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좋은 이유 - 내가 사랑한 취향의 공간들 B의 순간
김선아 지음 / 미호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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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공간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저에겐 '주방'이란 공간.

요리는 잘 못하지만 하루 중에 오랜 시간 있는 곳이자 모두가 잠든 밤이면 서재로 변신하는 곳.

주방의 식탁에 앉으면, 따스한 커피향을 맡으면 그 어떤 피로도 풀리는 힐링의 장소.

나에게 그곳이 좋은 이유는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 찍는 건축가 '김선아'씨.

그녀가 찾아낸 공간의 좋은 이유가 궁금하였습니다.

건축가로써, 나아가 그녀의 시선으로 바라본 곳은 왠지 나중에 저도 좋아질 것만 같은 예감이 들어서일까.

여기가 좋은 이유


그녀의 <prologue>에선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된다고들 하죠. 그 말처럼 저는 좋은 것은 나누면 더 좋아진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에겐 건축이 전공자뿐 아니라 일반 사람들에게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문화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

졸은 건축은 우연히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좋은 공간에는 반드시 누군가의 고민과 노력을 통해 만들어진 건축적인 이유가 있어요. - page 6 ~ 7


사실 몰랐습니다.

서울에 이토록 좋은 공간들을 가지고 있는 건축물이 있는지.

또 부끄러웠습니다.

남들이 좋다고 무작정 좇아 다녔던 곳이 그런 의미를 지니고 있었음을.

읽으면서 새롭고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첫 장소 <별마당 도서관>.

그냥 무심코 지나쳤던 곳입니다.

아니, 그곳을 지나칠 때면 이 말 한 마디는 꼭 했습니다.

"우와~ 책이 엄청 많다! 꼭 유럽의 도서관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이 공간은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그저 코엑스 몰을 지나는 사람들이고, 누군가는 이곳에서 책을 읽기 위해 일부러 찾아온 사람들이다. 때로는 이곳에서 강연이 열리고, 전시가 진행된다. 크게 열려 있어 얼핏 아무것도 채우지 않은 것 같아도, 그 안에는 더 많이 채워질 가능성을 남겨두었다. - page 13

그리고 또 하나의 진실.

외부에서 지붕을 거쳐 들어오는 햇빛이 바닥에 넓은 패턴의 그림자를 만든다고 하는데 과연 얼마나 사람들은 그 진실을 알고 있을까?!

그 무엇보다 이 공간이 가진 의미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정해진 출입구도 없고, 신분증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도서관보다는 서점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지만 도서관이라고 불릴 수 있게 만드는 근거는 별마당 도서관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바로 누구나 들어와 머물 수 있도록 하는 테이블과 벤치들이다. 누구도 그곳에서 무얼하든 제지하지 않는다. 자유로이 앉아서 얼마든지 눈치 보지 않고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공공의 성격이 강하다. - page 16

역시 알고나니 그 공간의 존재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열린 공간이 가진 의미.

그 속에서 펼쳐질 무한한 가능성.

다음엔 아이와 손을 잡고 가야겠습니다.

그곳에서 아이는 어떤 잠재된 재능을 펼칠지 기대가 되었습니다.


제가 가고 싶은 공간도 있었습니다.

<시장 골목 안 공간의 내피 / 오랑오랑>

요즘은 각 시장마다 자신의 캐릭터를 지니며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사실 대형마트로 인해 설 자리를 잃어가던 그곳이 다시금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그곳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해방촌 안의 '신흥시장'.

이곳은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기에 건물과 건물 사이에 골목이나 틈이 생기지 않는, 그래서 골목과 연결되지 않아 몇 개의 정해진 입구를 통해서 들어가야하는 시장이라고 합니다.

이 곳에 자리한 카페 '오랑오랑'.

노출증의 끝판왕이라고 하는 이 공간에는 여러 아이디어가 있다고 합니다.

특히나 오랑오랑의 탁 트인 옥상.

오랑오랑의 탁 트인 옥상으로 올라오기까지 어쩔 수 없이 지나와야 했던 구불구불한 골목길과 어두운 시장 골목과 가파른 계단 덕분에 그 효과는 더 극대화된다. 그저 어디에나 있는 옥상이 아니라 시원한 하늘과 바람을 만끽할 수 있는 낭만적인 공간으로 변모한다.

화장실로 쓰였을 법한 구석진 공간과 옛 굴뚝이 우두커니 서 있는 이 휑한 공간에서 사람들은 낡은 몇 가지 가구만으로도 훌륭히 옥상을 즐긴다.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의자와 탁자, 그리고 시원한 남산 뷰. 그것만 있으면 담소를 나누긴 충분하다. - page 220

왠지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불편하고 위험하지만 시간이 혼재되어 있는 이 공간에서 제 시간을 보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서울로 잇는 또 하나의 길 / 서울로>가 소개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제야 다른 나라들의 사례를 보며 새로 짓지 않아도 그대로 그 자리에 남아 있을 수 있다고 배운다. 그 쓰임이 다 했으면, 다른 방식으로 바꿔 쓸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이미 말라버린 시내를 다시 파내어 억지로 물을 흘려보내던 서울시가 부수는 것을 멈추고 좀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건축을 다시 쓰는 것, 그것을 도시재생이라는 단어로 정의한다. - page 266 ~ 267

더 이상 쓰기 힘든 차로를 도시의 산책로로, 차 대신 사람이 걷는 길을 만들었습니다.

이 서울로가 특별한 이유는 다른 건물로 진입할 수 있다는 점과 그곳에 올라선 사람들에게 다른 시야를 제공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매일 바라보는 도시의 풍경을 다르게, 새롭게 바라보게 해 줌으로써 다양한 서울의 풍경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 역시도 이곳에 갔을 때 예전에 차로 다닐 때의 풍경이 아닌, 하늘이 보였고 조금 눈을 낮추니 녹색의 푸르름이 보였고 그리고 사람이 보였습니다.

그리고선 직장인들이 가지던 빡빡함, 조급함 대신 여유로움, 휴식이 보였습니다.

공간이 주는 마법을 간접적이나마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서울의 건축, 공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지역의 건축과 공간은 어떤 이야기를 지니고 있을지 조금은 궁금하였습니다.

그녀가 또다시 설명해주지 않을까라는 조심스러운 기대를 해 보게 됩니다.


우리 주변의 건축물들.

그곳에 지어졌을 땐 저마다의 이유가 있음을 또다시 깨달았습니다.

이 책을 읽고나니 예전에 읽었던 유현준 교수의 책 『어디서 살 것인가』가 떠올랐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 우리가 살고 싶은 곳.

그곳의 공간을, 건축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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