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터
김호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김호연'

그와의 인연은 『망원동 브라더스』로 거슬러 올라가게 됩니다.

유쾌한 주인공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우리의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그래서 공감할 수 밖에 없고 우리의 현실을 바라볼 수 밖에 없음에 유쾌하지만 결코 유쾌하지 않은 그의 이야기에 왠지 모르게 귀를 기울이곤 하였습니다.


『파우스터』 


처음엔 '파우스트'인 줄 알았습니다.

그것도 흔히 알고 있는 괴테의 작품인 『파우스트』.

그런데 알고보니 이 작품은 『파우스트』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읽으면서도 『파우스트』에서의 악마와 인간 사이의 이야기가 『파우스터』에서는 노인과 젋은이 사이의 이야기로 이야기는 서로간의 연결고리를 가지며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거액의 돈만 내면 젊음을 조종하며 살 수 있다?"

돈으로 안 될 것이 없는 세상.

하지만 그 돈이 결국 한 사람의 젊음을, 그 사람의 인생을 살 수 있다는 점이 무섭지만, 사실이 아니지만 어디선가는 일어날 현실과도 같은 이야기에 초반부터 책장을 넘기기에 머뭇거리게 되었습니다.


'파우스터'

이는 누구인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파우스트는 독일의 국민작가 괴테의 작품이에요. 요약하자면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하고 젊음을 되찾는 노일 파우스트에 대한 이야기죠."

소설 내용을 들은 준석은 기가 찼지만 웃음 따윈 나오지 않았다. 굳은 준석의 표정을 살피곤 경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당신이나 지수 씨처럼 메피스토를 통해 파우스트에게 청춘을 해킹당한 젊은이들을, 파우스터라 불러요."

"뭐라고 불리다고요?"

"파. 우. 스. 터. 당신은 그들의 파우스터로 지난 청춘을 살아온 거예요." - page 77

자신도 모른 채 어느새 자신의 삶이 조종된 이에 의해 살아졌다는 것.

어쩌면 이보다 더 비극적인 삶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메피스토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이, 파우스트들을 보면 그들이 선택한 파우스터들은 지난 날의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부정하고 싶지만, 떨쳐내고 싶었던 과거.

하지만 그 과거 속 자신과도 닮은 이를 통해, 자신이 가진 부를 가지고 그토록 원했던 삶의 모습으로 조종하는 파우스트들을 바라보면 한편으론 인간으로써는 못할 행위이지만 한편으로 가슴 찡함이 존재하곤 하였습니다.

그들에겐 이런 잠재된 욕망......

자식들은 절대 부모 마음대로 될 수 없다. 부모 마음대로 되는 자식이란 또 얼마나 바보 같은 존재인가. 하지만 파우스터는 다르다. 파우스터는 자식들이 해줄 수 없는 모든 것을 대체해준다. 파우스터는 새로 태어난 나다. 내가 되고 싶었던 청년이고 내게 없었으면 하는 것들을 제거한 젊음이다. 그리고 내 마음대로 그를 부림에도 거기에 대한 저항이나 반감이 없다. 무엇보다 나 혼자의 것이다. 자식은 아내와 함께 만들고 간섭을 받아야 하지만, 파우스터는 온전히 나만의 것이고 그 누구도 끼어들 수 없다. - page 244 ~ 245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지만......

다른 이의 인생마저 조정하면서 마치 자신의 삶이 변화된 것이라고, 영원을 꿈꿀 수 있다는 헛된 희망.

왜 신의 영역에 감히 다가서려 하는지......

서글프고도 비참한 생각마저 들곤 하였습니다.


책 속에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너의 행운은 나의 의도였고, 너의 성취는 나의 기쁨이었지.

자식과 부모 사이에 할 수 없는 것들을 우리는은밀히 해왔어. 태근 네가 왼손이라면 나는 오른손이고 네가 아담이라면 나는 하와였고. 우리는 부모와 자식도 아니고 파우스트와 파우스터만으로 정의하기도 어려운 그런 관게야.

그리고 너의 존재를 통해 얻은 성과 역시 매우 컸어. 너는 나만이 아닌 우리에게도 행운이었으니 나와 닥터 바우만은 너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이라도 할 자세가 되어 있었어.

...

그것은 뱀의 사과 같은 것이었어. - page 495

'뱀의 사과'라는 것......

이는 '아담과 이브'와도 관련되어 있는, 사과는 뱀의 유혹과 기독교적인 원죄의 뉘앙스를 가졌다는, 그래서 결국 '파우스트'와 '파우스터'와의 관계가 뱀의 사과와도 같음에 단순할 듯 하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끊없는 욕망.

신에 대한 도전과도 같은 이 무모함은 결국 스스로의 파멸에 도달할 수 있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스스로 '괴물'이 되려하는지 미련하고도 안타까울 뿐이었습니다.


이 소설을 읽고나니 괴테의 소설 『파우스트』를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지 생각을 해 보아야겠습니다.

내 속엔 '악마'가, 아니면 내 삶을 조종하는 '파우스터'가 있다면 스스로에게도 자문해 봅니다.

당연히 욕망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직접 파우스터를 만난다면 과연 그 욕망을 컨트롤할 수 있을가? 그리고 진정 만족스러울 수 있을까? - page 35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