면 우린 영원히 몰라 - 가이드북 없이 스스로 만들어간 능동적 여행의 기록
이다예 지음 / 걷는나무 / 2019년 6월
평점 :
페이스북 <여행에 미치다> 화제의 세계일주 여행기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페이스북을 하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오히려 저는 이 문구가 끌렸습니다.
"한 번쯤은 스펙이 아닌, 내 꿈에 투자해보고 싶어!"
청춘이라면 당연히 자신의 '꿈'에 열정을 쏟아내야 하지만 현실은 '스펙'에 더 열광하기에 안타까울 수 밖에 없음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자신의 꿈에 투자하겠다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 멋졌습니다.
그녀가 떠난
14개월 44개국 160개 도시
에서의 이야기는 어떨지 기대가 되었습니다.
『떠나지 않으면 우린 영원히 몰라』

솔직히 저도 배낭여행을 다녀온 후 시간이 흘러 기억을 되짚어보면 명소들에 대한 기억은 그저 '좋다'라고 남았습니다.
오히려 그때 만났던 다른 이와 잠시 동행을 했을 때의 추억, 야경을 바라보며 마셨던 맥주의 맛 등이 아직도 아련히 남아있는 것을 보니 그녀가 <PROLOGUE>에서 한 이야기에 공감이 되었습니다.
지금 되돌아보면, 가장 일반적인 코스를 따라 매일 바삐 돌아다녔던 유럽의 온갖 명소들은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다. 도시마다 방문한 성당, 왕궁, 박물관... 어디가 어디였는지조차 잘 구분 가지 않는 그 기억 틈에서, 선명하게 떠오르는 유일한 장면은 코펜하겐 호스텔의 따뜻한 조명, 질리도록 마신 블랙 러시안, 그리고 루카의 얼굴이다.
한 달 유럽여행을 통틀어 루카와의 만남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나에게, 몇 년 뒤에는 잘 기억도 나지 않을 관광지는 이들보다 매력적이지 못했다. 짧게는 며칠, 길게는 한 달씩 관광지 도장 깨기 여행을 다니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세상에 '죽기 전에 꼭 가야 할 곳'이나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것'은 없다는 것이다. - page 5
그래서 그녀는 '남들이 하는 대로'가 아닌 '나만의 여행'을 만들었습니다.
이래저래 정신없이, 조급히 떠나게 된 여행.
위험하지는 않을지, 외롭지는 않을지 조금씩 걱정이 됐다. 하지만 출발 날짜가 다가왔으니 그냥 부딪힐 수밖에 없다. 준비가 채 안 됐다고 이런저런 핑계만 대다 보면 아마 영원히 떠나지 못할 테니까. 어딜가든 사람 사는 곳 아니겠어?! - page 19

그렇게 시작된 첫 여행지는 필리핀의 '세부'였습니다.
'처음'이기에 낯설고 두려운......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속은 벌벌 떨며 시작했던 이날 하루는 아리스톤과 함께 우스꽝스러운 셀카를 찍으며 마무리되었다. 첫 방문은 당연히 두렵고 어렵다. 하지만 누군가와 조금의 교류가 생긴다면, 그곳은 어쩐지 낯설지 않다. - page 23
'나만의 여행'의 묘미.
노선도 모른 채 오프라인 지도를 애타게 들여다보며 앉아 있어야 했던 마을버스, 찾는 사람이 없어 쓸쓸할 정도로 휑했던 유적지, 번역기 없이는 소통할 수 없는 숙소 직원. 하지만 이 시간이 그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남들이 여행한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이 아닌, 오롯이 내 흥미에만 집중된 그야말로 '나만의 여행'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 관심사에 대한 열정이 만들어준 특별한 여행. - page 34
나의 흥미, 나의 적성, 나의 성격, 나 자신에 대해 오롯이 알 수 있는 '여행'.
그래서 더 나답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었던 여행이었음을 그녀의 글을 통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삶에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들이 너무 많다. 이상한 일이지만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조차도 '당연히 이렇게 살아야 한다'를 벗어나지 못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괜찮은 직업을 갖고 평범한 가정을 꾸린 후 남부럽지 않게 자녀를 키워내는 것. 그 일련의 과정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미 당연히 따라가야 할 미래로 여겨진다. 이 당연함에 의문을 갖기 전까지는 이 결정이 자신이 아니라 사회가 내려준 것임을 인지하지도 못한 채.
...
그 속에 파묻혀 우선순위가 뒤바뀌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닌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목적 역시 뒤바뀌었다. 나만의 행복이 아닌 맹목적인 사회적 성공으로, 남들과 다르게 살고 싶다는 이유로, 같은 선상 위에서 조금이라도 더 앞서 나가려고 발 빠르게 달린다. 트랙을 벗어나지 못하는 러닝머신처럼. 결국 그 끝에는 남들과 똑같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음에도.
왜 우리는 러닝머신이 답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잠시 멈추고 내려오면 나아갈 선택지는 무궁무진한데 말이다. 걷기, 앞구르기, 우회하기, 심지어 뒷걸음질까지도.
삶의 방식은,
그 삶을 사는 주인이
정하는 것이다. - page 78 ~ 79
저 역시도 그렇게 살았습니다.
남들처럼, 당연한 절차를 밟으며 살아야 그나마 낫다고......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낙오자'인 줄 알았습니다.
내 삶인데 말입니다.
그녀의 여행지 중에 <오만>에 가 보고 싶었습니다.
오아시스에서 발을 담그고 닥터피쉬에 굳은살 뜯기기, 아무도 없는 동굴에 들어가 박쥐들과 맞닥뜨리기, 안장 없이 등을 시원하게 드러낸 야생 낙타를 사막 한복판에서 만나기,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 뜬금없이 나타난 구멍가게에서 오만의 전통 간식을 사먹기. 오만이 아니었더라면 어디서 이런 추억을 남길 수 있었을까.
비밀스러운 보물지도를 따라 모험을 떠난 탐험가가 된 듯이 설레고 흥분되던 하루. 혼자서는 다시는 찾아올 수 없을 것 같은 장소에 서서 생각했다.
'이 풍경을 아주 오래도록
그리워하게 될 것 같아.' - page 249
뜬금없지만 어색하지 않은, 그래서 더 인상적이었던 그곳, 오만.
그곳이 궁금하였습니다.
<EPILOGUE>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세계여행을 하고 나서 무엇이 달라졌나요?"
그녀는 이렇게 답하였습니다.
그렇게 스스로에 대한 제약이 풀렸다. 학업이든 취업이든 최선을 다하되 나를 갉아먹을 정도로 집착하지 않는 여유가 생겼다. 정답은 하나뿐이 아니라는 걸 느껴서일까. 수많은 삶의 방식 중 오로지 하나만의 목표에 스스로를 가두고 싶지 않았다. 끝내 바라던 대로 미국에서 취업이 된 후에도 목적지에 도달했다는 듯 안주하기보다는 오히려 색다른 길을 모색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가슴이 뛰었다.
스스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장벽을 하나 무너뜨리고 그 너머로 넘어가본 경험.
그게 이 세계여행이 나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다. - page 287
여행으로 그녀의 인생이 변한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는 그녀.
아마 그녀는 앞으로의 삶은 비밀스러운 보물지도에서 보물을 찾는 것처럼 그렇게 자신만의 여행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을 읽고나니 떠나지 않으면 내 스스로가 만든 장벽 너머를 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처럼 용기내 여행을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일상에서의 탈출도 꿈꾸어 봅니다.
조금씩 조금씩.
그렇게 내 장벽에 금을 내어 언젠간 그 장벽이 허물어 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